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토초 길, 하나미코지도리, 야사카 신사, 야사카의 탑을 돌아
(2023년 3월 하순)
[호]
한달살기를 위해 교토에 온 지 벌써 9일째, 그동안 집 주변만 구경하고 다녔으니
오늘은 아침 일찍 숙소(니조지구)에서부터 걸어서 기온(祇園)거리로 나가
그 주변에 모여 있는 교토의 대표적인 명소
하나미코지도리, 야사카 신사, 야사카의 탑을 구경했다.
기왕이면 벚꽃이 활짝 핀 아름다운 다카세 강을 따라 가와라마치까지 내려간다.
교토의 거리, 특히 길의 폭이 좁은 뒷골목은 천천히 걷기에 최적인 듯하다.
단, 앞이나 뒤에서 달려오는 자전거만 주의하면 된다.
자동차는 뒷골목에서 오히려 천천히 다닌다.
기야초 거리와 카모 강 사이에는 아주 작은 골목길인
폰토초(先斗町,Pontocho) 가 이어져 있다.
폰토초 길은 종로2가 먹자 골목인 피맛골보다 더 좁은 골목길이다.
길 양편에는 각종 음식을 파는 올망졸망한 음식점이 줄지어 서있다.
교토에서도 가장 교토스럽다는 이야기를 듣는 길로 알려져 있는데
아직 이른 오전이라 관광객이 없어서 조용하기 이를 데 없다.
집앞 담장에 둥그렇게 대나무로 만들어놓은 것이 무엇인지 참 궁금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누야라이(犬矢来)라고 한다.
견시래, 즉 교토의 건물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나무로 만든 막인데,
개가 오줌을 싸거나 빗물이 튀어서 목조건축물이 부식되는 걸 막는 용도라고 한다.
그럴 법하다.ㅎㅎ
폰토초 골목 음식들 메뉴판을 보니 대부분 비싸다.
적게는 일인당 3,000엔에서 많게는 5,000엔 이상이고,
비싼 곳은 1인당 10,000엔(10만원)이 넘는 곳도 많다고 한다.
음식은 눈으로만 충분히 감상하기로 하고^^
오늘의 목적지는 기온거리이므로 폰토초 골목길을 계속 지나간다.
골목에 늘어선 건물과 건물, 그 비좁은 사이로 스치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카모 강 풍경이 움직이는 화면을 보는 듯 인상적이다.
교토에서 가장 번화가인 시조 가와라마치가 나왔다.
일본 전통 공예품 등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들과 음식점,
명품 매장과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 있는 쇼핑의 메카이다.
이곳에서 다리(시조대교) 하나만 건너면 기온거리이다.
시조대교 바로 건너, 기온거리에는 에도 시대부터 공연했다는
일본의 3대 가부키(전통연극) 극장중 하나인 교토 미나미좌(南座)가 바로 오른쪽에 있다.
1929년에 지어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란다.
기온거리는 원래 교토의 유명한 신사인 야사카 신사를 찾는 참배객들을 위한
숙소와 찻집이 모여 형성된 지역이라고 한다.
그런만큼 오래전의 기온은 고급 음식점과 요정이 꽉 들어차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도가 도쿄로 바뀌고 교토는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기온 또한
일본 전통 공예품, 과자, 차 등의 기념품을 파는 상점과 음식점이 많아졌다.
날이 무척 흐리지만 기온거리에는 일본의 전통문화를 느껴보고자 하는 관광객들로 넘쳤다.
야사카신사를 향해 기온거리를 걷다보니 오른쪽으로 갑자기 넓고 환한 길이 나타났다.
이곳이 하나미코지도리(花見小路通)이다.
'하나미코지도리'가 구글맵에서는 "쇼핑을 즐기고 게이샤를 만날 수 있는 역사지구"라 표시돼 있다.
기온에서 게이샤 문화가 발전하고 게이샤가 활동하는 대표적 유흥가가 형성되면서
기온의 중심에 있는 하나미코지도리는 지금도 밤이 되면
붉은 홍등을 켠 주점들로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저녁무렵 하나미코지도리에 가면 출근을 하는 게이샤(교토에서는 게이샤를 게이코로 부른다)를
볼 수도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환한 대낮인지라 실제 게이샤는 잘 보이지 않고
거리 벽, 여기저기에 붙은 포스터 안에만 한가득 게이샤들이 모여 있다.ㅎㅎ
(며칠 후 거리에서 우연히 진짜 게이샤를 한번 보기는 했습니다.
교토에서 만난 게이샤 이야기는 그때 다시 쓰겠습니다.^^ )
이 거리는 18~19 세기 교토의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전통가옥보존지구로도 지정돼 있다.
현재와 과거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
그래서인지 교토에서 가장 사진 찍기 좋다는 핫한 곳이란다.
