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류지(천룡사), 치쿠린(죽림)까지
(2023년 3월 중순~4월 중순)
[히]
교토 한달살기도 중반을 향해간다.
그동안 교토시내 중심지역과 북동쪽 관광지를 주로 걸어서 돌아다녔는데
이번엔 교토 서쪽에서 대표관광지인 아라시야마 지역을 다녀왔다.
아라시야마의 명물, 도게쓰 교(도월교)와 일본 특유의 정원이 아름다운 텐류지(천룡사),
그 뒤로 이어지는 치쿠린(대나무숲)까지 둘러봤다(구경하는 데만 반나절 소요).
이 아라시야마 지역 일대 역시 국가 사적 및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고
일본의 봄 벚꽃,가을 단풍 명소 100선 중 하나라고 한다.
무엇보다 교토 도심을 도도히 흐르는 카모강도 매력적이지만
주위를 둘러싼 풍광 좋은 산세와, 편안하고 소박한 자연미를 간직한
이곳 가쓰라 강과, 달이 건너는 다리라는 뜻의 운치있는 이름,
도월교도 궁금했다.
아라시야마로 가기 위해서 전철을 이용했다.
교토에 막 도착한 날 교토역에서 숙소까지 오느라 전철을 한번 타본 거 외에는
이번이 두번째인데 오늘은 아예 교통카드, 아이코카(ICOCA)를 구매했다.
교토 중심지역에서 아라시야마를 가기 위해서는 전철을 두번 타야 한다.
가라스마 역에서 첫번째 전철인 한큐 교토선을 타고 가다가
환승역인 카츠라 역에서 아라시야마 행으로 갈아타면 된다.
막상 전철을 타고나면 시간이 채 20분도 지나지 않아(환승포함) 아라시야마 역에 도착한다.
아라시야마 역에서 내려 가쓰라 강 방향으로 5분정도 걸어가니 아라시야마 공원이 나왔다.
청명한 강물 위로, 만개한 벚꽃들 사이로 손에 잡힐 듯 도월교가 눈앞에 보이는데,
무려 천여년 전부터 교토 제일의 경승지로서 알려져 있었다고 하는
수변공원부터 잠시 구경한 후 도월교를 건너보기로 한다.
교토 최고의 벚꽃시즌답게 이른 오전임에도 우리보다 먼저온 관광객들이 사방에 많다.
헤이안시대 (800년대)때 일본 왕이 이곳에서 배 타고 노닐다가 '달이 건너는 것 같다' 해서 붙여진,
시적인 이름의 도월교라지만 막상 이른 오전, 맑은 봄 햇살 받으며 건너노라니 이름같은 감흥은 없다.
우리나라 서울 외곽의(마치 청평, 가평처럼) 풍경 괜찮은 유원지에 온 듯한 느낌 정도랄까.
더군다나 이곳 역시 워낙 주변에 사람들이 많다.
엊그제 갔던 '철학의 길'도 마찬가지였지만 어느 계절에 가느냐, 심지어 하루중에도
어떤 시간대에 가느냐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확연히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도월교를 건너 인파 뒤를 졸졸^^ 따라가다보니
금세 텐류지(천룡사)가 나왔다.
텐류지는 입장권이 두 종류다.
정원만 볼려면 500엔. 절 내부를 함께 볼 수 있는 통합 입장권은 600엔.
우리는 정원만 보는 입장권을 끊었다.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텐류지를 다시 가게 된다면 통합입장권을 끊고 싶네요. 이유는 아래에! ㅎㅎ)
본당 앞에 들어서자마자 일렬로 줄맞춰 도열한 모래정원에 온통 시선 집중,
모래 하나만으로도 '정원'이라는 이름이 붙기에 손색이 없는 듯.
1339년 지어진 텐류지는 오래도록 아름다운 건물과 정원의 원형을 유지하여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데 지금의 사찰은 1900년대에 재건된 것이란다.
텐류지 본당 마당 의자에 앉아 눈앞 정원을 바라보니,
오전 내내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여기까지 오느라 부산했던 몸과 마음이 금세 여유로와진다.
편히 휴식 가운데 바라 보이는 풍경은 그 자체로 평화롭지 않을 수 없다.
700여년 전에도 그대로 였을, 산그림자 가득 비치는 고요한 정원인 바에야.
그런데 텐류지 구경 중에 재밌는 것 한 가지가 있었다.
윗 글에서 텐류지를 관람하는 입장권이 두 종류가 있다고 했는데 그 차이가 생각외로 엄청 크다는 것이다.
얼마전, 니조성 본당 안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복도를 따라 정해진 길로만 가면서 눈으로만 내부를 보노라니
별 흥미가 안나서 이번엔 (우리 눈엔 똑같이 보이는^^) 텐류지 본당은 보지 않고
정원만 보는 걸로 입장권을 샀다 (그래봤자 100엔 차이지만).
