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별'바라기 엄빠가 되다
(2014년 6월)
[호]
뉴욕에서 한달을 돌아다니는 동안
112달러짜리 한달 정기권인 뉴욕 메트로 카드는 마법의 양탄자 같았다.
모두 24개 노선에서 24시간 운행하는 메트로를 타고서 언제든, 어디든 원하는 곳을 다닐 수 있어서
여행자로서는 너무 편리하고 마음 편안했다.
또 그렇게 맨하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보면 수많은 영화 명작들이 만들어진 뉴욕답게
영상작품을 촬영하고 있는 현장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지금 이곳에서 단편영화를 찍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는 막내딸 한별이가 생각났다.
한달 전, 미국에서 4년 동안 고전을 공부하는 대학을 막 졸업한 딸은
중학생 때부터 가슴에 품은 꿈인, 영화감독의 길을 가고자 그 첫걸음으로
뉴욕 필름아카데미에서 연출과정(비록 4주지만)을 하고 있다.
그토록 원하고 기다리던 영화공부의 시작을 세계적인 영화학교로 알려진 뉴욕 필름아카데미에서,
그것도 학교 졸업장학금으로 한달간 공부하게 돼서 한편 대견하기도 하지만,
딸아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안개덮힌 가시밭길로 보여서 부모로서 안쓰러운 마음이 컸다.
딸은 4주코스 동안 매주 작품을 하나씩 만들어내야 했는데
때때로 야외촬영을 나가는 한별이를 따라다녀 보기도 했다.
지하철 역구내에서 인터뷰를 할 때는 워낙 일상이 공개되고 개방적인 뉴요커들 속성 때문인지
서슴없이 인터뷰에 응해주는 모습에 내가 다 고마웠다.
마음과 달리 딱히 도와줄 것이 없으니 '별바라기' 엄빠가 되어 딸의 모습이나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ㅎㅎ
그런가 하면 며칠 전에는 센추럴 파크 동쪽의 박물관, 미술관들이 이어진 거리에서
2014 뮤지엄 마일 페스티벌(Museum Mile Festival)이 열려서 한별이와 함께 구경을 나왔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구겐하임 미술관, 뉴욕시 박물관, 휘트니 미술관들이 모여있는
5th Ave의 82nd St.에서 104th St.까지를 뮤지엄 마일이라 부르는데,
매년 6월 둘째 화요일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이 길 전체를 막아 사람들로 하여금 아스팔트 바닥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한편,
모든 미술관을 무료 개방하여 관람하게 하는 뉴욕의 유명한 축제이다.
2002년 6월 같은 날, 뮤지엄 마일 페스티벌에서
당시 중학생이던 딸 한별이가 이 길바닥에 이렇게 분필로 글을 썼다.
(관련 글 : http://cafe.naver.com/nagnegil/985)
"스티븐 스필버그님!!
저는 아저씨보다 훌륭한 영화감독이 될 꺼니깐 꼭 기억하세요.
저는 한국인이고 이름은 조한별!!!"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4년 오늘,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공부를 시작하며
우연인지 필연인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이곳을 찾은 별이가
저 글대로 감독의 꿈을 실현한 다음, 이곳을 다시 찾을 날이 언제 오려는지? ㅎㅎ
(그로부터 또 11년이 지난 2025년 올해 가을, 조한별 감독이 만든
첫 장편 독립영화 '된장이'(Ginseng Boy) 가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답니다.^^)
이것으로 뉴욕일기는 끝내련다.
이곳저곳 구경을 다니며 보고 느낀 것도 많았다.
한달간 뉴욕에서 살아보니 이곳도 사람들이 사는 곳인지라
고층 빌딩들로 이루어진 마천루와 휘황찬란한 전광판이 빛나는 타임 스퀘어 같은,
뉴욕만의 특징을 지닌 화려한 모습만 보기 쉽지만,
더러운 지하철 내부와 역구내, 건물 뒷골목에서 풍기는 쓰레기 냄새,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홈리스 등 이면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어느 도시인들 화려함 뒤에 숨은 어두움을 갖지 않으랴 마는
뉴욕은 화려함이 큰 만큼 어두움도 그 깊이가 더할 수 있으리라.
