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래 저 <노동조합 민주주의> - 1부 중 발췌

<노동조합의 민주주의> 1부 - 한국 노사관계와 노동조합 전투성

by 루틴강

<서문>


p9

정치적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에 대한 법적 제약이 지속되고 민주주의가 공장 앞에서 멈춰 섰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은 정치사회에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도 없었고, 사회적 연대를 실현할 수 있는 조직적 틀을 만들어 낼 수도 없었다.


p13

우리가 노동운동에 주목하는 것은 노동운동이 여전히 그런 잠재력과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p14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일상화되고 노동시장이 양극화되는 현실에서, 노동조합은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으로서의 권위와 영향력을 상실했다.


p15

모든 사회운동은 운동의 목표와 수단에 대한 내부적 합의를 필요로 하며 이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해 간다. 무엇을 위한 운동이며 누가 중심이 되어 어떤 수단을 사용하여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인가에 대한 내부적 합의가 필요하다.


p25

1987년 이후 한국 노사관계의 전개 과정은 매우 역동적이었고, 노사관계 주체들 사이에 공유된 이데올로기나 규칙에 대한 합의가 결여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노사관계 제도화는 부분적이고 점진적으로만 진행되어 왔다.


p35

기업별노조로부터 산업별노조로의 조직 형태 전환과 그에 따른 교섭 구조의 변화는 노동조합의 전략과 행동, 나아가 노사관계 체계의 전환에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p38

소산별론자들이 노동시장 구조에 상응하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산별노조 전활을 구상한 반면, 대산별론자들은 계급적 단결이라는 규범적 요구를 반영해 단체교섭보다는 지역별 연대에 기반을 둔 사회운동을 강조했다.


특히 1997년 노동법 개정을 통해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의 임금 지급 금지 조항이 입법화된 것은 기업별노조의 물적 기반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초래했고, 노동조합들이 산별노조라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측면에서 1997년 이후 산별노조 전환은 노동운동의 계급적 발전이라는 자신감보다는 기업별노조로는 대응할 수 없는 쟁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어적 대응으로 추진된 것이었다.


p41

산별노조 전환이 구체회되면서, 지역, 기업, 업종별 지부의 위상과 같은 조직 체계 문제가 핵심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에는 기업 규모별 노동조건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대기업 지부의 인정 여부가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p42-43

첫 번째 비판은 전노협에서 민주노총으로의 변화, 산업별 연맹들의 통합 과정에서 기업별노조들의 연대가 산업, 업종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고 지역 수준의 연대와 교류는 오히려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산별노조 전환은 광범위한 연대와 단결이라는 적극적 의미를 갖기보다 단지 교섭력을 높인다는 방어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또 하나의 비판은 산별노조의 의제와 관련해 노동조합이 제기하는 쟁점과 의제가 축소되고 있으며, 산별노조의 운동적 과제와 조직적 기반 사이에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별노조가 사회적 변화와 개혁을 위해 사회적 쟁점들을 제기하고 정치화하기 보다 조합원들이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의제만을 제기함으로써 스스로의 사회적 역할과 정체성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조합의 의제를 사회적 시민권이나 사회적 연대, 사회 개혁과 같은 과제로 확장하는 순간, 조합원들의 구체적 요구와 격차가 생겨 투쟁의 긴장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p49

"생산과 질서를 교란하는 조직화된 항의"를 의미하는 전투성은 노동조합의 이념과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반적인 척도다. 존 켈리에 따르면, 노동조합 전략으로서의 전투성은 온건 노선에 대비되는 것으로 목표와 방법, 제도적 자원, 멤버십 자원, 이데올로기 다섯 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


p53-54

1990년대 중반 이후 기업 수준 노사관계가 제도화되면서 노동조합의 행동은 점차 제도적 전투성, 이익집단 행동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기업별노조의 전투성은 조합원의 직접 참여와 자본의 비타협젹 태도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조합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분산적인 경제적 이익을 넘어서는 정치사회적 의제를 형성하는 데 실패했다.


노동조합의 전투성이 단체교섭의 수단이 되면서 투쟁에 대한 사회적 지지는 점차 약화되기 시작했다.


박태주는 "노조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라기보다 타결의 사전 단계로서 조합원의 동의를 얻기 위한 파업"이라는 의미에서 이를 의사 전투주의라고 지칭한다.


비정규직 노조의 전투성이 사회적 약자의 투쟁으로 사회적 연대와 지지를 얻고 있는 반면, 대기업 노조의 전투성은 기득권층의 집단 이기주의로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다.


