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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곤 별다방 Nov 21. 2021

사장님 빙부상에 매장에서 고군분투한 알바이야기

극한직업 체험기

미채택기사이지만 남기는 예전의 나의 글


2019-02-20 01:50:19


가정주부이기도 한 나는 주 2~3회 출근하는 알바를 하고 있다. 내 전공을 살린 알바이다. 내 전공은 아직 비밀이다. 참, 그 일은 대부분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근무가 기본이다. 주말도 없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내 일을 찾고 싶지만 우리 아이는 오전 9시부터 빠르면 오후 1시 30분, 늦어야 오후 5시 30분까지 맡아주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사실 더 길게 맡아두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어린이집이 갑자기 폐원하는 바람에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아이를 두고 엄마가 9시 출근에 6시 퇴근하는 일반 직장을 다니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친정부모님의 도움을 받기에는 1년 먼저 태어난 맞벌이 동생네 부부의 조카에게 선수를 놓쳤기에 신랑과 나의 손길만으로 우리 아이는 자라고 있다.


어찌어찌하여 나의 사정에 맞춰, 유치원을 보내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렇게 몇 개월을 일하고 있었다. 갑자기 사장님의 장인어르신이 위독해 어쩌면 주말에 내게 근무를 부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금요일 밤, 사장님 빙부상이다.


이번 주 토요일에 오전부터 근무할 수 있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내 사정을 아는 사장님은 출근시간에 맞추느라 아이를 맡아줄 데가 없으면 데리고 와서 근무해도 좋다고 한다.


이번 주말 신랑은 지방출장 중이고 친정엄마는 감기가 걸린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올해 6살이 된 아이와 함께 출근했다. 매장에 직원이 있기는 하지만 직원도 일주일에 두 번은 쉬어야 하는데 그날이 쉬는 날이라 알바인 내가 불려 나갔다. 아르바이트하면서 간간히 주말알바도 부탁받아 친정부모님이나 신랑에게 맡기거나 때로는 함께 몇 번 출근한 적이 있어 이번에도 부담 없이 출근했다.


그동안은 보통 한가한 주말이었다.


손님이 없으면 매장에 있는 TV에서 어린이프로를 보여주며 아이와 하루를 보내면 되겠구나 싶었다. 손님이 없을 때는 매장구경을 하는데 아이는 흡사 키자니아 같은 직업체험실에 온 것처럼 재미있어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토요일 아침에 도착해 매장 문을 열자마자 손님이 들어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첫 번째 손님이 진행 중인데 두 번째 손님이 대기 중이다. 잠시 기다려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작업을 했다. 보통 손님이 오면 체류시간이 30분에서 길면 1시간가량 되는 매장이라 바쁠 때는 혼자서 보기 힘든 곳이다. 그러나 요즘 매출이 신통치 않은지 직원을 늘리지 않아 오늘은 나 혼자 근무하는 날이다. 그런데 또 손님이 들어온다.


매장에는 1팀의 손님이 진행 중이고 손님 2팀이 대기 중인 상황이다. 첫 번째 손님의 일이 마무리되고 결제 후 배웅을 한 뒤 두 번째 손님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그런데 네 번째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직 두 팀이 대기 중이라 조금 기다리셔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알겠다고 기다리겠다고 한다.


이렇게 계속되는 손님의 작업을 처리하고 한숨을 돌리니 오후 1시 30분이 되었다. 3시간 동안 쉼 없이 연속된 근무시간이었다. 아이는 손님이 있을 때는 엄마옆에 오지 않고 혼자 잘 놀고 있어야 일이 끝나고 엄마와 함께 놀 수 있다고 미리 약속했다. 어제 미리 준비해 둔 과자와 장난감을 매장 한편에 펼쳐놓고 아이는 조용히 놀고 있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혼자 매장을 봐야 하기에 점심시간이라고 외출하기도 어렵고, 배달을 시켜도 1인분이 배달되는 음식은 많지 않다. 배달이 된다 해도 배달료를 따로 받기에 식비 가격대가 훅 올라간다. 매장으로 음식이 배달되었다 해도 갑자기 손님이 오면 맛있을 때 먹기가 힘들다. 그래서 아이에게 간단히 먹이려고 준비한 컵라면에 따뜻한 물을 받으며 기다리고 있는데 또 문이 열린다.


