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도시샤 대학에서 항일정신을 되새기다
(2023/3월~4월, 교토 한달살기 중에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쓴 글입니다. 가족 카페다보니 격의없이 씌어지거나 미처 생각이 걸러지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 나름의 솔직한 정서와 감정에 의미를 두고 공유합니다. 때때로 글 중간에 2025년 현재 상황과 심정을 삽입하기도 하고, 글 맨아래에 2025년의 현재 생각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호]
길고긴 코로나 시대와 몸도 마음도 추웠던 지난 겨울을 보내고
드디어 산수유를 시작으로 벚꽃 피는 봄이 성큼 다가왔다.
올(2023년) 봄에는 오랜 만에 한달살기를 우리와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
벚꽃과 천년고도로 유명한 일본의 교토에서 시작해본다.
현재 일본의 수도가 도쿄인지는 잘 알아도
1868년 즈음까지, 장장 1100여년 동안 일본의 수도는(도쿄를 거꾸로 한ㅎㅎ) 교토였다고 한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처럼, 오래된 도시 교토 역시 도시 전체가
일본의 역사도시일 정도로 볼거리가 풍성하고,
또 3월에서 4월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나 아름답기로 유명한 교토 벚꽃도 구경해 볼 겸
맘먹고 일부러 이 시기를 택해보았다.
30대 후반 기자시절, 첫 해외 취재여행지가 일본, 도쿄였기 때문에
일본이라면(그 후 잠깐씩 다녀온 적은 있지만) 꼭 그때의 아련한 일본 거리 풍경이 떠오르곤 했다.
좁은 길거리를 다니는 차들과 그 옆을 아슬아슬 다니는 자전거, 길거리의 선술집과 식당...
깨끗한 길거리와 쪼그만 면적에 위로 솟은 집(하꼬방) 앞에 안성맞춤처럼 주차돼 있는 작은 차,
모자를 쓰고 교복을 입고 책가방(란도셀)을 멘 채, 반바지로 등교하는 초등학생들...
30여년이 지난 지금의 일본은 어떨지 궁금하다.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에 내려
바로 교토행 특급열차 하루카를 탔다.
약 30~4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특급열차 하루카를 타면
80여분만에 교토에 도착한다.
이번에는 교토역에서 연계되는 지하철을 탄다.(지나가던 학생의 도움을 받아서^^)
교토역에서 숙소가 있는 지하철 역까지 불과 세 정거장이라 우버를 부를까 잠시 생각해봤지만,
일본은 택시값이 엄청 비싸다고 한다.
집에서 새벽 6시반에 출발, 교토 가라스마오이케 역에 내리니 저녁 5시 59분.
꼬박 하룻동안 뱅기와 기차와 지하철을 내리 탄 끝에
숙소가 있는 니조지구에 올라서니 어스름 저녁이 되어 있다.
그래도 하루가 다 지나지 않았으니 가까운 이웃나라가 맞긴 한듯.
니조지구는 역사유적이 많이 모여 있는 교토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왠만한 곳은 주로 걸어다니며 구경하고 필요할 때는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기에도 용이한 지역인 듯하여 이곳에 숙소를 정했다.
이제 지하철 역에서 10여분만 더 걸어가면
드디어 한달 동안 우리의 집이 되어줄 숙소가 나온다.
부킹닷컴을 통해 심사숙고 끝에 가성비가 괜찮은(나름 호텔인데도 조그마한 주방이 있는)
숙소를 미리 예약해두었는데 예상과 맞아떨어질 지 무척 궁금했다.
(싸이트에 소개된 사진과 정보가 실제와 조금씩 달라 실망스러울 때도 있다.
그렇다고 도로 무를 수도 없는 일이니.^^)
예상보다 실제 모습이 더 깔끔하고 좋아서 너무 다행이다.
공간이 야~깐 좁긴 하지만(하긴 일본에서 이 정도면 큰 것이죠)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한달간 살기에 충분한~ 숙소이다.^^
교토에 도착한 다음날,
숙소에서 멀지 않은 예전 황궁인 교토 고쇼(京都御所)를 가는 길에
도시샤(同志社) 대학을 먼저 찾았다.
