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넨자카의 다다미방 커피한잔
(2023년 3월 중순~4월 중순)
[히]
3월 말에서 4월 초, 교토의 봄은 사방에서 정신없이 휘청거리는 벚꽃잎들로 온 거리가 찬란하다.
어렵사리 이 때에 맞춰 교토를 찾았으니 하루가 다르게 피어나는 벚꽃 만개 속도에 맞춰
우리도 부지런히 벚꽃따라 다니는 중.ㅎㅎ
날씨까지 화창한 날, 오늘은 교토의 대표 불교사원 청수사를 찾았다.
갈 때는 버스로(청수사 주변 정류장에서 내려 도보 10여분),
올 때는 청수사 입구에서부터 이어지는 내리막 골목길인 산넨자카와 니넨자카로 걸어내려오며
일본의 전통기와들과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다다미방 커피숍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스타벅스 니넨자카점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도 가져봤다.
천년고도 교토답게 이곳에는 알려진 문화유적이 참 많지만
청수사(기요미즈데라)는 그중에도 교토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찾아오는,
교토에서 가장 유명한 대표관광지이다.
교토 시내의 동쪽에 있는 오토와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서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교토 시가지 전망이 일품인데다,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지어진 나무 사찰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원 메인 건물로 들어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서자,
입구에 화려한 삼중탑이 위용있게 서있고 교토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까지는 입장료 없이 가능한 구간이고
청수사의 상징이자 국보로 지정된 본당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입장권을 사야 들어갈 수 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나왔더니(지금 시각 오전 9시)매표소에 줄이 거의 없어서 다행이다.
청수사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입구에 정체 모를 무거운 쇠막대기와 쇠나막신이 놓여있고
그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쇳덩이를 들어보려 애쓴다.
근데 엄청 무거운지 꿈쩍을 안하네?
알고보니 이런 스토리텔링이 있다.
"남자가 쇠나막신을 만지면 한 여자에게만 얽매여 살고,
여자가 만지면 평생 신발 걱정없이 부자로 살 수 있다.
또 쇠막대기를 들어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근데 그걸 또 해보겠다고 사람들 줄이 계속 이어진다.
우리도 별러서 일찍 온다고 온건데 우리보다 한발 먼저 온 사람들이 사방에 바글거린다.
이런 부지런한 사람들이라니... ㅎㅎ
하긴 벚꽃철이나 단풍철에는 명소일수록 이른 시간에 오지 않으면
줄 서서 기다리다 하루가 다갈 수도 있다.
청수사 본당 앞에 왔으나 눈앞에는 향 냄새 자욱한 연기 사이로 서성거리는 사람들만 보일 뿐,
정작 전통 목조건축의 걸작이라고 하는 청수사 전체 외관은 여기서는 볼 수가 없다.
하긴 섬을 떠나야 섬이 보이듯이... 청수사를 한눈에 감상하기 위해서는
본당 옆으로 연결되는 숲속 산책로로 걸어들어가야 한다.
숲속산책로를 따라가다 오크노인 홀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눈에 모습이 드러나는 웅장한 청수사.
바로 이 모습이다.
교토 청수사 관련 내용을 인터넷으로 검색할 때마다 보았던 청수사 풍경이다.
청수사를 가장 가까이서 찍는 포토존이 이곳, 오크노인 홀이라
인터넷에서 본 청수사 사진들 각도가 다 같을 수밖에 없겠다.ㅎㅎ
'물이 맑은 절'이라는 뜻의 청수사는 780년에 헤이안시대 승려 엔친이 건립한 것이란다.
그 사이 화재 등으로 인한 소실과 재건이 반복됐고, 최근 2017년에 전면 보수교체공사 끝에
현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본당의 지붕은 50년마다 새로 교체를 하는데 재료가 소나무껍질이라고.
숲속 산책로가 살짝 구부러져 있어서 청수사 본당하고 연결된 옆건물들이
한걸음 한걸음 걸어나갈수록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모양새가 재밌다.
본당 한가운데서는 아예 보이지 않던 청수사를 숲길, 신비로운 자연과 더불어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이다.
청수사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은 벚꽃나무들도 많지만
붉은 단풍으로 물드는 가을 청수사도 대단한 절경이라고 한다. 가히 그럴법하다.
울창하고 고요한 숲속에서 조금씩 달라져 보이는 청수사 모습에 마음을 뺏기며
금세 숲길 한바퀴를 돌아나오는데 거의 끝무렵에 청수사에서 유명한 오토와 폭포가 보인다.
'맑은 물의 절'이라는 청수사(清水寺)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단다.
청수사(清水寺) 이름에서 의미하듯이
오토와 폭포는 청수사에서 신성한 장소로 여겨지는, 또 하나의 관광포인트란다.
이 오토와 폭포에도 전해지는 얘기가 있는데...
"3개의 물줄기(지혜, 사랑, 장수)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마시며 소원을 빈다.
그런데 하나만 빌어야 효과가 있고, 둘을 빌면 절반으로 깎이며
셋을 다 빌면 벌을 받는다."
