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칼리스터 로드에서 클랜 제티까지
[히]
숙소에서 나와 조지타운을 향해 걸어갑니다.
페낭 한달살기를 시작하며 첫 번째로 정한 오늘의 목적지는
뭐니뭐니해도 페낭의 심장과도 같은 조지타운 구시가지입니다.
조지타운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을 정도로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은 지역이라고 합니다.
일부러 숙소를 조지타운 중심에서 멀지 않은
마칼리스터 로드의 트로피카나 218 아파트로 잡았습니다.
구시가 중심까지 도보로 20여 분.
동서남북 웬만한 곳은 걸어서 다녀보겠다는 계산이었죠.
하지만 생각보다 날이 훨씬 덥습니다.
아침 8시 반에 서둘러 나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땡볕입니다.
내일부터는 그날의 목적지에 따라
그랩 택시를 적절히 이용하는 등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할 것 같네요.
마칼리스터 메인 로드를 따라 걸으며 현지식 아침부터 먹어보기로 합니다.
여행을 와서 어쩌면 이 시간이 가장 즐거운 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음식 천국 페낭에 왔으니, 첫날 아침만큼은 신중하고 맛있게 먹고 싶습니다.
구시가에 가까워질수록 분위기 좋은 식당들이 많아질 거라 생각하며
길가의 현지 음식점 몇 군데를 그냥 지나쳤는데,
막상 구시가 안으로 들어서자 식당마다 아직 오픈 전입니다.
시간은 어느새 9시를 넘어가고, 마음이 조금씩 조급해집니다.
이제는 아무 거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딱 눈에 들어온 곳이 이 식당입니다.
새우국수가 유명한, 중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맛집인 듯합니다.
최근 3년 연속 미슐랭 가이드를 받았다는 문구가
그나마 마음의 위안이 됩니다.
페낭 첫날 아침을 생각지도 못하게 이렇게 벌건 국수로 시작하게 됐지만,
다행히 맛은 우리나라의 얼큰한 새우 짬뽕과 비슷합니다. ^^
엉겁결에 페낭에서의 첫 아침을 해결하고 나니
마음도 조금 느긋해집니다.
다시 천천히 걷다 보니
조지타운에서 오늘 가보고 싶은 곳이 자연스럽게 정해집니다.
숙소에서 멀리서만 바라보던 페낭의 바다를 먼저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조지타운 해안에 형성된
‘성씨(가문)별 수상마을’부터 가보기로 합니다.
'클랜 제티'는 말레이어가 아니라, 성씨별 수상마을을 뜻하는 영어 표현이랍니다.
19세기 말, 같은 성씨로 묶인 중국계 이민자들이
항구 노동과 어업을 기반으로 페낭에 정착하면서
조지타운 바다 위에 나무 말뚝을 박아 만든 마을.
지금도 실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생활형 수상마을입니다.
총 여섯 곳의 수상마을 가운데 관광객에게 가장 잘 알려진 두 곳,
리 제티(Lee Jetty)와 츄 제티(Chew Jetty)를 차례로 찾았습니다.
먼저 리 제티입니다.
‘이씨성’이라 쓰인 입구를 지나
나무 판자가 깔린 좁은 길 위로 발을 올리는 순간,
집과 집 사이, 바다와 생활의 경계가 없는 가옥들 사이로
푸른빛 바다만이 한가득 펼쳐집니다.
시간이 갑자기 느려지는 듯하고,
그제야 ‘아, 여기가 페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리 제티가 조용하고 느긋한 수상마을이라면,
츄 제티는 관광객에게 열려 있는 활기찬 수상마을입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고요하던 리 제티와는 달리
좁은 길을 따라 상가가 늘어서 있고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눈에 띄게 많아집니다.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네요.
츄 제티는 원래 사람과 배가 오가던 선착장 기능을 가진 제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은 통로이자 출입구로서의 역할이 컸고,
상업이 가장 먼저 자리 잡은 수상마을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많이 드나들던 곳에 가게가 많아지는 건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이치겠죠.
제티 끝에는 지금은 배를 타는 곳은 아니지만,
예전 선박이 드나들던 선착장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리 제티와 츄 제티를 차례로 보고 나니 서로 다른 두 수상마을이
자연스럽게 하나의 풍경으로 이어지는 듯합니다.
현지 아침식사로 시작해 바다로 끝난 오늘의 산책은
페낭 첫날을 보내기에 딱 적당한 속도였던 것 같습니다.
한달살기의 첫 며칠은 이렇게 천천히,
구시가를 중심으로 걸어봐도 좋겠습니다.
내일은 조금 더 안쪽으로,
사람들이 실제로 사는,
조지타운의 골목으로 들어가 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