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타운 거리축제와 처음 만난 밤의 얼굴
[히]
춘절 이야기는 이미 글로 한 번 남겼습니다.
그때는 폭죽 소리 가득한 설날의 기록이었다면,
이번에는 조금 다릅니다.
토요일 저녁, 조지 타운 골목에서 마주친
다양한 사람들의 활기찬 축제와
처음 걸어본 조지 타운 밤거리 이야기입니다.
지난 토요일 오후 5시쯤, 조지타운 벽화 골목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 오늘 축제구나" 싶은 정도.
아르메니아 거리도 걸을 만했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고,
골목의 붉은 장식도 차분히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띈 건 아이들 체험 부스였습니다.
색칠하기, 만들기, 전통놀이 체험…
아이 손을 잡고 나온 가족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명절은 거창한 무대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는 아이들 손끝에서 먼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관광객 위주의 이벤트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현지 가족 단위가 훨씬 많아 보였습니다.
이 도시 사람들의 축제라는 느낌이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조금 더 걸으니 사방에서 텅텅 북소리가 울립니다.
청소년 북춤 팀, 형형색색 의상을 입은 공연단,
그리고 예상치 못한 ‘아줌마 에어로빅 팀’까지.
솔직히 말하면 전문 공연단의 무대라기보다는
동네 잔치에 가까운 분위기입니다.
그런데도 묘하게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붉고, 노랗고, 금빛으로 번쩍이는 색감.
젊은 아이들의 힘찬 북소리, 한 동작 한 동작에 담긴 기세.
잘 짜인 공연이 아니라 "우리가 즐기겠다"는,
밝고 건강한 에너지가 먼저 보였습니다.
공연 시간표와 약도가 있긴 했습니다.
중요 무대를 찾아가 보려 했지요.
하지만 시작 시간이 자꾸 밀리고, 골목에 사람은 점점 많아집니다.
저녁 7시가 가까워지자 모든 거리는 거의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공연을 본다 한들 아마 사람들 머리만 보이지 않을까 싶어
되는 대로 흘러가기로 마음을 바꿉니다.
대신 천천히,
밤이 내려앉고 있는 조지 타운 거리를 보기로 했습니다.
조금 더 메인 도로 안쪽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붉은 아치가 골목을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용이 올라앉은 아치 아래로 홍등이 길게 이어지고,
그 밑으로 사람들은 어깨를 부딪히며 지나갑니다.
홍등 아래에는 작은 종이 카드가 매달려 있습니다.
그냥 장식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보니 글자가 써져 있네요.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사람들이 등 아래에서 글자를 들여다보며
(우리 눈에는) 무슨 놀이를 하는 듯 보입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등불 수수께끼 행사로,
홍등 아래 문제 카드를 달고 정답을 맞히면
작은 선물을 주는 이벤트라고 합니다.
등불은 그저 예쁜 장식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게 만드는 놀이였습니다.
이곳뿐만 아니라 거리 곳곳에 마련된 자그마한 부스 앞에는
'구경'이 아니라, '참여'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당연히 표정은 활기찰 수밖에 없습니다.
축제를 함께 즐기는 사람들 틈에서
조용히 구경하는 사람으로 서 있던 우리도
드디어 참여해 봤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낮에만 조지타운을 걸었습니다.
밤거리는 처음이었습니다.
더운 공기, 사람들 어깨가 부딪히는 좁은 길,
그러나 이 복잡한 더위 속에서도 짜증 대신 웃음이 먼저 보입니다.
이곳은 중국계 인구가 많은 도시라 춘절의 분위기가 유독 짙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만은 아닌 듯했습니다.
지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조금은 더 각별해서 일까요.
지금 이 순간을 함께 누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서 일까요.
임시로 놓인 원탁들에 남녀노소가 둘러앉아 웃고, 먹고, 떠듭니다.
정신없는 길거리 한복판이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식탁입니다.
그 틈에 우리도 끼어 앉아 난과 짜파티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결국 메인 공연은 보지 못했습니다.
지도도, 시간표도, 인파도 우리 속도와는 맞지 않았습니다.
대신 새로이 느낍니다.
축제는 무대 위에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이 모이는 골목, 원탁 하나, 북소리 한 번, 웃음 몇 번,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듯,
도시는 스스로 빛나고 관중들은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폭죽소리로 귀 아팠던 여느 밤과는 다른,
사람들의 온기와 열정으로 가득 채워진 밤.
한 달을 산다는 건 이렇게 낮과 밤, 행사장과 골목,
공식 무대와 길거리 사이를 오가며
도시의 여러 얼굴을 만나는 일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토요일 밤,
조지 타운의 축제였습니다.
이 도시는 며칠 후 우리가 떠나도,
아니, 모든 여행객이 왔다가 부평초처럼 떠나가도,
그 자체로 동력을 지닌 채 수십, 수백년
이런 전통을 대대로 이어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