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시라카와(白川) 벚꽃길
(2023년 3월 하순)
[히]
3, 4월 봄의 교토에서는
기껏 열심히 세운 하루 여행 계획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진다.
교토의 주요 명소라고 하는 은각사와, 철학의 길을
드디어 오늘은 가볼 계획으로 길을 나섰건만
카모강을 건너던 중, 벙글거리는 벚꽃으로 뒤덮힌 강변뚝길 앞에서
무작정, 참을 길 없이 꽃길을 따라가버린다.ㅎㅎ
애써 짠 하루 계획을(교토에서 한달씩이나 살기에 가능한 일일 테지만)
일순간 마음 가는 대로 뒤바꿔버린 데 대한 통쾌함(ㅎㅎ)을 만끽하며
강변 뚝길을 걷노라니 갑자기 이런 길이 짠! 하고 나타나 준다.
교토 봄의 보석과도 같은 '시라카와(白川) 벚꽃길'이다.
지도의 표시대로 카모강에서 이 주변 일대가 볼 꺼리도 많고
그다지 멀지 않아 걸어다니며 구경하기 참 좋은 것 같다.
(가와라마치역에서 도보 약 8분 정도, 기온시조역에서 도보 약 3분 거리다.)
이곳 백천 벚꽃길은 일단 운하 옆 도로가
다카세 강(카모강 건너, 기야초 거리에 있는) 벚꽃길에 비해 크고 넓직해서
사람들 사이를 걷기가 편한 데다,
꽂들로 뒤덮힌 전통 가옥들 풍경 또한 다카세 강 벚꽃길과는 또다르게 가히 환상적이었다.
고급요리가게, 료칸, 갤러리 등이 이어지는 가옥들 가운데로
카페처럼 보이는 건물 앞에 큰 돌비석(가비)이 세워져 있다.
일본의 유명 가인(歌人), 요시이 이사무(吉井 勇, 1886 ~1960)의 시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내용은 알 길이 없고,
이 백천 일대가 당시 시인가객들이 사랑했던 찻집들이 늘어선 장소인가보다.
아기자기한 물길 사이로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고,
여름이면 수양버들이 자지러지는 이런 백천 길에서는
그 누구라도 시인이 되어 멋들어진 시 한 수 나올 법하긴 하다.ㅎㅎ
그래서일까요?
얼마 가지 않아 '시' 와 같은,
정겨운 사람들 풍경도 만났다.^^
아름답게 기모노를 차려 입은 두 여인과 노부부가
열씨미 대화를 나누더니 사진을 찍는다.
옆에 있던 아내가 갑자기 남편을 등 떠밀며 여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라고 적극 권유한다?
어색해하던 남편이 못이기는 듯 귀밑머리를 다듬더니
아주 멋스러운 자세를 취하신다.ㅎㅎ
얼마 전 게이샤 관련 다큐에서
일본 여성의 인터뷰(남편이 기생과 하룻밤 외도를 한다면 기꺼이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던)
내용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추정컨대, 오비를 앞에 두른 걸 보면 이 여인들은 꽃구경 나온 기생인 듯하다.
백천 벚꽃길이어서 더욱 더 어우러지는,
살아있는 시 같다.^^
백천 운하는 계속 이어지겠지만 백천의 가장 아름다운 벚꽃길은
불과 약 500여미터로 이 다리가 나오면 끝난다.
자그마한 백천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백천 벚꽃길의 하일라이트같다.
일본의 영화, 드라마의 배경지로 자주 등장할 정도로
교토의 촬영 명소로도 유명하다는 이곳은 지금 꽃천지다.
그림같은 풍경이 저만치 아득한 것이
언젠가 꿈길에서라도 한번쯤 본 듯도 하고...
무작정, 마음 끌리는 대로
벚꽃길 따라 오길 참 잘했다.^^
(2023/3월 중순~4월 중순, 교토 한달살기 중에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쓴 글입니다. 가족 카페다보니 격의없이 씌어지거나 미처 생각이 걸러지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 나름의 솔직한 정서와 감정에 의미를 두고 공유합니다. 때때로 글 중간에 2025년 현재 상황과 심정을 삽입하기도 하고, 글 맨아래 2025년의 현재 생각을 덧붙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