손님이다. 응대하고 나니 30분이 지났다. 아이에게 불은 컵라면 뚜껑을 열어주었다. 내 컵라면도 후루룩 먹으려는데 또 손님이 들어온다. 식사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작업을 시작한다. 아이는 짜파게티 컵라면을 탁자에 흘리며 먹고 있다. 나는 손님을 응대하다 아이가 부르면 달려간다. '탁자에 면이 떨어졌네, 물이 먹고 싶네, 화장실에 가고 싶네' 손님 대하랴 아이시중을 들으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흘러갔다.


오후 4시가 되었다. 원래 나의 퇴근시간이다. 평소에는 사장님이나 직원이 와서 바통터치 후 매장은 오후 9시 30분까지 운영되는 곳이다. 그러나 나의 체력은 이제 바닥났고, 아이도 더 이상 조용히 있지 못할 시간이라 오늘 영업을 접기로 했다.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하는 나의 사정을 알기에 사장님도 봐줄 수 있는 시간까지 근무하고 퇴근하라고 했다.


그래서 손님들에게 '오늘은 사장님 댁에 일이 있어 오후 4시까지만 영업한다'라고 설명을 해서 손님들은 4시 전에 제품을 모두 찾아갔다. 나는 오후 4시가 되도록 제대로 쉬지를 못해서 단 5분이라도 자리에 좀 편안히 앉아있고 싶었다. 그래서 매장문을 걸어 잠그고 조명을 낮추고 잠시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잠긴 문을 누가 강하게 흔들어댄다.


원래 주말에도 영업하던 곳인데 오늘은 아무 안내문도 없이 주말에 문을 닫은 박스매장이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을 흔들어 대는가 보다. 사정설명을 하고 다시 문을 닫을 생각으로, 한쪽 문을 열고 "죄송하지만 오늘은 일찍 문을 닫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3명의 가족손님은 "일부러 멀리서 찾아왔는데요"하며 아쉬워한다. 그분의 사정도 딱해 문제를 해결해 주었더니 30분이 금세 지나갔다.


오후 4시 30분이다. 다시 의자에 앉아 마무리하지 못한 나의 점심을 이제 먹고 있었다. 그런데 또 누가 잠긴 문을 흔든다. 아무런 안내문이 없이 잠겨있으니 다짜고짜 문을 흔들어댄다. 매장 유리문 안에 있는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한쪽 문을 열고 사정설명을 했더니 간단한 업무만 보고 가겠다고 한다. 잠시 설명하고 제품을 고르고 결제를 했다. 그래도 그 손님을 응대하는데 10분이 흘렀다. 이젠 정말 기진맥진이다. 배고프고 힘이 빠진다.


오후 5시이다. 뭐라도 먹고 싶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잠시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런데 이제는 앞문이 아닌 뒷문이 열린다. 오늘 영업은 일찍 마친다고 했더니 손님이 말과 표정으로 협박한다. "그럼 다른 매장으로 가도 된다는 건가요?"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는 내가 더 이상 설명할 힘도 없다. 죄송하다고만 하고 손님을 내보냈다. 문을 닫고 맞은 3번째 손님은 처음으로 내보냈는데 나에게 상처를 주며 떠났다. 저도 좀 쉬고 싶습니다.


이제 진짜 퇴근준비를 한다.