하나미코지도리 골목길 끝지점에는 불교사찰 건인사가 있다.
절 입구를 들어서자, 그간 '도리이'라는 붉은 문을 통과해야만 나오는 일본의 신사들만 보다가
갑자기 우리나라 한적한 절에라도 찾아온 양 친숙한 정원풍경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건인사 법당 안에는 용이 그려진 천장화와 일본 국보인 풍신뇌신도가 있다고 하는데(이 장소는 유료다)
굳이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다만, 건인사 정원만 한 바퀴 돌아봐도 기온거리와 하나미코지도리의 번잡함에서 잠시 벗어나
한가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히 좋았다.
근처에 있는 야사카 신사로 갔다.
야사카 신사는 서기 656년에 세워졌는데 다른 신사와 달리
가정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서민들을 위한 신사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교토에 있는 400여 개의 크고 작은 신사중 시민에게 가장 친숙한 신사로 사랑받는다고 한다.
교토사람들이 신사에서 소망을 기원하는 모습이 보였다.
기모노를 차려입은 사람들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지나쳐가는 인연이나마 서로 주거니 받거니 사진 한 장의 추억을 남겨본다.^^
야사카 신사를 나와 야사카의 탑이 있다는 법관사로 향한다.
아름다운 사찰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5층 불탑이 볼 만하다고 하는데
야사카 신사에서 약간의 오르막을 10여분 걸어 올라가야 나온다.
눈앞에 불쑥 인력거가 나타났다.
신사 문 앞에서 대기 중이던 인력거가 미소를 지으며 반기지만
일본의 아기자기한 가옥들을 구경하며 두 발로 천천히 올라가는 즐거움이 더 크다.
주택가 골목 끝에 눈 앞에 우뚝 선, 새까만 색상의 불탑이 나타났다.
야사카의 탑, 5층 불탑이다.
법관사 오중탑은 교토타워가 세워지기 전까지만 해도 교토의 상징이었다고 하는데
과거 막부시절에는 교토를 점령한 세력이 오중탑에 깃발을 꽂아 승리를 알렸다고 한다.
그런 법관사가 야사카 신사와 함께 고구려 도래인들의 사찰이었다고 하니 신기하다.
처음 교토 남쪽에 정착한 고구려인 중 일부가 기온의 야사카노 츠쿠리로 이주했는데
이들이 야사카 신사와 법관사를 만들어 그들의 조상을 섬겼다고 한다.
이런 야사카 신사의 창립에 대한 과정이 일본 고대문서에 그대로 전해진다고 하니
내심 자랑스럽기도 하다.
법관사에서 조금만 더 언덕을 오르면 교토에서
최고 관광명소중 하나인 기요미즈데라(청수사)가 나온다.
여기까지 온 김에 청수사까지 가버릴까 잠시 망설였지만
그러나 청수사는 다음으로 기약한다.
오늘은 사진에서 보이듯이 날씨가 무척 안 좋다.
이렇게 그날의 날씨까지 봐가며 여행지를 고를 수 있는 여유도
한달살기족만 누릴 수 있는 맛이 아닐지?^^
다시 골목을 내려간다.
내려가며 구경하는 골목풍경은 더 편안하고 즐겁다.
좁은 골목길을 내려와 나지막한 언덕이 있어서 그곳에 올라 늦은 점심을 먹는다.
(어느새 시간이 오후 한 시가 다 되었다)
가끔 일본음식을 재미로 사 먹어보고 있는데
역시 우리 음식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하고 힘이 나는 듯!
그런데 밥 먹는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이렇게나 좋다니?
마치 활짝 피어난 꽃과 사람이 하나인 듯 하니
음식도 두배로 꿀맛이다.ㅎㅎ
(2023/3월 중순~4월 중순, 교토 한달살기 중에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쓴 글입니다. 가족 카페다보니 격의없이 씌어지거나 미처 생각이 걸러지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 나름의 솔직한 정서와 감정에 의미를 두고 공유합니다. 때때로 글 중간에 2025년 현재 상황과 심정을 삽입하기도 하고, 글 맨아래 2025년의 현재 생각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호]
오늘(4월 12일)도 벚꽃을 구경하러 나갔다 왔습니다.
사방에서 벚꽃들이 아우성을 질러대더군요.
자기들을 보라고 말입니다.
한때 시인이 되고팠던 농부지만
아직 벚꽃에 대한 시는 짓지 못하고
일본 하이쿠 하나와
한국의 벚꽃 시 한 편을 올려봅니다.
온갖 일들이 떠오른다,
벚꽃이여
-마쓰오 바쇼
봄날은
그리움보다 빨리 지나가고
사랑은
벚꽃보다 더 빨리 진다
-도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