도시샤 대학은 일제 치하 정지용과 윤동주 시인이 공부를 했던 곳이라
두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1875년 개교한 도시샤 대학은,
와세다 대학, 게이오 대학과 함께 일본 3대 사립대학으로 손꼽히는데
개신교 계통의 대학이지만, 일반적인 미션스쿨과는 성격이 다르고,
기독교 전도를 주된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모여 만드는 결사"라는 뜻의
도시샤(同志社)란 명칭에서도 알 수 있다.
정문을 들어서서 경비 복장을 한 사람에게 파파고의 통역을 빌어 길을 물었다.
"한국인 시인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가 어디에 있습니까?"
경비원 할아버지가 열심히 설명을 해주신다.
"저기 교회 건물을 지나 왼편으로 갔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가면 됩니다."
2016년에 개봉한 영화, "동주" 때문인지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을 찾는가보다.
이곳 경비원은 아주 익숙한 일인 듯 일본어로 척척 자세히 설명을 하지만,
일본어를 잘 몰라 그냥 알아듣는 척할 수밖에 없다.
설립된 지 150여년이 된 오래된 대학이라 그런지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교정이 나뉘어 있어선지 그다지 넓지 않아 금세 윤동주,정지용 시비가 있는 곳을 찾았다.
시비 가까이 가본다.
교토를 노래한 대표작 '압천'이 새겨진 정지용 시인의 시비부터.
(압천은 교토를 흐르는 카모강을 말하는데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향수'와 마찬가지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 시라고 합니다.)
<압천>
鴨川 十里ㅅ벌에
해는 저믈어...... 저믈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 여울 물소리......
찬 모래알 쥐여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여 짜라. 바시여라. 시언치도 않어라.
역구풀 욱어진 보금자리
뜸북이 홀어멈 울음 울고,
제비 한 쌍 떠ㅅ다,
비마지 춤을 추어,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鴨川 十里ㅅ벌에
해가 저물어......저물어......
바로 옆에는 윤동주 시인의
유명한 '서시'가 새겨진 시비가 있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어찌어찌 일본땅에 와서 돌비석에 새겨진 두 시인의 시를 읽노라니 감회가 일고 마음 숙연하다.
이곳 시비 옆에는 방명록이 놓여져 있는데
거의 매일같이 한국사람들이 찾아오는지 많은 이들이 글을 남기고 있다.
최근에도 쓴 글들이 보여서 몇개 찍어봤다.
교토에서 한달살기를 시작하는 마당에
정지용 시인과 윤동주 시인의 시비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두 시인의 항일 정신을 되돌아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일갈이 생각나는 날이다.
"2025년 3월의 생각"
[호]
지금 창밖에는 노란 산수유가 만개했고,
매화와 개나리가 피기 시작했습니다.
곧 이어 진달래가 만발하고나면
화사한 벚꽃이 사방에서 고운 자태를 자랑하겠지요?
2년전 이맘때쯤 일부러 벚꽃을 보러
교토에서 한달살기를 하며 이곳저곳 돌아다닌 기억이 새롭습니다.
교토는 도심은 물론 변두리까지도 오래된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어
구경할 곳이 참 많았습니다.
교토 한달살기 사진을 대하니
교토 도심의 깨끗한 골목길과
자전거 앞뒤에 아이 둘을 태우고 달리던 일본 여성,
예쁘게 포장된 맛있는 도시락 등이 생각납니다.
[히]
교토 니조지구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던 때가 떠오릅니다.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지만 매번 숙소 도착 첫날은 유난히 즐겁습니다.
한달을 살아갈 새 숙소에 어찌어찌 잘 도착하기까지
발걸음을 붙잡던 현실적인 걱정꺼리들을 과감히 뒤로 하고
가슴이 원하는 방향으로 오롯이 몰두했던,
나름대로 그간의 노고의 시간들이 함께 있기에 그 기쁨이 더 한 듯합니다.
하물며 부킹닷컴에서 봤던 숙소 사진보다 실제 모습이 더 좋으니
너무 해피해져 교토의 첫날밤을 자축했던...ㅎㅎ
3월 중순, 벚꽃이 막 피어나는 시기에 교토에 와서
4월 중순, 벚꽃이 하늘하늘 떨어져내릴 때 교토를 떠났으니
원없이 교토의 봄을 만끽하긴 했네요.
벚꽃 흐드러지던 교토의 봄밤이 아른거리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