매장의 기기를 끄고 아이가 지저분하게 해 둔 탁자를 닦고 아이짐과 내 가방을 챙겼다. 겉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뒷문으로 또 손님이 들어온다. 죄송하다고 사장님 가족이 상을 당하셔서 오늘은 영업을 그만한다고 했더니 "그렇군요, 다음에 오겠습니다."하고 바로 떠난다.


고맙다. 바쁜 사정을 알고 바로 매장에서 나가준 손님이다. 이대로 문을 닫고 가면 여러 사람이 문을 흔들어댈 것 같아 안 되겠다 싶어 A4용지를 꺼내 "오늘은 개인사정으로 문을 닫습니다. 일요일 정상영업합니다."라고 써서 앞문과 뒷문에 메모를 붙여놓고 토요일 오후에 퇴근을 했다.


영화 극한직업에 나오는 '수원 왕갈비통닭' 간판




다음 주 쉬는 날, 타도 시에 사는 친구가 '극한직업'이라는 영화를 보았냐며 '수원 왕갈비통닭'이 나오는 코미디영화라고 한다.


그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오랜만에 타 도시에서 수원친정집에 올라온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다. 영화는 마약반 형사가 잠복근무를 하다가 치킨집에서 잠복하게 되었는데 우연히 인수하게 된 그 치킨집이 불현듯 맛집이 되며 주객이 전도되는 코미디영화였다. 그런데 그 영화에서 가장 강하게 와닿는 부분이 있었다.


영화의 스포일러일수도 있으니 영화를 아직 못 보신 분은 아래 글은 읽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도 괜찮다면 계속하겠다.


마약반 5명이 한 팀인데 잠복근무가 길어지자 4명이 치킨집에서 일을 하고, 1명이 잠복근무를 한다. 그런데 잠복근무를 하던 1명의 형사가 잠복 인원이 부족해 형사근무를 완수 못하고 돌아왔다. 밤늦게 치킨집에 와서 '왜 다들 전화를 안 받냐'며 '용의자를 놓쳤다'라고 하소연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치킨집에서 일하던 4명은 바쁘게 몰려든 손님이 떠난 테이블 의자에 하나씩 걸터앉아 이렇게 말한다. '나 오늘 처음으로 엉덩이 붙이고 앉는 거야', '오늘 매출이 000만 원인데 테이블당 단가가 3만 원이야 그럼 내가 오늘 몇 테이블을 세팅한 거니' 이 말에 100% 공감했다.


주말에 나는 엄청 바쁜 매장을 운영한 경험을 처음으로 했기 때문이다. 업종은 다르지만 '소상공인'으로 통하는 일반 작은 매장의 사장님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치킨집과 형사의 묘한 만남을 그린 영화 '극한직업'


사장님 빙부상과 극한직업이라는 영화가 묘하게 맞물리며 극한직업을 나 역시 체험했다. 가끔은 손님을 기다리며 진열대를 반짝반짝하게 닦고, 제품공부를 하며 손님을 기다릴 때는 정말 개미 한 마리도 지나가지 않을 때도 있던 매장이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했던 그날은 어찌 된 일인지 맛집에 손님이 밀려들듯이 계속 바빴다. 그런데 이번에 느낀 아쉬움이 하나 있다.


소상공인 매장의 사장님은 개인적인 일이 있어도 손님에게 그 사정을 이해받기는 하늘의 별따기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직원이 적은 매장에서 사장님 가족이 상을 당해 늦게까지 일할 인력이 없기에 오늘은 일찍 매장문을 닫아야 한다고 설명하는데도 손님은 평소와 똑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물건을 고르고 나와는 아무 관계없는 일이라는 듯이 행동하는 모습에서 큰 실망감이 들었다.


우리 사회에 공감 능력이 높은 사람이 늘어야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각박한 세상에서 서로 공감하고 역지사지의 시간을 갖는 것이 다음 세대에게 필요한 덕목은 아닐까.


소상공인, 극한직업, 영화, 사장님, 사장





다음에는 더욱 다듬어서 올려볼게요.


남은 주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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