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심, 결제, 환전, 교통패스까지 이어진 예상 밖의 하루
[호]
프라하 한달살기 첫날이 시작됐다.
아파트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아침 풍경은
파란 하늘과 빨간 지붕이 어우러진,
유럽 유명 엽서 같은 모습이다.
오늘은 세 가지만 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구시가로 걸어가며 주변 지리를 익히고,
환율이 좋은 환전소를 찾아 당장 쓸 돈을 바꾸고,
한 달짜리 교통패스를 구입하는 것.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지만,
시작부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외국에서 한달살기를 시작하면 늘 하는 일이 있다.
내 폰은 한국과의 연락을 위해 로밍을 하고,
아내 폰은 유럽 유심을 꽂아 데이터를 사용한다.
이번에도 한국에서 미리 주문한 90일짜리 유심을
인천공항에서 찾아와 아내 폰에 꽂았다.
그런데 폰이 먹통이다.
설명서대로라면 꽂기만 하면 바로 개통된다는데,
데이터가 전혀 잡히지 않는다.
프라하 성까지 20여 분을 걸어왔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것이 첫 번째 당황이다.
아름다운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구경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으니 그럴 수밖에.
이럴 때는 역시 한국 젊은이를 찾는 게 빠르다.^^
프라하 성 전망이 좋기로 유명한 스타벅스 루프탑 카페로 향했다.
예상대로 한국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그중 믿음직해 보이는 젊은 남녀에게 도움을 청했다.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이것저것 설정을 바꾸더니,
10여 분 만에 드디어 데이터가 잡힌다.
이 유심은 그냥 꽂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설정 과정을 거쳐야 했던 모양이다.
괜히 혼자 끙끙댔던 시간이었다.
고마운 마음에 속으로 축복을 빌었다.
카를교까지 내려오니 어느새 점심때다.
구시가로 건너가기 전,
프라하 성 쪽 카를교 입구에 있는
작은 호텔의 노상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돼지족발 요리 ‘꼴레뇨’와 맥주를 주문했다.
양이 많아 하나만 시켜도 충분했다.
첫 식사로 맛보는 체코 맥주까지 더해지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왜 체코 맥주,맥주 하는지... 쌀쌀한 날씨에도 엄청 맛있다.ㅎㅎ
기분좋게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를 확인한 뒤 카드를 건넸다.
잠시 후 받은 금액은 718코루나.
그런데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휴대폰에 카드 이용 알림이 떴다.
확인해보니 718코루나 외에 778코루나가 한 번 더 결제되어 있다.
다시 돌아가 확인을 요청했다.
웨이터는 리셉션에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아무 설명 없이 현금으로 778코루나를 내민다.
정말 황당한 두 번째 상황이었다.
생각해보니 어제 카타르 도하공항 출국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공항 내 커피숍을 찾아 커피를 주문했는데,
나한테 주는 영수증 금액과
국민카드 폰메시지의 금액이 다른 것을 발견하고 가서 확인하자,
잠시 기다리라더니 차액인 2달러를 도로 내준 적이 있다.
이용 내역을 바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지나갔을 것이다.
해외여행시 카드를 사용할 경우 그자리에서 꼭 확인할 일이다.
구시가에 들어서자 환전소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원래는 바츨라프 광장의 환율 좋은 곳을 찾아갈 생각이었지만,
일단 가까운 곳에서 소액만 먼저 환전하기로 했다.
수수료가 없다는 환전소를 골라 들어갔다.
전자게시판에는 1유로당 25.9코루나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막상 환전하려 하니 그건 유로를 팔 때의 환율이고,
살 때는 유리창에 붙어 있는 작은 종이의 환율,
1유로당 19코루나라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 돌아서려는데 직원이 다시 부른다.
1유로당 24코루나에 해주겠다는 것이다.
사설 환전소에서 흥정이 가능하다지만 이건 너무 들쭉날쭉하다.
결국 100유로만 환전하고 나왔다.
환전소는 많지만 어디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한 달짜리 교통패스를 사기 위해 구시가 인포메이션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며 지하철 매표소로 안내했다.
근처 메트로 역으로 내려가 한 달권을 요청했다.
두 종류가 있었다.
양도 가능한 카드(670코루나)와
사진이 들어가는 개인용 카드(550코루나).
우리는 개인용을 선택했다.
여권과 사진을 제출하고 카드를 발급받았다.
아내는 550코루나,
나는 시니어 요금이 적용되어 130코루나를 냈다.
그런데 카드 결제 금액은 830코루나다.
총액보다 150코루나가 더 결제된 것이다.
이유를 물었지만 직원은 체코어로만 설명한다.
번역기를 쓰려 해도 지하라 데이터가 잡히지 않는다.
뒤에 있던 사람이 영어로 설명해주었지만
빠르게 쏟아지는 말은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다시 인포메이션 센터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들은 설명은 의외로 단순했다.
사진이 붙은 교통카드는 일종의 신분증이라
발급비용이 따로 1인당 75코루나씩 추가된다는 것.
이 카드는 한 번 만들어두면 계속 사용할 수 있고,
그 위에 한 달권만 다시 충전해 쓰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래서 두 사람 몫의 150코루나가 추가로 결제된 것이었다.
그제야 상황이 이해됐다.
앞선 일들 때문이었을까, 괜히 의심부터 했던 것이
조금은 민망하게 느껴졌다.
하긴 이곳은 개인 상점도 아닌, 프라하의 대중교통 시스템인데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 놀란 셈이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
다시 프라하의 교통요금을 찾아보니 의외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네요.
대신 1회권, 24시간권 등 짧은 티켓 요금만 오르면서
오래 머무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유리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프라하에서의 첫날은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중국 리장이나 태국 치앙마이에서처럼
이번에도 시작부터 작은 소동들이 이어졌고,
작은 일 하나에도 몇 번이나 발걸음을 되돌렸다.
하지만 이런 좌충우돌도 한달살기의 일부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프라하에서의 생활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이 글은 체코 프라하 한달살기 중(2019년 가을),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남겼던
기록을 바탕으로 지금의 생각을 때때로 덧붙여 정리한 글입니다.
[호]
코로나 19가 휘몰아치기 직전에 체코 프라하를 다녀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코로나가 언제 왔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코로나는 정말 우리 인생에서 3년이란 시간을 훌쩍 뺏어간 아주 나쁜 놈이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우린 살아있음에 충분히 감사해야할 일이겠죠...)
이 글은 코로나 이전에 쓴 글이라서
더욱 더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 때는 감성도 뭔가 아날로그스럽고
구식 같습니다만,
Chat GPT나 Gemini 같은 AI도
잘 활용되지 않던 시기라
뭔가 어디에 물어볼 데도 없어서
저렇게 음식점에서 카드깡(?)도 당하고 다녔나 봅니다.
2년 전부터는 모든 걸 AI한테 먼저 물어보니
여행하기가 너무 쉬워졌습니다.
옛날에는 호텔이나 에어비앤비에 들어가면
한국말로 적힌 방명록을 먼저 들춰보고 그곳 평판이 좋은지
확인하고 투숙했던 그런 시절도 있었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