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서 만난 살아 있는 이야기
[히]
조지타운 전체가 하나의 야외 미술관이라지만,
그중에서도 벽화마을은 이 도시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밤이 되면 조명과 함께 카페 분위기가 화려하게 살아난다지만,
우리는 비교적 한산하고 사진 찍기 좋은 오전 시간대를 선택했습니다.
벽화는 수십 점에 이르지만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 작품은 십여 점 남짓.
처음에는 반나절이면 충분할 줄 알았지만,
막상 가보니 골목 곳곳에 흩어져 있어 찾는 데 시간이 꽤 걸립니다.
특히 대표 벽화들이 모여 있는 아르메니안 거리(Armenian Street)를 중심으로
주변 골목까지 분산되어 있어 자연스레 오래 걷게 됩니다.
지도까지 숙소에 두고 오는 바람에 더 헤맸다는 건 안 비밀입니다.^^
골목을 돌다 보면 화려하게 장식된 자전거형 인력거가 눈에 띕니다.
페낭에서는 릭샤를 '트라이쇼(Trishaw)' 또는 말레이어로 '베차(Beca)'라고 부릅니다.
한때는 서민들의 교통수단이었지만
지금은 관광 명물로 남아 골목을 누비고 있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트라이쇼를 타고
기사의 안내를 받으며 주요 포인트를 둘러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30분~1시간 코스로 대표 벽화 위주 투어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조지타운 골목에서 가장 긴 줄이 서는 벽은
2012년 조지타운 페스티벌 때
리투아니아 작가 어니스트 자카레비치(Ernest Zacharevic)가 남긴 작품이랍니다.
'Kids on Bicycle (자전거 탄 아이들)'을 비롯하여
'Boy on Motorcycle (오토바이 소년)',
'Brother & Sister on a Swing (그네 타는 남매)',
'Boy on Chair(의자 위 소년)' 등.
특히 그중에서도 자전거 탄 아이들이 페낭 벽화 열풍의 시작이었고,
지금도 지도에 표시되는 대표작이라고 하는군요.
벽화들을 보고 있으면 등장하는 아이들 표정이 하나같이 실감나고 재밌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벽화들이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실제 자전거·오토바이 등 철제 구조물을 벽화와 결합해서
누군가 그 앞에 서야 하고, 자전거에 올라타야 하며,
그림 속 아이의 시선을 따라 여행자의 몸짓이 연결되면서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벽화를 본 적이 있는데 저만치 관객의 입장에서 감상만 했다면
페낭의 벽화에서는 관객이 다같이 하나되어 즐기다보니
사람들 모두 벽화 앞에만 서면
장난스러운 미소와 활기가 얼굴에 가득했습니다.
골목에 숨은 벽화를 하나씩 찾아 확인하는 과정이
마치 소풍날 보물찾기라도 하는 양 잔잔한 설레임과 성취감마저 주니
무더위라도 발걸음까지 무겁진 않았습니다.^^
둘째 날에는 지도를 손에 꼭 쥐고
전날 미처 보지 못했던 작품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고양이, 소녀, 선원 등
작은 생명과 다양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벽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페낭의 일상과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골목에서 만난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작품은
'Old Trishaw Man'입니다.
이 작품은 러시아 출신 작가 'Julia Volchkova'의 작품으로,
자카레비치의, 사람이 들어가야 완성이 되는 아이들 작품과 달리
조지타운의 세월과 노동의 역사를 담아낸 사실적인 초상화입니다.
낡은 벽, 습기, 햇빛까지 어우러져
그 자체로 시간이 머문 풍경처럼 느껴졌습니다.
벽화는 아니지만 골목을 걷다 보면 시선을 붙드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철선을 구부려 만든 'Wrought Iron Art(철제 커리커처)'입니다.
조지타운 역사 스토리 프로젝트로 제작된 작품으로,
옛 직업과 풍습, 지명에 얽힌 이야기를 유머러스한 만화 형식으로 풀어냈다고 합니다.
유산지구 안에 50여 점이 흩어져 있어
숨은 벽화를 찾는 재미처럼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조지타운 벽화마을은 단순한 관광 포인트가 아니라
골목과 사람, 시간 위에 자연스럽게 얹힌 이야기 같았습니다.
릭샤를 타고 오든,
두 발로 걸어 오든,
벽화 앞에서 누구나 잠시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되는 곳.
그래서 이곳은 ‘그림이 많은 골목’이 아니라
이야기가 살아 있는 도시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