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면 좋은 점은 꽤 많다. 첫 번째 관계가 정리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맺는 관계들은 때때로 버거웠다. 지금은 맺는 관계라고 할 것이 없다. 나는 1년 동안 엄마와 동반자 외에는 거의 만나지 않고, 이 둘 외에는 대화라고 할 대화, 정확히는 '말'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외로웠지만 지금은 꽤 만족한다. 필요한 사람들과 필요한 대화 하는 데에만 에너지를 쓰는 건 생각보다 만족도가 높다. 정말 친했던 친구들과의 일상적 대화와 때때로 연락해서 안부를 묻는 지인들도 지금은 없다. 그리고 그게 삶의 필수적인 부분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그리고 연락을 안 하게 되고,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 인생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영원한 관계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것도. 그리고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에 우울과 이렇다 할 감정을 느낄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인생이 그런 거 아닐까. 한 때 모여 지지고 볶으며 열정을 쏟았던 시기는 그때 그 시절의 기억과 추억만으로도 충분하다.
두 번째, 필요한 곳에만 에너지를 쓰게 된다. 기를 모아 필요한 데에만 쓰게 된다. 10시간 이상 공부하려면 생각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는 원래도 체력이 좋지 않아서 필요한 곳에만 써야 했는데, 공부하면서 더 극대화되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공부를 하기 위해 나의 상태를 살피게 됐다. 독서실 계단을 올라가면서 오늘 몸 상태는 어떤지 확인한다. 다리가 무거우면 오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다. 동반자와의 대화가 약간 피곤하면 마음과 심적 상태다 최악에 가깝다는 증거다. 어깨를 움츠리고 있으면 마음에 강박이 도진 것이다. 아직까지 이유는 잘 모른다. 왜 몸이 안 좋은지, 왜 마음이 안 좋은지, 왜 강박과 스트레스가 도지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따금씩은 상태가 안 좋으니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나에 대한 관심에 에너지를 꽤 많이 쏟고 있다는 것도 공부한 지 1년이 되어서야 알았다.
세 번째, 돈도 없고 시간도 없으니 상상, 상념, 멍 때리기로 시간을 쓰며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수험생활 초반에는 불안감이 컸지만 지금은 이런 미래도 생각해보고 저런 미래도 생각해본다. 경찰이 되어서 경찰로서 사는 삶과 경찰이 되지 못하면 어떤 삶을 살아갈지 생각해본다. 경찰 관련 직종을 찾아서 일을 할 수도 있다. 아니면 경찰이 아닌 돈 많이 버는 일을 찾아볼 수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2년 동안 공부했던 형법, 범죄학, 경찰학, 행정법, 헌법 등 각종 법을 활용할 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 경찰이 아닌 다른 일을 하면서 소소하게 범죄와 관련된 르포를 쓰면서 사는 삶도 생각해봤다. 소소하게 시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2년 동안의 수험생활이 끝나면 공부했던 법 지식은 유지하면서 경제나 외국어를 공부하고 싶다.
수험생활이 끝나면, 독서실에 있는 짐을 정리하고, 수험서를 가지고 와서 하나하나 훑어보며 버릴 것들을 정리하면, 어떤 기분일까? 어떤 감성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