문제는 전투성 그 자체라기보다 투쟁의 정댕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었다.


p59

"노사정위원회는 민주노총이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참가할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통로이며, 제도 개선을 위한 협상이 미루어질 수 없다면 노동운동의 역량이 취약한 현재의 조건에서는 3자 기구에의 참여를 더욱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김유선 1998)


p61

사회적 대화 참여는 교섭 파트너로서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높이는 것이지만, 동시에 책임에 대한 부담을 의미했다. (...) 그러나 사회적 합의를 통한 교섭 성과가 미비하다고 해도 노동조합의 동원 능력이 취약하면, 현실적으로 노동조합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별로 크지 않았다.


p63

2005년 민주노총 4기 지도부는 교섭 전략의 기본 방향으로, "중층적, 총체적 교섭 구조"를 제시하고, "산별 교섭, 대정부 교섭, 사회적 교섭"이라는 세 가지 교섭을 제안했다. 4기 집행부는 투쟁과 교섭은 항상 병행되어야 하며, '투쟁 없는 교섭이 허구적 실리주의라면, 교섭 없는 투쟁은 공허한 전투주의'가 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p66-67

민주노총은 사실상 전략적 기획이 없는 상태에서 노종조합 활동의 관성에 의해 투쟁을 이끌어 왔고, 노동조합이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p67

1987년 노동체제에서 노동조합의 전투성은 민주화를 위한 것이었지만, 1997년 노동체제에서 노동조합의 전투성은 사회정의와 연대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투쟁의 목표와 의제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여전히 노동조합 의제에서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의제가 설정되기보다 정부와 사용자의 송세에 대한 반대에 머무르고 있다.


p68

노동조합이 노동의 미래에 대한 설계자, 노동의 인간화와 사회적 연대를 위한 계급 조직으로서 인식되기 보다 조합원의 단기적 이익을 극대화하고 현상 유지를 위한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 (....) 그 결과 조합의 투쟁은 단기적인 현안 문제에 한정되고 사회 개혁이나 공공성을 위한 투쟁은 뒷전으로 내몰린다.


p73

노동조합 정치는 순수하게 노동조합 내부 행위자들 간의 단순한 전략적 상호작용이 아니다. 노동조합 정치의 공간은 노사 간 '생산의 정치'에 의해 규정되며, 조합원들의 상태와 요구에 의해 제한된다. 이런 측면에서 대기업 노사관계는 생산의 정치와 노동조합 내부정치라는 이중의 과정을 통해 전개된다.


p74

노동조합이 작업장 수준에서 조합원들을 동원해 사용자에게 위협 효과를 산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장 중요한 변수로 간주한다. 그러나 작업장 수준에서 노동조합의 동원과 위협 능력은 거꾸로 노동조합에 대한 자본의 대응 전략과 그 효과에 의존하며, 동시에 해당 기업의 경영 상태와 노동과정의 특성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p83

전체적으로 1987년 이후 현재까지 대기업 노조 운동의 전개 과정은 사회운동으로부터 이익집단 운동으로 점진적으로 변화되어 온 과정이었다. (...) 기업별노조의 제도화는 노동조합 체계 내부의 이완 현상을 가져오고, 간부 중심의 활동과 제도적 권력의 향유, 조합원의 참여 약화라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p90

노동조합의 현장 권력이 강력하고 조합이 조합원들을 위한 분배 지향을 추구한다면, 강한 형태의 미시 조합주의 혹은 노조 주도의 경영 참가형 노사 협력이 출현한다.


p94

이런 의미에서 조합원들의 최종적 결정을 보장하는 조합민주주의는 조합 지도부의 자율성을 제야하여 노조 집행부의 가치 지향에 따라 전퉉 연대 투쟁이나 노사협조주의 어느 한쪽으로 조합행동이 경도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


p104

노동조합의 교섭력이나 현장 권력이 강한 경우는 전투적 분배 투쟁이 효과적인 반면, 노동조합의 현장 권력이 취약한 경우 사용자와의 협력이 좀 더 손쉬운 선택이 된다. 조합원들은 호황기에는 분배투쟁, 불항기에는 고용 안정 투쟁을 위해 대체로 전투적 지도부를 선호하지만, 개별적으로 불이익이 예상되는 조합 활동 참여에는 소극적인 이중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p107

노동조합운동에 장기적으로 중요한 것은 고립화와 연대성 사이에서의 선택이다. (...) 중요한 것은 노동운도으이 계급적 연대,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사회운동이라는 정체성, 좀 더 공세적인 의제 설정 능력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기업 노조의 사회운동성을 강화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비정규 노동자와의 연대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출발할 것이다.


p149

노사관계가 협력적인가 대립적인가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권위주의적 노무관리와 의사소통에 대한 사용자 태도라는 사용자 측 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에, 노조 특성과 같은 노조 측 요인이 노사관계에 미치는 효과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특히 상급 노조의 효과를 제외하면 노조의 성격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p150

노사관계가 대립적인 사업장들은 대체로 인수 합병을 통해 기존 노사관계의 재편을 둘러싼 문화적 충돌이 심각한 사업장과 전통적으로 억압적 노무관리를 통해 노동자들의 불만을 키워 왔고, 산별노조와의 적접적 교섭을 거부하고 있는 사업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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