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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틴강 Apr 13. 2023

체력시험 포기, 이유는 횡문근융해증

4월 13일(목) 일주일 간 입원생활을 마치며

4월 첫 주에 순환식 체력학원에 처음 갔다. 가서 무턱대고 프로그램에 맞춰 운동을 했다. 운동이 끝난 직후부터  허벅지가 붓기 시작했고, 화요일까지 다리를 움직이기 힘들었다. 수요일이 되어서 체력시험을 대비해 센서를 찍어보려고 학원에 갔다. 목요일이 되어 신체검사를 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데 소변 색깔이 약간 콜라빛깔이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신체검사를 받으러 성애병원에 갔다. 특별할 것 없는 과정을 거쳤다. 키, 몸무게, 시력, 그리고 혈압을 측정하는 차례가 다가왔다. 혈압이 엄청 높게 나왔다. 최고 170에서 최저 100을 나타내는 숫자에 약간 무감각했다. 계속 혈압이 높게 나와 다른 검사부터 하기로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혈액을 채취하고, 소변을 용기에 담아 제출했다. 마지막으로 엑스레이를 찍고 다시 처음 갔던 곳으로 갔다. 다시 혈압을 측정했지만 여전히 160에 100이 나왔다. 가족 중 고혈압이 있냐는 물음에 나는 양 부모님이 고혈압이라고 말했다(하지만 추후에 확인해 본 바로는 양 부모님 모두 고혈압은 없었다. 돌이켜보니 건강검진 등 혈압 검사했을 때 고혈압이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혈압약 처방을 받고 검사 결과지를 받으러 올 때 다시 측정하자고 했다. 나는 수긍하며 병원을 나왔다. 집에 도착해 점심을 먹으니 피곤함이 몰려와 한숨 잤다. 그리 근처 병원에 가서 혈압약 처방을 받으러 갔다. 의사는 혈압약 처방은 기록에 남으니 며칠 쉬어보고 다시 혈압 검사를 해보라고 했다. 나는 다시 수긍하며 집으로 왔다.


집에서 쉬고 난 뒤 다시 소변을 보았다. 여전히 콜라빛이었다. 여자친구에게 보여줄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혹시 몰라서 부끄러운 얼굴로 봐달라고 말했다. 여자친구는 소변색을 보더니 갑자기 검색을 하기 시작했고, 단순한 탈수증세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바로 수액을 맞으러 병원을 가자고 했다. 나는 체력시험을 포기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근육통은 둘째치고 무릎이 잘 굽혀지지 않았고 이렇게 해서 체력시험을 보면 몸이 더 망가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일까지 근육통이나 몸상태가 좋아질 것 같지도 않았다. 저녁 6-7시 사이에 집 근처에 야간진료를 하는 내과를 찾았다. 횡문근융해증이 의심되어서 찾아왔다고 말하고 수액을 맞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혈압이 높게 나왔다고 말하지 않았다. 수액처방을 받고 나왔더니 여자친구가 약을 먹은 것과 혈압이 높게 나온 거 얘기했냐는 물음에 나는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시 들어가서 말하고 오라고 해서 다시 들어갔다. 의사는 혈압이 높게 나왔다는 말에 좋지 않은 징후라며 응급실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그제야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이나마 느꼈다. 그저 수액 맞고 누워서 쉬면 되는 그 정도의 증상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우리는 그렇게 곧바로 성애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7시가 조금 넘어서 성애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코로나 검사를 마치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담당의사에게 증상을 말하고 오후에 다녀온 병원과 저녁에 다녀온 병원에서의 소견을 이야기했다. 오전에 이곳에서 혈액을 채취했다는 것과 혈압이 높게 나왔다는 것도 말했다. 의사는 횡문근융해증을 검사하기 위해서 다시 혈액을 채취해야 한다고 말했고, 수액을 처방해 주었다. 수액을 맞으며 혈액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중간에 다른 간호사가 와서 코로나 검사를 하고, 입원 전에 해야 된다는 검사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통상의 절차라고 생각했지 입원까지 해야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한두 시간이 지났을까 수액 1통을 거의 다 맞으니 엑스레이를 찍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수액을 맞으며 혈액검사를 기다렸다. 의사가 오더니 횡문근융해증이 맞다고 하며 무슨 수치가 11만이 나왔다고 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정상 수치가 1000 이하라고 했던 것 같다. 의사는 입원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당황스러웠고 황당했다. 갑자기 입원하게 되어서 놀랐다. 수액만 맞고 집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쨌든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해서 여자친구에게 상황을 알렸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가 흘렀을까 간호사가 병동으로 이동한다고 전해왔다. 병동에 가기 전에 여자친구와 잠깐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목요일 밤 11시 30분 즈음 성애병원 5층에 입원을 했다.


입원한 첫날 밤은 늦게 잠들었다. 입원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오전부터 입원한 그 시각까지의 과정이 떠올랐다. 아침 9시 즈음 신체검사받기 전 보았던 소변의 색깔, 신체검사 때의 높은 혈압, 저녁에 본 소변 색깔에 놀란 여자친구, 야간 진료 병원에서의 의사의 소견, 그리고 응급실로 와서 학원 실장님과 체력학원 선생님에게 소식을 전했던 상황, 입원해야 된다는 의사의 말, 그리고 그것을 여자친구한테 전하는 나, 다시 병동으로 이동하는 나, 병동 간호사가 안내사항을 알려주고, 당직 의사가 와서 설명해 주는 상황까지 일련의 과정의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았다.


