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낭 한달살기(4)/정글에서 시작한 아침

페낭힐 아침 산책 기록

by 호히부부

[호]



말레이시아 페낭의 아침은 유난히 일찍 시작됩니다.

아침 7시가 조금 지나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아파트 창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여중학교 운동장에도
이미 체조를 하거나 달리기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마 낮에는 너무 덥기 때문이겠지요.
이 도시에서는 하루의 리듬이 자연스럽게 시원한 아침 쪽으로 당겨져 있습니다.


20260205_080246.jpg
20260210_075844.jpg 첫교시부터 체육수업을 하는듯



저희 부부도 새벽부터 일어나 페낭힐을 향했습니다.
무더운 낮 시간을 피하려면,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그랩을 불러 타고, 도심을 빠져나와 산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해발 833m, 페낭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페낭힐에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등산하듯이 두 발로 오르는 방법(편도 2~3시간 소요),
다른 하나는 페낭힐의 명물인 푸니쿨라(Funicular)를 타고 편하게 올라가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기다림이 적을 것 같은 이른 아침 시간을 노려 푸니쿨라를 선택했습니다.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대기줄 없이 곧바로 푸니쿨라에 몸을 실었습니다...만 마지막 탑승자였더군요.

아침 8시인데도 이미 푸니쿨라 안이 먼저 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산티아고 2025-말레이시아-페낭힐-75559761388.jpg
20260206_080026.jpg
첫 차는 새벽 6시 반, 약 30분 간격으로 운행(붐비는 시간대에는 추가 운행도 함). 성인 기준 왕복 30링깃(약 11,000원)이다


1923년에 개통한 이 푸니쿨라는 길이 1,996m로 아시아 최장이며,
중간의 79m 터널 구간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각도(27.9°)를 자랑합니다.

순간 몸이 뒤로 젖혀질 만큼 아찔한 경사를 지나
하부 승강장에서 상부 승강장까지 5분 만에 도착하자,
확연히 다른 공기가 느껴집니다.

고도 차이가 800m 이상이라 페낭 시내보다 기온이 약 5도 낮다고 합니다.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쌉니다.

페낭힐 전망대에서 바라본 페낭 시내 모습입니다.


20260206_081231.jpg


20260206_081959.jpg


20260206_081815.jpg


20260206_082343.jpg



페낭힐은 현지어로 ‘부킷 벤데라(Bukit Bendera)’,
직역하면 ‘깃발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조지타운 항구에 배가 들어오면
이를 알리기 위해 정상에 깃발을 올렸던 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이곳의 열대우림은 약 1억 3천만 년의 역사를 품고 있으며,
아마존보다도 오래된 숲이라고 합니다.
2021년에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산티아고 2025-말레이시아-페낭힐-75559761418.jpg 페낭힐의 시간과 역사가 함께 있는 곳임을 조용히 알려주는 식만지 시대 휴양 저택들인듯




페낭힐은 사실 숲 트래킹 천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러 구간이 있고

난이도 차이도 꽤 크다고 합니다.

페낭 전망대와 정상 언덕 주변을 가볍게 산책하는 한시간 이내 코스부터

길게는 반나절이 소요되는 트래킹도 있습니다.


저희는 레스토랑, 힌두사원이 모여 있는 정상언덕를 지나,

'몽키컵 가든(Monkey Cup Garden)'이라 불리는 숲길까지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약 1.5~2km 정도 완만한 길을 걷다 보면,

정글 속에 마치 비밀정원같은 작은 카페가 있다고 하니

거기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기로 합니다.


20260206_082821.jpg 안내도를 열심히 들여다 봐도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습니다
20260206_090411.jpg
20260206_090517.jpg
몽키컵 가든(Monkey Cup Garden) 방향 화살표가 보인다. 편리한 교통수단인 버기카도 지나가고.


서늘한 숲길을 한 걸음씩 내디딜수록 조지타운의 소음은 멀어지고,
정글 특유의 맑은 기운이 얼굴을 스칩니다.

숲길을 걷는 동안 혹시 이 숲의 오래된 주인인
귀여운 안경원숭이(Dusky Leaf Monkey)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정작 우리를 반겨준 건 페낭힐의 ‘골목대장’ 게잡이 원숭이였습니다.

비록 하얀 안경은 쓰지 않았지만, 길가에 떡하니 앉아 우리를 구경하는 그 모습은

진짜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자신들이라 믿고 있는 듯했습니다.


20260206_091742.jpg
산티아고 2025-말레이시아-페낭힐-75559761437.jpg


산티아고 2025-말레이시아-페낭힐-75559761428.jpg
산티아고 2025-말레이시아-페낭힐-75559761432.jpg


산티아고 2025-말레이시아-페낭힐-75559761416.jpg
산티아고 2025-말레이시아-페낭힐-75559761421.jpg


20여분쯤 걸었을까요.

숲길 끝(?)에서 카페 '코피 후탄(Kopi Hutan)'을 만났습니다.

아라비카 커피와 샌드위치로 늦은 아침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주변 풍경 덕분인지, 그 어느 카페보다 기억에 남는 맛입니다.

찐하디 찐한 이곳 전통 커피만 맛보다가 며칠만에 향긋한 서양식 커피를 마시니

왠지 몸이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20260206_093422.jpg 정글 카페, 코피 후탄(Kopi Hutan)
20260206_095414.jpg 모카포트에 담긴 아라비카 커피와 샌드위치


몽키컵 가든이라는 이름처럼,
이곳 숲길 일대에는 몽키컵(Monkey Cup)이란 별명이 붙은,

네펜데스(Nepenthes)라는 식충식물이 자생하고 있답니다.

비가 온 뒤나 이슬이 맺힐 때,

정글의 원숭이들이 이 식물의 주머니(포충낭) 안에 고인 물을

마치 컵처럼 들고 마시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몽키컵 가든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pitcher-plant-362370_1280-1.jpg 식충식물 네펜데스(이미지 출처 : 구글)


아이러니하게도, 원숭이가 즐겨 물을 마시는 이 식충식물 컵이

사실은 개미나 파리등이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없는

죽음의 덫이자 함정이라니 자연의 세계는 오묘합니다.




울창한 원시림 사이의 작은 정원에서
향긋한 커피와 함께 아침 한때를 느긋하게 보낸 뒤,

페낭 시내와 대교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뒤로하고
푸니쿨라를 타고 순식간에 다시 내려왔습니다.

(물론, 20여 분간 숲길을 되돌아 걸어왔지만요.)


불과 몇 분 만에 서늘한 정글에서 열기 가득한 도시로 돌아왔지만,
몸에는 아직도 아침 공기의 잔향이 남아 있습니다.

그 정도면, 아침으로는 충분했습니다.


20260206_112512.jpg


20260206_112508.jpg 페낭 시가지와 페낭대교가 멀리 보인다


하강하는 푸니쿨라의 속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