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산티아고 멍~상(1)

방구냄새 소고

by 호히부부

<호>


산티아고길을 하루 20여km 남짓, 10여시간씩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걷다보면 별별 잡념이 생긴다.


명색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니 철학적, 신앙적, 형이상학적인 고차원(?) 명상을 하면 좋을 텐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먹고,싸고,입고,자고 등등

명상이라기보다 멍~상이 대부분인데,

일주일째 걷다보니 내 방구(방귀보다 방구가 더 친숙하니)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진다. ㅋㅋ


내 멍~상 결론과 쳇쥐에 물어본 소화기내과 전문의 소견에 따르면,

섭취한 음식물의 종류와 기타등등

원인이 있지만, 한국에서 먹던 김치,

청국장, 짜글이 등 독한 음식을 안(못)먹은 때문으로 보인다.


하긴 산티아고길에서 먹은 음식이라곤

감자를 계란에 스크램블해서 누른

또르띠야 빠따따에다 길다란 바게트, 카페 콘 레체가 대부분이니, 방구냄새가

스마일하고도 순할 수밖에. ㅎㅎ

아마 내앞에서 순례길을 걷고 있는

다른 순례자들의 방구냄새도 동일할 터.


50여년 전,

논산훈련소 훈련병 때 일이다.

갓 입소한 스무살 날짐승들은 힘든 훈련중이나 내무반에서도 눈치고

예의고 모두 벗어던지고 아무데서나 붕붕붕 방귀를 마구 뀌어댔다.


처음 이틀 정도는 사회에서 먹은 각기 다른 음식 때문에 냄새도 제각각이었다.

아주 독한 놈부터, 중간 놈, 연한 놈까지,

아주 다양한 방구냄새를 무자비하게 풍겨댔고, 특히 30여명씩 한곳에서 잠자는 내무반은 상태가 매우 고약했다. ㅠㅠ


그런데 일주일, 이주일째가 지나자

모든 방구냄새가 평준화됐다.

매일같이 같은 짬밥을 같이 먹으니 냄새도 군대식,

더 나아가 국방부 규격대로 통일된 것이었다.


순례길을 며칠간 걷다보니 야고보 성인을 만나러 가기 전에

모든 것을 비우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냄새를 풍기며 가야하나보다.

산티아고 대성당의 거대 향로가 존재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겠다.









로스 아르고스 가는 길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