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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 한달살기(8)/난젠지를
지나 철학의 길

철학의 길에서 철학하는 사람들?

by 호히부부

(2023년 3월 하순)


[히]


어제 갑자기 샛길(기온 시라카와 벚꽃길)로 새느라 못 가게 된

교토 동북부 명소 몇군데를 오늘은 하루 날 잡아서 부지런히 다녀왔다.

교토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주로 많이 찾는,

교토의 대표사원 난젠지(남선사)와 지쇼지(은각사),

그 두곳을 수로따라 연결하는 약 2km의 철학의 길,

그리고 길목에 있는 여러 사찰들중에 조용한 산사, 호넨인을 둘러봤다.

(글과 사진이 너무 길어질 듯하여 은각사는 다음 글에서 금각사와 함께 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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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보면 며칠 전 다녀온 헤이안 신궁, 동쪽 주변으로 문화유적이 줄줄이 모여 있다.

철학의 길 코스는 난젠지(남선사)나 지쇼지(은각사) 중 어디서든 시작해도 상관없을 듯하다.

(각자 시간이 되는 대로 원하는 곳만 골라서 가볼 수도 있을 터).


우리는 남선사 바로 인근에 있는 두 곳,

케아게 인클라인 (벚꽃시즌에 더욱 아름다운 교토의 옛 철도)과

블루보틀 커피 교토를 들를 예정으로

남선사 쪽에서 시작했다.

교통편은 갈 때는 숙소에서부터 걸어가고(약 한시간 남짓),

오는 길은 은각사 앞에서 버스를 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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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 신궁 근처에 있는 유람선 선착장에 이른 아침부터 줄이 늘어서 있다. 카모강으로 흘러가는 운하


때가 때이니만큼 오늘도 발길 닿는 곳마다 벚꽃의 향연이 이어진다.

교토는 도심 한가운데, 작은 골목들에 크고 작은 아기자기한 수로들이 흘러

교토 도시의 이미지를 통째로 운치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사람들로 북적대던 중심지와 달리 한가롭고 조용한 헤이안 신궁 근처의 운하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어느새 케아게 인클라인(화물차를 끌어올리고 내리기 위해 만든 경사철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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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흐드러져 장관을 연출하는 옛 기찻길, 케아게 인클라인


폐철길 옆에 나란히 수로가 이어지니 분위기가 독특하다.

케아게 인클라인은 과거 열차가 다니던 게아게 역의 시설로,

1891년 부터 1948년까지 이용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길이 582m의 긴 오르막을 벚나무들이 뒤덮고 있어

특히 벚꽃 피는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인생샷 찍느라 바쁘다.

(우리는 숙소에서부터 걸어서 왔지만 지하철로는 게아게 역에서 내리거나,

버스로는 난젠지 주변에서 내리면 된다).


폐철길 사이로 흐드러진 벚꽃도 예쁘지만,

역시 꽃에 취한 사람들 구경은 더 재밌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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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사 입구 바로 길목에 있다는 블루보틀 커피 교토를 찾아간다.

(그러나 바로 코앞에서 길을 잘못들어 약 20여분? 엉뚱한 도로변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후 찾음.

그럴 때마다 "호"는 구글맵이 갑자기 요쌍하게 안내했다고 말하곤 한다ㅋㅋ).


20230406_142959.jpg?type=w1600 교토 블루보틀 1호점. 일본의 100여년 된 전통가옥을 개조해서 운영


교토에 온 후, 벚꽃잎 찬란했던 다카세 강 수로길에서

우연히 블루보틀 커피(키야마치 카페)를 마시고 홀딱 반했다.

궁금해져 '블루보틀'을 검색해보니 무려 20여년 전에나 생긴,

미국의 스페셜티 전문 커피체인점이었다. (교토에는 세군데 있음).

무엇보다 '커피의 퀄리티를 중요시 한다'는 블루보틀이 좋아져서

두번째로 찾아온, 난젠지 블루보틀 커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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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8_110955.jpg?type=w1600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마당 건너에 건물이 또 있다. 주문은 그곳에서 하는데 이른 오전이라 사람들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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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에쓰프레소가 잘못 나온 줄ㅋㅋ 다행히 맛있어서 용서^^


애써서 찾아온 보람이 느껴지는 커피 맛.