나처럼 결정장애가 있는 사람은 고민될 일이다. 마시기 전에 진지하게 잘 생각해야 할 듯.ㅋㅋ
이곳 역시나 줄이 엄청 길었다.ㅎㅎ
아침 9시에 청수사 구경 시작, 끝나고 나오니 10시 40분,
청수사 입구에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이제 청수사에서 내리막 골목길로 슬슬 내려간다.
일본의 옛날 골목, 산넨자카와 니넨자카 풍경이 이어진다.
전통 가옥들과 함께 각종 기념품, 간식들이 즐비한 이 골목길은
교토 명소인 청수사를 보기 위해서는 꼭 지나가야 되는 길목인데
가게마다 개성있고 독특한 구경꺼리가 많아 지루할 새가 없다.
다만 한눈팔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곳 골목 역시나 괴담이 나돈다.
"산넨자카에서 넘어지면 3년간 재수가 없고,
니넨자카에서 넘어지면 2년간 재수가 없다"
그런데 더 우스운 건 만약 넘어졌다면
곳곳에서 파는 액땜용 호리병을 사면 액막이를 해준다고!
참 이곳저곳 관광지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본식 스토리텔링이
우스우면서도 잠시 잠시 단순하게 즐거움을 준다.ㅎㅎ
그냥 관광지가 아니라 기억 안에 그 장소가 이야기로 남게 만드는 힘이 있다.
청수사의 오토와 폭포가 그저 물줄기가 아니라 '소원을 담은 물'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순간,
사람들은 열심히 소원을 비는 의식을 하게 되듯이,
우리도 산넨자카, 니넨자카에서 넘어지지 않을려고 다리에 힘을 팍 주고 다녔다.ㅎㅎ
그렇게 쉬엄쉬엄 가다보니 저 앞에 하얀 우산 세개가 나란히 걸린 가게가 눈에 띈다.
가까이 가보니 우산 옆에 니넨자카라고 써진 목판이 보인다.
여기서부터가 산넨자카가 끝나고 니넨자카가 시작되는 경계인 듯?
다 그게 그 골목이지만.ㅎㅎ
산넨자카보다 비교적 덜 붐비는
니넨자카에서 좀 쉬며 커피 한잔을 하기로 한다.
유명한 스타벅스 니넨자카 점이다.
(그런데 눈 크게 뜨고 집중해서 찾지 않으면 눈앞에서도 스르륵 지나침.ㅎㅎ)
‘다다미방이 있는 스타벅스’로 유명세를 타면서 매일 호황이라는데
오전, 이른 시간이라 (그래봤자 11시지만) 잠깐 기다리니 자리가 났다.
기왕이면 다다미방에 앉아 커피를 마시니 이게 또 뭐라고 즐거움.^^
그렇게 산넨자카, 니넨자카의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와
채 10여분도 안걸려 마루야마 공원에 도착했다.
(교토에서만이 아니라, 전국의 벚꽃명소로 알려진 마루야마 공원의 꽃놀이는
다음 글에 올립니다.^^)
(2023/3월 중순~4월 중순, 교토 한달살기 중에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쓴 글입니다. 가족 카페다보니 격의없이 씌어지거나 미처 생각이 걸러지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 나름의 솔직한 정서와 감정에 의미를 두고 공유합니다. 때때로 글 중간에 2025년 현재 상황과 심정을 삽입하기도 하고, 글 맨아래 2025년의 현재 생각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호]
니넨자카, 산넨자카 관련된 이야기를 다시 보고 있으니,
옛날에 들었던 '3년 고개'에 관한 고사가 생각납니다.
전래 민담이나 전설에서 유래된 3년 고개 이야기는,
이 고개에서 넘어지거나 구르면 3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내용인데,
100번만 구르면 300년은 살 수 있으니 개이득이겠습니다그려. ㅎㅎ
비슷한 민속 설화는 일본, 중국, 베트남에도 유사하게 존재하고,
교토의 니넨자카, 산넨자카도 이것이 변형된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들이 오래 살고싶은 욕망이 대비된 이야기로,
'삼천갑자 동방삭(三千甲子 東方朔)' 도 있지요.
기원전 2세기 한무제 때의 인물이라는데 전설 속의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지요.
전설에 따르면 동방삭이 서왕모(西王母)의 불로장생의 선도복숭아를 훔쳐 먹고
천년 이상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60년)를 3,000번 하면 180,000년이 되는 셈인데
엄청 오래된 시간을 상징하는 것이겠죠?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서복(徐福)을 제주도로 보냈으나
서복은 불로초를 구했지만 진시황에게 돌아가지 않고
제주도에서 영원히 살았다는 전설과도 일맥상통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제주도를 좋아하고
제주도에 오면 구좌읍에 있는 서복전시관을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민담이나 전설 등 전해져오는 이야기,
스토리텔링은 이제는 관광산업에서도 빠지면 안되는 중요한 요소가 된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