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놀이에 풍덩 빠진 사람들
(2023년 3월 중순~4월 중순)
[히]
교토 도심 한가운데,
연일 관광객의 물결로 인해 좁고 혼잡하기 이를 데 없는 기온의 한복판에
힐링을 주는 매력적인 공원이 있다.
교토시에서 설립한 가장 크고 오래된 공원(1886년), 마루야마 공원이다.
기온거리 주변 명소를 구경하다가 한번쯤 우연히라도 만나게 될 정도로 근접성 좋은 도심 속 공원인데
때맞춰 벚꽃 만개한 주말에 마루야마 공원을 찾았다.
3,4월의 교토 하면 벚꽃이 떠오를 정도로 가는 곳마다 벚꽃명소 아닌 곳이 없을 지경이지만
마루야마 공원은 교토를 넘어서서 일본에서도 인기있는
하나미(벚꽃구경) 공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특히 이 시기에는 현지사람들도 많이 찾아와 휴식을 취하고
관광객은 걷다가 지친 몸과 마음의 피로를 이 공원에 앉아 쉬며 풀기도 한다.
입구의 어여쁜 호수를 지나
공원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풍경들.
벚꽃나무 사이로 나지막한 실개천이 흘러가고
그 사이로는 아이들이 천진하게 놀고있는 모습.
이곳은 낙원이런가.... ㅎㅎ
하늘을 뒤덮은 벚꽃그늘 아래,
삼삼오오 모여앉아 제각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모습은 또 왤케 친근한지...
낯익은 돗자리 때문인가. ㅋㅋ
우리도 이윽고! 준비해온 마트표 도시락을 꺼내 이들 무리에 합류한다.
이참에 우리도 돗자리 하나 장만할까 생각도 해보면서...ㅋㅋ
마루야마 공원에는 약 800여그루의 벚나무가 심어져 있다고 한다.
그중에도 공원 최고로 손꼽히는 벚나무는 수양버들처럼 가지가 축축 늘어지는 벚꽃,
이름하야 '시다레자쿠라(수양벚꽃)'이다.
벚나무 한그루가 이토록 크고 찬란하다니.
수양벚꽃은 야생에서 주로 자라지만
이 벚나무처럼 높이가 10m 이상의 나무도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축축 늘어진 아름다운 벚꽃잎들을 부여잡고 세상 진지하게 온갖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 모습도 꽃구경만큼이나 재밌다.ㅎㅎ
마루야마 공원 주변에 있는 포장마차 가게들도 기웃거려본다.
(평일에는 문 닫힌 가게들이 많았는데 주말이라 오늘은 다 열려있네?)
그냥 빈손으로 가볍게 놀러와서 꽃구경 실컷하다가 허기가 진다면?
맛있는 길거리 음식을 즉석에서 골라 사먹어도 재밌을 것 같다.ㅎㅎ
교토 마루야마 공원에서는 매년 3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라이트업 행사를 진행한다.
밤 벚꽃의 정취는 낮과는 전혀 다른, 잊지 못할 또하나의 황홀함을 선사할 것이다.
포장마차 촌의 분위기도 역시나 덩달아 들뜰 테고.
아예 평상(?)이 한가득 놓여 있는, 꼭 우리네 시골 장터국밥 집같은 식당도 보인다.
정처없이 흘러가는 이 봄,
벚꽃 그늘 아래서, 꽃향기 맡으며 빈대떡에 막걸리나 한잔 한다면...
술이 꽃인지, 꽃이 술인지! ㅎㅎ
이 대목에서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쓰신 이생진 시인의 시 한구절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하고..."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꽃이 취할 것 같은...ㅎㅎ
꽃놀이에 풍덩 빠진 하루이다.
(2023/3월 중순~4월 중순, 교토 한달살기 중에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쓴 글입니다. 가족 카페다보니 격의없이 씌어지거나 미처 생각이 걸러지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 나름의 솔직한 정서와 감정에 의미를 두고 공유합니다. 때때로 글 중간에 2025년 현재 상황과 심정을 삽입하기도 하고, 글 맨아래 2025년의 현재 생각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호]
벌써 4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올해는 이 4월이 언제 지났는지 모르고 보냈습니다.
4월 초에는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는 두번째 사건 때문에...
4월 말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급작스런 서거로...
사월은 어린 내 외갓집 울타리 담장을 넘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꽃피고 새 우는 사월은 가고 없다.
어느새 흰 눈처럼 흩어져 버린
사월의 햇살 아래
나는 아직도 울타리 밖에 서 있다.
-윤동주의 시 '사월'
일제 강점기인 1942년 일본에 유학을 떠나
1943에 교토 도시샤 대학에서 공부하던 윤동주 시인도
봄날에 마루야마 공원을 찾았을 터,
'어느새 흰눈처럼 흩어져 버린 사월의 햇살 아래'
벚꽃잎들을 바라보며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울분을 달래지 않았을지요.
그로부터 2년후인 1945년 2월 16일, 해방을 6개월 앞둔 채,
불과 27세의 나이로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