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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틴강 Feb 16. 2023

2월 16일(목) 게으름 피우는 감성적인 날

쉬는 날은 아홉 시 즈음 일어난다. 일어나서 30분 정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뒹굴거린다. 침실에서 나와 빨래를 돌린다. 빨래를 돌리면서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먹으며 예능 프로그램을 하나 켠다. 그리고 오늘은 무엇을 할지 생각한다. 오늘은 오후까지 휴식을 취하고 오후에 용인에 갈 생각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운동을 갈 생각을 했다. 아침을 다 먹고 거실 바닥에 눕는다. 따뜻하다. 누워서 폼롤러로 허리근육을 푼다. 마사지볼을 가지고 와서 승모근을 푼다. 풀면서 런닝맨을 끄고 유시민을 검색했다. 유시민이 나온 방송을 본다. 알쓸신잡 클립영상을 틀고 음성을 들으면서 스트레칭을 한다. 그렇게 3시간을 보냈다. 세상에 관심이 많은지 나 스스로는 잘 모르겠지만, 일주일 중 6일을 공부만 하다가 쉬는 날이 되면 알쓸신잡과 같이 사람 이야기, 세상 이야기, 정치이야기, 철학, 예술, 책, 건축,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한다.


쉬는 날 하는 모든 행동은 대부분 누워서 한다. 그리고 현재의 나에 대해 생각해 본다. 경찰간부 수험생활을 햇수로 2년째 하고 있는 내 삶을 생각해 본다. 여자친구의 헌신, 엄마의 조력, 나의 성실하고 꾸준한 노력, 같이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의 도움이 생각났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잘할 수 있는 것은 꾸준한 루틴을 지키며 살고 있다는 자부심, 루틴강, 칸트강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친구들, 수험생활이 끝났을 때의 감정을 생각해 본다. 경찰이 될 수 있을까? 어떤 경찰이 되고 싶을까? 생각해 본다. 좋은 경찰이 되고 싶다. '좋다'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 좋은 경찰이 되고 싶을까. 불의와 부조리를 마주했을 때 '지금은 그러한 악습은 별로 없다'는 말 대신 '안 좋은 문화와 관행을 마주했을 때 적정한 방법으로 맞서는 경찰이 되고 싶은 마음'이 좋은 경찰일까. 문득 '웃는' 경찰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논리적이고 분석적이고 불의에 맞서는 경찰도 필요하지만 경찰인 나에게 오는 피의자, 참고인, 시민들에게 웃음으로 응대해 줄 수 있는 경찰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또 문득, 필기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 보다 더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왜 순경이 아닌 간부를 목표로 시작했을까. 책임을 지는 사람이고 싶었을까. 리더로서 내가 추구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싶은 것일까. 그것을 주도적으로 만들고, 사람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은 것일까. 그런 것일까 고민해 본다. 수험생활이 끝나면 건축물을 구경하러 돌아다니고 싶다는 생각, 알쓸신잡에 나왔던 지역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10년에 한 번 2년씩 이렇게 공부하고 홀로 성장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기에 대해 생각한다. 앞으로 보낼 10년은 어떨까. 그리고 그 10년이 지나면 또 어떤 성장의 시간을 보낼까. 유학을 가게 될까. 어떤 공부를 하게 될까. 다음에는 언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영어일까 프랑스어일까 아니면 더 낯선 언어일까. 그 언어를 배우면 그 나라로 가서 생활을 하게 될까. 또 문득 혓바늘이 잦아들었다는 걸 느껴본다. 그리고 이 생각을 글로 적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수험생활을 하면서, 오래 앉아있는 생활을 하게 되면서, 나이를 먹게 되면서 온몸에 있는 근육을 잘 풀어줘야 한다는 걸 몸소 체감하고 있다는 사실도 생각한다. 오늘은 운동을 가지 말고 카페에 가서 어제 못한 문제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자친구에게 오늘 운동가지 말고 카페 가자고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여자친구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일주일에 하루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나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준 것이 따뜻한 배려로 느껴진다.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생각한다. 유시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똑똑하고 고찰하며 배려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직, 그리고 여전히 나는 그릇이 작아서 멀게만 느껴진다. 나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 나는 글을 잘 쓸까. 글로 돈을 벌며 살 수 있을까. 작가가 내가 되고 싶은 무언가일까. 나는 성실한 사람인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느낌이 든다. 2월이 반이 지났다. 시험까지는 5개월 남짓 남았다. 앞으로 보낼 5개월은 어떤 시간일까. 수험생활, 공부를 시작할 때는 앞으로의 2년이 나름의 의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많은 배움이 있는 시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는 그러했을까. 약간은 그러했다고 느낀다. 행복한가? 즐거운가? 만족하는가? 모두 약간은 그렇다. 공부하는 게 재미있는가? 재미있다. 내일은 어떤 하루일까? 쉬지 않는 날과 같은 하루일 것이다. 그럼에도 좋은가? 좋다.


누워서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하며, 예능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게으름을 피우며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적어본 것보다 더 많은 생각을 했다. 이렇게 생각을 해소하는 것이 나의 쉼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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