거의 매일 숙소에서 어슬렁거리며 걸어서 센추럴 파크를 지나
브로드웨이까지 오면 지쳐서 쉴 곳이 필요했다.
브로드웨이 거리 중심에 있는 맥도날드 2층, 창넓은 의자에 앉아
온종일 활기와 열정으로 가득찬 브로드웨이 거리를 하염없이 내려다보던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내가 언제 다시 뉴욕에서 한달간이나 머물며 너를 볼 수 있으랴?
아듀!
뉴욕!
뉴요커들!
(2014/6월, 뉴욕 한달살기 중에 가족카페에 실시간으로 쓴 글입니다. 가족카페다보니 격의없이 씌어지거나 미처 생각이 걸러지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 시절만의 옛스러운 정서와 감정에 의미를 두고 공유합니다. 가끔 글 중간에 2025년 현재 상황과 심정을 삽입하기도 하고, 글 맨아래에도 2025년의 현재 생각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히]
저희에게 뉴욕은 영화감독을 꿈꾸는 딸과, 한달살기를 꿈꾸는 엄빠가
꿈을 펼치기 위해 나란히 함께 걸음을 뗀 첫 시작 도시라서
의미가 더 각별합니다.
그간 세계 여행은 많이 다녀봤으나 한 도시에서 한달을 살아보는 여행은
해본 적이 없었기에 설레임과 동시에 두려움이 숨어있을 수 밖에 없었는데
어쩌다 한달살기 첫시작을 딸과 함께 했던 '뉴욕 한달살기'는
저희에게 참 든든하고 순조로운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다른 도시 한달살기가 거듭될수록 들었습니다.
뉴욕 한달살기 동안 중학생때부터 영화감독을 꿈만 꾸던 딸이
처음으로 영화를 찍는다고 동분서주 하는 모습을 보자
기쁨은 순간이고 걱정은 이~따만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어느 부모든 다 마찬가지겠지만 저 역시 딸의 꿈과 열정을 진심 다해 응원해왔습니다.
어쩌면 딸이 가고 있는 이 길의 반은 부모인 우리가 이끈 것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아빠인거죠. 아빠가 평생 영화를 너무~ 좋아라 해왔거든요.ㅎㅎ)
그러기에 정작 홀로 고난의 시간을 걸어가는 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때로 부모로서 두렵기도 했습니다.
대학졸업 후 10여년만에 드디어 첫 장편 독립 영화 '된장이'를 만든 후,
딸 스스로 깊이 마주한 질문과 의혹들입니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야 하지?
영화 계속 해도 되는 걸까?
아니 나 영화 한거 맞긴 한가?
내가 무엇을 만든 걸까?
영화가 도대체 뭐지?"
철부지 중학생 시절 영화감독 스티븐스필버그에게 당당히 도전장을 썼던 딸이
11년만에 새로 써낸 의문들, 그 한줄 한줄이 엄마 가슴을 후빕니다.
아마도 이 근원적인 의문은 계속되겠죠?
딸이 영화를 계속 하는 한은!
그렇게 하루하루 가다보면 언젠가는 딸이 마주한 질문과 의혹들에
스스로 답을 얻어내지 않을까 생각도 해봅니다만.
그러나저러나,
올해 어느날인가 개봉한다는 딸이 만든 영화, '된장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날은 무조건 기뻐하고 축하할 것입니다.^^
어쩌다보니 뉴욕 한달살기가 딸 한별이의 영화얘기로 끝을 맺게 돼서 사실 쑥스럽네요.
참고로 뉴욕 맨하튼 다음으로 이어지는 연재글 <해외한달살기 10년-태국 치앙마이 편>에는
저희부부 이야기만 나올 것입니다.^^
[호]
이번 글의 엔딩 크레딧은,
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