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마리아의 자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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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소설
2023년 9월 15일 수정
저자: 브런치스토리 작가 호곤 https://brunch.co.kr/@hogon
목차
프롤로그: 엄마와 딸의 마음속엔 같은 아이가 산다
1. 앨리스의 눈물
2. 마리아의 자장가
3. 데레사의 남동생: 인생을 고치고 싶을 때마다 글을 고쳐 썼다.
4. 앨리스의 남동생
5. 데레사와 한국전쟁
에필로그: 모녀 무의식 치유 글
할머니를 생각하라고 하면 앨리스는 외할머니 마리아의 자장가가 떠오른다. 자장가를 부를 때 할머니 마리아의 목소리를 가장 오래 들을 수 있었다. 평소 말이 없던 할머니는 앨리스에게 잔소리 하나 없었다. 앨리스는 한 번도 할머니가 큰소리 내는 걸 들어본 일이 없다. 자장가는 9살 터울이 나는 갓난아기였던 남동생 데릭이 잠들 때까지 나지막한 할머니의 목소리를 무한반복해 들을 수 있는 통로였다. 할머니가 불러주시던 자장가는 아기의 울음을 그치려는 자장가였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남 애기는 울어도
울 애기는 안 운다
내 동생아 내 동생아
자장 자장 우리 동생
잘도 잔다 우리 동생
남 애기는 울어도
울 애기는 안 운다
우리 동생아 우리 동생아
앨리스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외할머니인 마리아를 처음 만났다. 지금은 국민학교라는 말이 어색하지만, X세대인 앨리스에게 당시 초등학교라는 말이 어색했다.
할머니는 앨리스와 9살 터울이 나는 막냇동생을 돌봐주러 오셨다. 앨리스의 친할아버지는 앨리스가 3살 때, 친할머니는 앨리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딸만 내리 셋을 낳고 막내는 아들을 낳은 앨리스의 엄마는 누가 아들을 바란 것도 아닌데 아들을 위해 온몸을 헌신했다.
초등학생 내내 앨리스는 담임선생님께 가족사항을 말할 때마다 칭찬을 받았다. 학기 초가 되면 담임선생님은 매번 같은 질문을 한다.
"앨리스는 형제가 어떻게 되니?"
"딸 셋에 아들하나예요. 3녀 1남이요."
그러면 꼭 웃으며 선생님들은 이야기하셨다.
"엄마가 성공하셨네"
"네"
엄마 데레사는 그 성공을 위해 앨리스에게 동생을 셋이나 만들어 주셨다. 장작 첫째인 앨리스하고는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말이다.
성공적인 막냇동생, 앨리스에게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은 태어나자마자 그렇게 외할머니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막냇동생이 뱃속에 있을 때 우리 엄마는 네 살 많은 이모에게 이렇게 넋두리를 했다.
“언니, 딸 셋을 낳으면서 남들은 친정엄마도움을 받는다는데 한 번도 그러지를 못했네.” 그래서 막냇동생을 낳고는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잠시 머무르셨다.
그동안 앨리스는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생활의 소소함을 배웠다. 비닐봉지를 묶을 때 다시 풀기 쉬운 방법, 아기를 재울 때 부르는 자장가 등을 말이다.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에 태어난 남동생을 돌보면서 외할머니는 외삼촌 숀을 우리 집으로 불렀다. 20대 정도의 나이로 기억되는 외삼촌 숀은 그 당시 리어카를 끌며 붕어빵장사를 했다.
외삼촌은 저녁이면 붕어빵을 팔고 남은 것을 들고 와 우리 가족에게 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요즘 먹는 바삭한 붕어빵과는 거리가 멀었다. 외삼촌이 주는 식어빠지고 모양도 이상한 데다 눅눅하기까지 한 붕어빵은 이상하게도 맛이 있었다.
붕어빵은 앨리스네 집에서는 흔히 없던 야식이었다. 초저녁 잠이 많은 아빠는 저녁 회식이 있거나 야근이 있지 않은 이상 오후 9시만 되면 잠이 드셨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사과 같은 과일을 먹고 나면 그날 음식은 끝이었다. 그렇게 외삼촌의 붕어빵은 앨리스에게 최초의 야식이 되었다.
할머니 마리아가 앨리스에게 남긴 무형문화유산은 두 가지가 있다. 그중 첫 번째는 '다시 풀기 쉬운 비닐봉지를 묶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아기를 재울 때 부르는 자장가'이다.
1. 다시 풀기 쉬운 비닐봉지를 묶는 방법
먼저 비닐봉지 끝을 잡을 때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넣고 평소와 같이 묶는다. 그러면 검지와 중지손가락이 들어있던 곳에 고리가 생긴다. 고리가 생기도록 묶어두면 끝이다. 다음에 풀을 때 고리 반대편 끝자락을 당기면 쉽게 풀린다.
2. 아기를 재울 때 부르는 자장가
앨리스와 9살 터울이 나는 막내인 남동생 데릭은 자주 울었다. 모든 아기가 울듯이 말이다. 초겨울에 태어난 남동생이라 겨울방학 동안 앨리스는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는 아기가 울면 안고 엉덩이를 토닥이면서 자장가를 불렀다. 그러면 그 녀석은 할머니 품에 안겨 잠을 잘 잤다. 아기가 자는데도 할머니는 한참을 토닥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렀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겨우 1년 뒤, 26살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잃은 마리아의 인생
딸인 데레사를 끝까지 키우지 못하고 평생 다른 공간에서 지내야 했던 마리아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한 여자의 일생이 어디선가 되풀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