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남 애기는 울어도
울 애기는 안 운다
내 동생아 내 동생아
자장 자장 우리 동생
잘도 잔다 우리 동생
남 애기는 울어도
울 애기는 안 운다
우리 동생아 우리 동생아
할머니가 불러주시던 자장가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난 외할머니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집에 오셨다. 9살 터울이 나는 막냇동생을 돌봐주러 오신 것이다. 나의 친할아버지는 내가 3살 때, 친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딸만 내리 셋을 낳고 막내는 아들을 보신 우리 엄마는 누가 아들을 바란 것도 아닌데 엄마는 엄청 바라셨다.
그 뒤로 학년이 바뀌고 담임선생님께 가족사항을 말할 때 나는 항상 칭찬을 받았다.
학기 초가 되면 담임선생님은 꼭 이렇게 묻는다.
"형제가 어떻게 되니?"
"딸 셋에 아들하나예요. 3녀 1남이요."
그러면 꼭 웃으며 선생님들은 이야기하셨다.
"엄마가 성공하셨네"
"네"
엄마는 그 성공을 위해 나에게 동생을 셋이나 만들어 주셨다. 장작 첫째인 나하고는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말이다.
성공적인 막냇동생,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은 태어나자마자 그렇게 외할머니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나중에 들었지만 딸 셋을 낳으면서 남들은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는데 우리 엄마는 그러지 못했다고 엄마보다 네 살 많은 이모에게 넋두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막냇동생을 낳고는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잠시 머무르셨다.
그동안 나는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생활의 소소함을 배웠다. 비닐봉지를 묶을 때 다시 풀기 쉬운 방법, 아기를 재울 때 부르는 자장가 등을 말이다.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에 태어난 남동생을 돌보면서 외할머니는 외삼촌을 우리 집으로 불렀다. 20대 정도로 기억되는 외삼촌은 그 당시 리어카 붕어빵장사를 했다.
외삼촌은 저녁이면 붕어빵을 팔고 남은 것을 들고 와 우리 가족에게 주곤 했다. 식어빠지고 모양도 이상하고 눅눅한 붕어빵이었지만 이상하게 맛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요즘 먹는 바삭한 붕어빵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 집에서는 있을 수 없었던 일종의 야식이라서였을까. 초저녁 잠이 많은 우리 아빠는 저녁 회식이 있거나 야근이 있지 않은 이상 오후 9시만 되면 잠이 드셨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사과 등 과일을 먹고 나면 그날 음식은 끝이었다. 그렇게 붕어빵은 우리 집 최초의 야식이 되었다.
할머니가 나에게 남긴 무형문화유산
1. 다시 풀기 쉬운 비닐봉지를 묶는 방법
비닐봉지 끝을 잡을 때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넣고 평소와 같이 묶는다. 그러면 검지와 중지손가락이 들었던 곳에 고리가 생긴다. 고리가 생기도록 묶어두면 다음에 풀을 때 고리 반대편 끝자락을 당기면 쉽게 풀린다.
2. 아기를 재울 때 부르는 자장가
나와 아홉 살 터울이 나는 막내는 자꾸 울었다. 모든 아기가 울듯이 말이다. 초겨울에 태어난 남동생이라 겨울방학 동안 나는 할머니와 함께 있었던 모양이다. 할머니는 아기가 울면 안고 엉덩이를 토닥이면서 자장가를 불렀다. 그러면 그 녀석은 할머니 품에 안겨 잠을 잘 잤다. 아기가 자는데도 할머니는 한참을 토닥이며 자장가를 부르셨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