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중순~4월 중순)
[호]
일본의 대표적인 선불교 사찰, 료안지(龍安寺)를 다녀왔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돌로 만든 정원인 석정(石庭)으로 유명하다.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은 물론,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많이 찾는 명소로도 평가받는,
료안지의 유명세에 비해 입구는 동네 이름모를 절에라도 들어가는 양 수수하다.(입장료 500엔)
그런데 절 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고요한 작은 호수와 그윽하기 그지없는 자연 풍광이 기다렸다는 듯이 눈앞에 아름답게 펼쳐진다.
사찰 내부가 그리 넓지 않아서
아래 지도의 화살표 방향으로 따라가면
한 시간 안팎이면 샅샅이 돌아볼 수 있다.
사무소(寺務所)라는 이 건물을 들어가면
석정을 품은 방장(方丈) 건물로 연결돼 있다.
크고 작은 15개의 돌이
작은 모래로 이루어진 바닥에 자연스레 배치돼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곧장 실물을 보러 간다.
료안지(龍安寺)는 원래 도쿠다이지 가문의 별장이었으나
1450년 호소카와 카츠모토에 의해 선사로 창건되었고,
오닌의 난으로 소실됐으나, 1499년에 재건됐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정은 무로마치 시대 말기인 1500년경,
토쿠호오 젠게츠를 중심으로 한 선승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어느 곳에서 보아도 15개의 돌이 한번에 다 보이지 않고
14개까지만 볼 수 있게 배치돼 있다고 하는데,
이는 완전함은 볼 수 없고, 항상 부족함을 인식하라는 선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돌 구경에 정신이 없다.
나도 그 틈에 앉아 보지만 불멍과 물멍은 비교적 쉬운데 돌멍,
즉 돌을 보며 멍때리기가 쉽지 않다.ㅎㅎ
어느덧 자연스럽게 돌이 몇개인가 세어보고 있다.
14개 말고 '하나 더!'를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완전함은 볼 수 없고, 항상 부족함을 인식하라는 선의 가르침'이 마냥 무색하다.ㅎㅎ
본당 격인 방장 내부를 구경하고 돌아나오면
후원 한곳에 글자가 사방에 새겨진,
꼭 옛날 동전처럼 생긴 샘이 하나 보인다.
다실에 들어가기 전에 손이나 입을 맑게 하기 위해 세숫물을 담아둔 돌 그릇인,
스쿠바이(蹲踞,蹲)다.
료안지의 스쿠바이는 단순한 세면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단다.
사용자가 물을 길을 때 몸을 구부려야 하므로
겸손과 존경의 태도를 자연스럽게 실천하게 된다는 것.
또한 돌 표면에는 글자들(五・隹・矢・疋)이 새겨져 있는데 이 글자들만을 읽었을 때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각각의 글자를 제대로 읽으려면
그릇 중앙의 "口(구)"자를 결합시켜야 한다.
"口"를 합치면 각각 오유타쿠치(吾, 唯, 知, 足)인데,
직역을 하면 "나는 오직 족(足)함을 알 뿐이다"란 뜻이란다.
만족과 겸손의 미덕을 강조하는 선종의 가르침을 담아
물질적 풍요를 넘어 정신적 풍요를 추구하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다시 아름다운 호수 정원을 돌아나온다.
석정을 보고 돌아서 나올 때쯤 깨달음이 큰 사람은 뭔가 뿌듯할 테지만,
평범한 필부에게는 그저 그런... 모래 위의 돌덩이들,
사상다석(沙上多石)일 뿐이니,
우째야 할꼬나......
일본의 미적 개념인 *와비사비(わびさび, 佗寂)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걸까?
*와비사비란 일본어 와비와 사비가 합쳐진 말이다.
와비는 단순한 것, 덜 완벽한 것, 본질적인 것을 의미하고
사비는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인 오래된 것, 낡은 것을 뜻한다.
이 두 가지가 어떤 사물, 풍경, 예술 작품에 그윽하게 깃들어 있을 때
와비사비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부족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 든 깊이를 문득 깨닫는, '와비사비 라이프'는
'미니멀 라이프'와도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실개천가에 핀 주먹만한 벚꽃을 보다가 잔잔한 감동이 이는 것이,
이 또한 '와비사비한 하루'라고 표현해도 될른지? ^^
(2023/3월 중순~4월 중순, 교토 한달살기 중에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쓴 글입니다. 가족 카페다보니 격의없이 씌어지거나 미처 생각이 걸러지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 나름의 솔직한 정서와 감정에 의미를 두고 공유합니다. 때때로 글 중간에 2025년 현재 상황과 심정을 삽입하기도 하고, 글 맨아래 2025년의 현재 생각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호]
엊그제는 어린이날과 부처님 오신날이 겹친
화창한 황금 연휴가 이어졌지요.
부처님이 사방 어디에나 계시듯,
어린이도 사방 어디서든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요즘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함께 뛰어노는
어린이를 잘 볼 수 없습니다.
많던 어린이집이 하나둘 없어지고
그 자리에 요양원이 들어서는 현실을
어린이날에 한번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