비록 양은 음청~~ 적었으나 대신 혀 끝으로 조금씩 행복을 음미했다.

길 찾느라 헤멘 끝이라 더 맛도 두배였을 듯?ㅎㅎ




그렇게 블루보틀 커피숍에서 나와서 불과 몇발짝 걸었는데

눈앞에 난젠지(南禅寺), 남선사가 있다.

남선사는 1291년에 지어진 불교사원 단지인데 봄 벚꽃과 가을 단풍의 명소임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유럽풍으로 만들어진 아치형 '수로각'이 유명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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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사 입구의 문인 삼문(三門). 일본의 3대 삼문중 하나라는데 유일하게 삼문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함


삼문 옆에 붙어있는 건물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남선사와 교토 시내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하는데 2층 올라가는 데만 입장료가 600엔이란다.

남선사는 우리가 가본 몇군데 절들과 달리 다 따로따로 입장료가 있다.

가레산스이식 정원인 호죠정 600엔, 위쪽에 위치한 정원인 난젠인 400엔 등,

남선사에서 모두 입장을 하려면 무려 1,600엔(약 1만 6천원)을 지불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는 입장료 안내도 되는

경내 자체와 정원, 수로각을 보는 것으로도 대 만족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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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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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인근 '비와 호'의 물을 교토로 끌어들이기 위해 만들었다는 수로각


사찰에 있는 풍경이라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어디 유럽에나 있을 법한 붉은 벽돌의 수로각은 메이지 시대에 설치되었는데

일본 최대의 담수호인 비와 호의 물이

저 높은 수로를 타고 지금도 세차게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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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각에서 쉼없이 흘러내리는 물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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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오른쪽 위 파란 귀퉁이가 '비와 호'이다. 이 물길이 여러갈래의 인공수로를 통해 교토 시내로 이어짐


남선사 수로각 뿐만이 아니라 이 일대(케아게 인클라인 주변)에 조성된

인공시설물을 ‘비와코소스이’(琵琶湖疏水)라 부른단다.


*비와코(비하 호)는 교토 동북쪽에 있는 호수 이름,

‘소스이’(소수)는 관개나 수력발전을 위해 만든 산업용 인공수로를 가리킨다.


비와코소스이는 지금으로부터 137년 전(1885년 착공, 1890년 완공),

교토의 물류 유통과 식수 공급은 물론 수력발전 등에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교토가 부흥하는 결정적인 전기가 됐다고 한다.

오늘 이곳까지 걸어오면서도 아름다운 운하들을 보았지만 그동안 교토시내를 걸으며

사방에서 구비구비 흘러가던 크고작은 운하들을 보노라면 드는 궁금함이 있었다.

이 물들은 다 어디서 내려오는지?


그런데 바로 원류가 '비와 호'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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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호 수로를 따라 걷는 철학의 길(哲学の道) 입구


철학의 길(哲学の道)은 난젠지(남선사)에서부터 긴가쿠지(은각사)까지 약 2km를,

벚꽃을 구경하며(가을엔 단풍) 비와호 수로를 따라가는 아름다운 길이다.

일본의 철학자 니시다 키타로(西田幾多郎)가 이 길을 산책하며 많은 생각을 하였다고 하여

'사색의 작은 길(思索の小径)' 이라고 불리우다,

1972년에 정식으로 '철학의 길'이라는 명칭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이 길은 구경꺼리 많은 교토에서도 가볼만한 곳으로 워낙 유명해서

벚꽃이 만개했을 때 올려고 일부러 아껴두었던 길이다.

그러다 드디어 오늘 오전 내내 길을 돌고돌아 철학의 길에 들어섰으나

철학도 식후경인가, 영혼의 양식을 채우기 앞서 뱃속부터 채워야 할 듯하다.

오후 한시가 넘어가니 배가 너무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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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도, 사람도 철학의 길에서는 '쉼'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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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바 앞에도 철학이 붙은... 식당 앞 대기줄이... ^^


조금 전, 남선사를 구경하고 철학의 길 방향으로 걸어오다 만난 골목 식당들 모습이다.

그간 교토 거리에서 많이 봐온 익숙한 풍경인데,

하물며 이 주변이 유명 관광지임에야 보나마나 한시간 이상 대기는 기본일 터이다.

