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만에 작별한 내 싸랑 상의
<히>
생장에서 출발, 하루 20km가 넘는 거리를 어찌어찌 오다보니
어제는 로그로뇨에 도착했다.
벌써 순례를 시작한 지 일주일째.
순례자로서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걷고,먹고,자는) 하루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 하루를 살기 위해서 두배로 바쁘기 그지 없다.^^
며칠 전엔 주비리에서 새벽 일찍 출발해 또 어찌어찌 팜플로나에 잘 도착, 샤워를 마쳤는데
아무리 배낭을 뒤져도 갈아입을 상의 겉옷이 없다.
옷이라고는 딱 두벌 가져왔는데 이럴 수는 없다.
거슬러 추적해보니 주비리 숙소에서 빨래 과정중에 빠트렸나보다.
그동안 많은 여행을 다녀봤지만 도난은 당해봤어도 실수로 옷을 두고와보기는 처음.
하필 생존 옷밖에 없는 순례자 신분에 큰 일이 난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남들은 (주로 젊은이들이긴 하지만^^)우리보다 늦게 출발했음에도
일찍들 도착해 주변정리를 다 끝내고 아주 한가하고 나른한 오후의 휴식을 즐기고 있다.
길을 걷는 동안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며^^) 자주자주, 오래 쉬면서 걷고는 있으나
막상 숙소에 꼴찌로 도착해서 잘 쉬고 있는 순례자들을 보면
그 순간부터 평정심은 온데간데 없고 정신이 부산해지곤 한다.
(특히 햇빛 받으며 널려있는 빨래들을 볼 때 가장 부럽다.)
그런데 오늘은 땀범벅인 채 벗어논 옷을 도로 주워 입고 늦은 저녁준비는 커녕 옷부터 사러 나갔으니.
매년 황소축제가 열리는 구도심 팜플로나의 위용도,
주말 저녁 거리를 가득 메운, 마냥 즐겁게만 보이는 사람들 모습도 그닥 흥미롭지 않았다.
순례길을 준비하는 근 한달 동안 연구 끝에 엄선된 내 싸랑 상의와
그렇게 순례시작 3일만에 허무하게 작별했다.
(옷을 두고온 알베르게로 이메일을 보냈으나 옷이 없다는 답변이다).
참고로 그날 빨래 담당은 '호'였다.
'호'는 몇가지 별명중에 '대충이'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다.
다음날은 하필 '뿌엔떼 라 레이나'로 가는 길!
'용서의 언덕'에서 불가피 죄는 용서 받았으나 벌은 남아
하루종일 '호'는 내 스틱을 (필요 없을 때마다) 들어야 했다.^^
당뇨 20년차 '호'의 혈당일지
팜플레나 구시가 숙소 주변 골목길에
무엇을 먹어야 좋을 지 알 수 없을 지경으로 군침도는 음식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숙소에 먼저 와서 쉬고 있던 한국청년들이 한국마트에서 사먹고 남았다며 김치(씩이나^^)를 조금 준다.
그순간 게임 끝 !
김치와 어울릴 조합을 생각해보나 딱히 아는 거라고는 빠에야가 떠오른다.
이 두 조합은 꼭 철판볶음밥을 먹는 맛이랄까.
설탕과 소금은 조금만 넣어달라고 일부러 부탁했더니
그래서인지? 간이 담백했다.
다음날은 뿌엔떼 라 레이나로 가는 길에 있는 용서의 언덕을 힘들게 오르고 돌길을 내려오느라
상당히 지친 가운데 만난 점심이다.
운동량 많았으니 '이때다' 하고 바게트빵에 스파게티까지 먹었다.
추가 혈당약도 안먹었는데 이 음식에 혈당수치가159면 그래도 잘 나온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