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걷다,타다..랄랄라 산티아고길(21)

순례길 버스타기는 걷기보다 어려워

by 호히부부

<히>


9월 중순에 생장에서 순례길을 시작, 어느새 2주가 지나 부르고스에 도착했다.

산티아고 순례 여정을 대략 한달 반을 잡았으니 앞으로 약 한달이 남은 셈이다.

생장에서 산티아고까지 총 800km중 부르고스까지는 284km,

거리상으로도 어느새 3분의 1을 왔다.


그런데 순례길중 가장 힘들다는 피레네산맥을 하루만에 잘 넘어온 호히부부건만

일주일쯤 지나고부터는 누적된 피로가 쌓여서일까.. 긴장이 풀려서일까...

몸컨디션(무릎)이 마구 무너진다.

길 떠나오기 전에는 나의 부실한 발목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뜻밖에도 '호'의 무릎이 더 심각한 상황이니. 허참.


최근 일주일 사이에 '호'의 뒷무릎 당기는 증세가 조금 나아졌다, 심해졌다를 반복하니

며칠전부터는 하루 20킬로미터 넘는 일정은 반으로 쪼개서

(버스타기가 가능한 곳에서는)걷기와 버스타기를 병행해보고 있다.


그런데 이또한 생각보다 쉽지가 않더라.

처음엔 하루 순례 구간을 열심히 걷다가 중간에 버스타기를 시도해봤는데

더 고생만 하고 실패했다.


그후로 하루 일정 시작때 버스를 타서 원하는 지점에 내려서 걷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하고 있다.


버스를 타고가다보면 순례자들이 묵묵히 걷고있는 모습이 창밖 저멀리 보이기도 한다.

몸은 잠시 편하나 마음이 어쩔 수없이 무겁다.

쉽지 않게 순례길을 떠나와서 원없이, 힘껏 걸어나가는 길위의 시간이 진정 축복일진데.




부르고스를 지나면 드디어 순례자들 사이에서 영적인 길로 알려진,

끝없는 평야가 이어지는 메세타 구간이 며칠에 걸쳐 펼쳐질 것이다.

황량하고 단조롭고 외로운..

순례길의 오아시스같은 카페, 바도 자주 없는 길.

더우기 불시에 타고내릴 버스 노선은 더 없을 것 같은 길.


딱 하루씩만 걱정하고 싶은데 자꾸 며칠 후를 앞당겨서 걱정한다.

견뎌내야 하는 것은 오늘의 발걸음 뿐이거늘.

이 길은 그 발걸음이 모여서 기어이 가닿고야 마는 기적의 산티아고 길이지 않는가.


동키로 짐을 부치듯이 마음의 짐도

동키에 함께 부쳐버리면 좋을 텐데?ㅎㅎ


자갈밭길인 바람의 언덕을 힘겹게 내려와서 구글맵을 믿고 외딴 마을에서 버스를 기다려보나..안온다..ㅠㅠ
하교하던 아이 데려오다 무작정 길에 서있던 우리를 버스 정류장까지 픽업해준 고마운 동네 아주머니




다음날 아침, 버스를 타고자 한다면 전날 오후에 숙소돌아오자마자

다른 바쁜 일과 다 제껴두고 버스노선부터 알아봐야 한다.

먼저 알베르게 주인에게 묻고, 동네로 사전조사하러나가 정류장 확인, 노선표도 확인, 현지인에게 또 재차,3차 확인한다.

그래도 틀릴 때가 있으니!



중간중간에 많이 서는(완행) 마을버스. 꼭 봉고차같다


대도시로 가는 부르고스행 버스. 산토도밍고에서 이 버스타고 레데실라까미노에서 내려 벨로라도까지 12킬로만 걸었다


오르테가 마을에서 4 km 떨어진, 이 황망한 곳에 아침 9시5분차 부르고스행 버스가 선다고 한다(현지인 세사람 확인). 불안에 떨며 서있는데 드디어 왔다. 9시 10분에!


이렇게나 반가울 수가!

뭐니뭐니해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복잡한 버스 타기보다

내 두발로 걸어나가는 단순한 행위가

가장 쉽고,

최고의 행복인 듯 하다.







당뇨 20년차 '호'의 혈당일지


산토도밍고에서 벨로라도까지 약 22km거리를 모처럼 낮에 도착했다.

버스 반, 걷기 반 덕분이다.

늦은 점심으로 '순례자정식'을 이번 순례길에서 처음 먹었다.

저녁식사로는 부담이 되어 기회를 엿보다가 점심식사로 먹으니 다행히 혈당수치가 149.

이만하면 음식 대비 잘 나온 수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