그렇게 목요일 늦은 밤에 입원을 해서 그다음 주 수요일까지 7일을 그곳에 있었다. 일주일이 정말 깔끔하게 녹았다. 처음에는 조급했으나 나올 때는 무념무상이었다. 이런저런 고민도 많고 걱정도 됐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친구에게 부탁해서 공부할 책을 가지고 왔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입원 초기 며칠 동안은 공부를 해보려고 시도했으나 중반 이후부터는 그냥 서랍에 넣어놓고 쳐다도 안 봤다. 내가 의지가 약한 것인지 아니면 분위기나 환경이 공부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인지 고민해 보다 말았다. 비교 대상이 없으니 확인할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학원의 다른 친구들은 공부하며 앞서가고 있을 텐데 걱정도 했었다. 입원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하루이틀 정도 조급한 마음을 가졌고, 기분이 점점 다운되어 갔다. 그리고 월요일 즈음 되었을 때 바로 퇴원은 어렵다는 의사의 말에 조금 울적해지기도 했다. 얼른 나가서 공부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답답하기도 했고, 뒤처지는 것 같아서 더욱더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어느 날 아침에 문득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얼른 다리의 통증을 회복하고 수치를 떨어뜨리는 것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의 최선의 방법은 여기에서 수액을 맞으며 계속해서 수분공급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 일주일 동안 그냥 생각 없이 예능과 영화만 보며 몸을 회복하는 것이 당장 내가 집중해야 할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공부하고 싶은 열망(?)과 갈증을 잘 다스려서 학원가는 날부터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병원에 있는 일주일 동안 일과는 아주 단순해서 괴로웠다. 새벽 5시 30분 즈음 혈압과 수액양을 확인하러 간호사가 온다. 7시 30분 즈음 식사가 도착한다. 곧이어 의사가 와서 수치를 알려준다. 아침을 먹은 뒤 잠이 온다. 다시 잠들고 일어난다. 휴대폰으로 예능이나 영화를 본다. 11시 즈음 다시 잠이 온다. 다시 잔다. 12시 30분 즈음 점심이 도착한다. 먹고 잠시 앉아서 예능을 본다. 2시 즈음 여자친구가 면회를 온다. 2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거나 머리를 감겨주거나 했다. 그리고 1층에 같이 내려가 배웅을 하고 나는 편의점을 다녀온다. 그리고 다시 병동으로 올라와 휴대폰을 본다. 그리고 4시 즈음 다시 잠을 잔다. 잠들기 전후로 의사가 왔다 가곤 했다. 5시 30분 즈음 저녁이 온다.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본다. 밤 12시까지 예능을 보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영화 시리즈를 보거나 했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를 정주행 했고, <그해 우리는>, <경찰수업>을 요약본으로 봤다. 영화 <아이언맨 1~3편>을 다 봤고, <어벤저스> 시리즈를 다 봤고, <해리포터> 1편, <날씨의 아이>를 봤다. 예능은 <범인은 바로 너> 시즌 1~3편을 다 봤다. 그렇게 영상만 봤다. 그리고 화장실을 한 시간에 한 번씩 다녀왔다. 소변으로 배출해야 한다고 해서 물을 정말 많이 마셨다. 화장실 가기 전에 500ml 마시고 다녀와서 다시 500ml를 마셨다. 이 과정을 7일 내내 반복했다. 그랬더니 수치가 많이 내려갔다. 응급실에서는 11만이었고, 토요일 검사 때는 7만이었고, 월요일 검사 때는 2만이었고, 수요일 검사 때는 5000으로 내려갔다. 수요일 오전 혈액검사를 하기 전에는 시험 전날처럼 떨렸다. 그리고 의사가 와서 퇴원해도 된다는 말이 꼭 시험에 합격했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게 7일간의 입원이 끝났다.


일주일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필요한 시간이었고, 오히려 잘된 시간이라고 느꼈다. 순경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난 뒤에 간부시험 준비에 집중이 잘 안 됐다. 자만심도 생겼고, 겸손함을 잃어갔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또한 체력시험 준비에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들어갔었던 것 같다. 체력시험, 신체검사, 면접 등을 전부 포함하면 물리적인 날짜 수로는 일주일이 되지 않지만, 이 일주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생각하고 준비해야 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체력시험도 경험하지 못하게 됐지만, 체력시험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목요일에 나는 기분이 홀가분했다. 오히려 순경 필기시험이 이제야 끝난 것 같다. 일주일 동안 공부를 한 페이지도 하지 않아서 머리가 텅텅 비었지만, 그럼에도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다. 빈 머리에 앞으로 공부해야 할 것들을 꽉꽉 채워야겠다. 다른 친구들보다 일주일을 뒤쳐졌으니 다시 뱁새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허세와 이상한 자존심은 내려놓고 다시 겸손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공부에 집중해야겠다. 내일부터 다시 학원에 간다.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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