그런데 텐류지는 달랐다.
통합입장권을 끊은 사람들은 예상과 달리 본당 안도 자유자재로, 내부까지도 들락거린다.
그리고 진짜 인상적인(우스운) 풍경은 정원 구경을 하는 데 있어서도 위, 아래 장소가 다를 줄이야.ㅎㅎ
입장료 100엔(약 천원)의 차이가 텐류지에서는 엄청났다.^^
텐류지 본당 뒤로 이어지는 동산 오솔길을 따라 본격적인 꽃구경을 해본다.
이곳이 또 봄 꽃구경 명소로 교토에서 손꼽히는 곳 중 하나란다.
풍경 속에 자연스레 섞인 채 저마다의 색채와 개성을 미친듯이 뽐내며
지멋대로 뻗어나간, 현란하기 그지없는 색들의 조화가 마냥 눈이 부실 지경이다.
일본의 지독히도 잘 다듬어진 인공정원과는 또 다른, 텐류지 동산의 이 자연스런 느낌이 참 좋다.
가꾼 듯 안가꾼 듯, 세심한 듯 무심한 듯.
이런 분위기를 이토록 조화롭게, 그것도 몇백년을 지속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숨은 노고가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을지?
봄꽃내음 가득한 텐류지 동산을 걷다보면 자연스레 북쪽으로 난 또하나의 출입구와 만나는데
이 문을 나가면 치쿠린(대나무 숲)과 이어진다.
하늘 위로 한없이 뻗은 대나무숲이 보임과 동시에
땅 위에는 숲 사이를 떠밀려오가는 단체 관람객들도 한가득.ㅎㅎ
예전에 노트북 (저절로 바꿔가며 보여주는) 초기 화면에서 우연히
교토 아라시야마 대나무 숲을 본 적이 있다.
'세계 걷기 좋은 명소'로 소개되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마음에 꼭 찍어둔 장소가
이곳 치쿠린 대나무숲길이었건만 이건 당췌 한가롭게 걸을 수가 없다.
봄철의 교토여행, 그것도 극성수기에 바랄 일이 절대 아닌 것이지만.ㅋㅋ
불과 약 400m정도 되는 짧은 대나무 숲 산책로를 인파에 섞여 걷노라니
갑자기 우리나라 담양의 죽녹원이 그리워지는...ㅎㅎ
그래도 멀리서 애쓰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순 없다.
온리 대나무만을 담아보기 위해 고개를 직각으로 쳐들어본다.
(누구라도 대나무숲에서 하는 놀이죵.ㅎㅎ)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푸르른 녹색과 하늘색,
사이사이를 따뜻히 비춰주는 고마운 햇빛.
댓잎들이 바람에 찰랑찰랑, 사각거리는 청량감을 맘껏 만끽해보는 시간.
치쿠린 서쪽에 붙은 아라시야마 공원 길을 걸어
다시 도월교쪽으로.
공원길 강변따라 오다보니 그 유명한 '% 아라비카' 카페 앞에 줄이 줄줄이다.
일본인이 만든 브랜드라는데 인기가 어마어마하구나.
교토에 있는 동안 한번쯤은 '응?' 커피를 맛 봐보고 싶어서 검색해보니
청수사 앞과 이곳 두군데만 나온다.
이눔의 줄 때문에ㅋㅋ 과연 실현될런지?
돌아가는 길은 교토 중심지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올 때 탔던 전철과 마찬가지로 20~30분이면 교토시내에 도착한다.
아라시야마 지역은 교토 근교임에도 불구하고 이만하면 참 편하게 구경 나오기 좋은
자연 속 여행지라는 생각이 든다.
수려한 산과 강을, 운치있는 도월교를, 아름다운 텐류지 정원을, 사각거리는 대나무숲 길을
오감으로 보고 느끼며 걷노라니
비록 봄철 성수기, 많은 사람들 속에 몸은 섞여 있을 지언정
마음은 봄소풍 나온 듯한 설레임으로 자연을 만끽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한나절이었다.
(2023/3월 중순~4월 중순, 교토 한달살기 중에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쓴 글입니다. 가족 카페다보니 격의없이 씌어지거나 미처 생각이 걸러지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 나름의 솔직한 정서와 감정에 의미를 두고 공유합니다. 때때로 글 중간에 2025년 현재 상황과 심정을 삽입하기도 하고, 글 맨아래 2025년의 현재 생각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호]
나도 언젠가
저 강물처럼
푸르고 한가롭게
흘러가는
소풍 같은 하루를
살고 싶었다.
김용택 시인의 시,
'섬진강'처럼
소풍같은 하루를 보낸
아라시야마의 강물과
벚꽃을 떠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