오늘 일정이 바쁠 듯하여 간단하게나마 도시락을 싸왔더니 예상대로 시간도 절약되고 마냥 흐믓하다.

하긴, 유명한 관광지 하나 더 보기보다 유명 맛집을 찾아 느긋한 기다림의 미학을 즐기다,

그 끝에 인생 음식 한그릇과 조우하는 맛도 여행의 행복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여행의 의미는 다르므로.


어쨌든 꿀맛같은 점심도 맛있게 먹었으니,

슬슬 여유롭게 은각사 방향으로 철학의 길을 걸어가본다.


20230328_130113.jpg?type=w1600 안내지도를 열심히 공부중인 노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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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에서도 맨먼저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하늘을 하얗게 덮은 벚꽃들의 향연이다.

수로 옆으로 늘어선 수많은 벚꽃잎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다.

(꽃들이 만개하길 기다린 보람이 있다^^)

이 철학의 길 벚나무들은 일본 화가 하시모토 간세쓰 부부가

1921년에 300그루의 벚나무 묘목을 교토시에 기증한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 벚나무들은 '간세쓰자쿠라' 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다운로드 (1).jpg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郎)가 읊은 시가 새겨진 가비(歌碑, 노래비)


철학의 길(哲学の道, 테츠가쿠노미치) 중간쯤에는 이 길을 걸으며 철학적 명상을 즐겼다는 니시다 기타로(1870~1945)가 지은 하이쿠(일본의 전통적인 3행시)가 새겨진 시비가 있다.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

나는 나다.

아무튼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왠지 시에서마저 철학자의 고독이(고집이?)느껴진다.


그러나 이 봄 하늘거리는 벚꽃 아래,

세상과 동떨어진 길이 아닌, 사람들 사는 동네 한가운데를 유유자작 걷노라니

이 길이 철학의 길이라지만 철학자처럼 결코 고독해지지가 않는다.ㅎㅎ

오히려 점점이 꽃잎 떠가는 물길따라 이어지는 이 산책길이

정감 넘치고 마냥 친근하게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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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보면(은각사방향) 작은 다리(세심교)가 나오는데 그 다리를 건너서 5분여 걸어가면

조용한 산사 호넨인이 자리잡고 있다.

사람 많은 철학의 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데다,

호젓하고 단순한 정취가 주는 편안함이 철학의 길과 잘 어울리는것이

마치 철학의 절(?)에 온 기분이랄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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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넨인에는 일본의 명사들이 묻혀있는 묘지가 자리잡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 마음을 정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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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목에서 철학하는 사람들?ㅎㅎ


철학의 길에서 한시간 남짓을 걸으며, 쉬며 놀다보니

은각사로 가는, 철학의 길목 끝지점(이자 시작점)이 나온다.


20230328_145608.jpg?type=w1600 벚꽃을 중심으로 왼쪽 길은 은각사 방향, 오른쪽 길은 철학의 길


양쪽 길 다 사람들로 바글바글, 이 일대가 대목중의 대목이다.ㅋㅋ

(은각사 글과 사진은 금각사와 함께 올리겠습니다.)






(2023/3월 중순~4월 중순, 교토 한달살기 중에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쓴 글입니다. 가족 카페다보니 격의없이 씌어지거나 미처 생각이 걸러지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 나름의 솔직한 정서와 감정에 의미를 두고 공유합니다. 때때로 글 중간에 2025년 현재 상황과 심정을 삽입하기도 하고, 글 맨아래 2025년의 현재 생각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2025년, 4월 생각"


[호]


명색이 '철학의 길'인데,

철학적 명제 하나 붙들고 씨름을 하다 왔으면 좋았으련만,

그냥 꽃 구경, 절 구경, 사람 구경만 하고 돌아왔습니다그려.


거창한 철학 명제를 부여안고 씨름하기보단

벚꽃을 띄운 채, 무심하게 흘러가는 물을

'넋놓고(멍때리고) 보고 왔으니' 그게 더 나은지도 모르죠.


매일 오후 3시 정각이면 산책길에 나서서

동네 사람들이 시계를 맞췄다는 일화로 유명한,

칸트가 다녔다던 칸트의 산책길(Kantweg, 칸트의 길)이 생각나게 한

교토의 철학의 길입니다.


교토 시가지를 흐르는 물길은 지금도

벚꽃을 띄운 채 말없이 흐르고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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