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하나 붙잡고 첫 한달살기 시작
(2014/6월, 뉴욕 한달살기 중에 가족카페에 '실시간'으로 쓴 글입니다. 가족카페다보니 격의없이 씌어지거나 미처 생각이 걸러지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 시절만의 옛스러운 정서와 감정에 의미를 두고 공유합니다. 가끔 글 중간에 2025년 현재의 상황과 심정을 삽입하기도 하고, 글 맨아래에도 2025년의 현재 생각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호]
어쩌다 보니 뉴욕에서 약 한달 가량을 머물게 됐다.
지난주 뉴멕시코주 산타페에 있던 막내 별이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고
곧장 뉴욕으로 온 것이다.
별이가 이번에 대학(세인트존스 컬리지)을 졸업하면서
학교 프로그램에 낸 기획안이 채택되어
뉴욕 필름 아카데미에서 한달간 영화제작 과정을 공부할 수 있는 총 비용 지원을 받게 됐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속담처럼, 우리도 어렵사리 미국까지 온 터에
이 기회를 놓칠세라 별이와 함께 뉴욕에 머물기로 했다.
뉴욕에서 우리가 머물게 된 숙소는 한국인 소유 아파트를 중국 유학생 모자와 함께 쓰는
쉐어 하우스 형태인데 무엇보다 위치가 맨하튼 99가 웨스트 앤드에 있다.
별이가 매일 공부하러 가는 뉴욕 필름 아카데미와도
비교적 멀지 않아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면 되기 때문에
한국 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플러싱이나 뉴저지쪽보다는 맨하튼의 방값이 좀 비싸긴 하지만,
그만큼 맨하튼이란 편리성과 시간 절약이란 이점이 더 커서
생각 끝에 이곳을 계약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 아파트의 서쪽으로는 허드슨 강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센트럴 파크가 이어져 있어서
아침이나 저녁 나절에는 운동하기가 참 좋다.
어제는 집을 나와 센트럴 파크까지 서너 블럭을 걸어 나가서 곳곳을 돌아다녀 보았다.
맨하튼 한가운데 위치한 센트럴 파크는 동서로 80m, 남북으로 4km나 되는 도심공원이다.
서울숲과 비슷한 크기라고 하는데, 20여년 전 뉴욕에 처음 와서 봤을 때처럼 놀라움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롤러 블레이드나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가는 사람,
아이팟을 왼쪽 팔에 감고(왜 아이팟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왼쪽팔에 찰까?)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조깅하는 사람들....유모차를 밀고 천천히 거닐거나,
정말 종류도 다양한, 각양각색의 개를 끌고 산책하는 뉴요커등....
이런 여유있는 모습은 한껏 부럽기는 하다.
이뿐 아니라 이곳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을 위한 각종 탈 것들이 마련돼 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자전거이고, 일명 자전거 택시로도 불리는 페디캡(Pedicap)과 마차까지 준비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운동을 하기 위해 (제주 이마트에서 산) 워킹화를 신고 나왔으므로,
여기저기 하염없이 구경하며 걷기로 한다.
곳곳에 잘 가꿔진 잔디밭에서는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거나,
음식을 준비해서 아이들과 함께 나와 담요 위에서 뒹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가하면 빌딩숲 사이로 잔디밭 한 곳에서는
수많은 무리들(거의 여자들)이 다리를 치켜세우고 요가삼매경에 빠져있다.
사실 한강 둔치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날씬한 사람들은 왜 그리도 죽어라 열심히 달리는지...
하기야 그런 노력이 없다면 저절로 저런 건강한 몸매가 나오지 않으리...
남자도 마찬가지다.
좋은 체력을 가진 한 남자가 저 멀리서 커다란 아령을 들고 뛰어온다.
그냥 달려도 땀이 흐르는 날씨인데 엄청 큰 아령이라니?
사진을 찍으려 하자, 내 앞으로 다가와 아령을 들어보이는데,
가짜 아령인 모양이다. 가볍게 들어올려 보여준다. ㅎㅎ
오늘은 이왕에 빵을 싸왔으니, 우리도 한가롭게 그늘진 벤치에 앉아 구경을 하며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또 한 가지는 땡볕 아래 잔디밭에 누워 선탠을 하는 사람들이다.
한 아가씨가 옆에 다른 사람이 있건 말건, 가지고 온 담요를 한번 털어 잔디밭에 휙 펼치고는
윗옷과 반바지를 훌렁 벗고 비키니 차림으로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발랑 누워버린다.
참 자유롭다! 저런 자연스러움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다른 사람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사회도 용인할 뿐 아니라 내적 성숙이 따라야 하리라.
오후에는 센트럴 파크의 남쪽 끝까지 가서
콜롬버스 써클에서 시작해 브로드웨이를 따라 미드타운까지 계속 내려가본다.
맨하튼에서 가장 붐비는 곳, 타임즈 스퀘어를 지나 브라이언트 파크, 메이시스 백화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그리고 코리아 타운까지 천천히 걸어가도 30여분이면 족하다.
하지만 하루 유동인구 300만명, 세계의 교차로라는 타임즈 스퀘어를 가로질러 지나가려면
출근길 신도림역을 빠져나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전광판이 휘황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저녁 피크타임이 아니라,
한낮이어서 많은 인파에도 불구하고 큰 어려움 없이 지나왔다.
다음날, 아침을 일찍 먹은 후 운동을 하러 허드슨 강으로 나갔다.
허드슨 강은 맨하튼의 서쪽으로 흐르는데
집을 나서면 5분도 안돼 강변의 공원에 가닿을 수 있다.
어제 센트럴 파크에서도 느꼈지만 이곳에 나가봐도 많은 사람들이
아침, 낮, 저녁을 가리지 않고 운동을 하고 있다.
'뉴요커들은 도대체 언제 나가서 일을 하기에 하루종일 이렇게 조깅을 하고 있나?'
자연 속 헬스장인 공원과 강변은 그렇다 치고
아침이면 도로에도 정장이나, 운동복 차림에 배낭을 멘 자출족(자전거출퇴근족)들도 꽤 많이 보인다.
허드슨 강 서쪽에 만들어진 리버사이드 파크 자전거 전용도로는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기에 아주 좋게 돼있다.
자동차는 물론 없고 신호등이 없으며 자전거 전용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어
그 옆을 걸어다니다 보면 자전거가 엄청 빨리 씽하고 지나간다.
건강한 뉴요커들의 모습이 인상적이고 활기차다.
한달간을 뉴욕에 머물기로 한 터라 6월 1일, 한달짜리 정기 지하철 입장권(Metro Card)을 샀다.
112달러 정액권인데 지하철과 시내버스는 한달동안 무한정 탈 수 있다.
뉴욕 지하철은 110년 전에 개통된, 유수한 전통 때문에 지하철역과 철로,
지하철 내부까지 지저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계에서도 가장 깔끔하고 깨끗한 서울의 지하철과 비교해본다면 그렇다.
하지만 총24개 노선이 뉴욕시 전체를 24시간 샅샅이 훑고 다녀,
지하철 표 하나만 들고 다니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정액권은 무한정 이용할 수 있어 금상첨화다.
앞으로 하루 한번은 이 지하철을 타고 이곳저곳 뉴욕을,
맨하튼을 부지런히 돌아다녀볼 참이다.
언제 또 우리가 물가 비싼 맨하튼 한가운데 이렇듯 낭만적 뉴요커가 되어
살아볼 수 있겠는가 싶다.
[호]
이렇게 돌이켜보니 뉴욕 맨하튼에서 한달살기를 한지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사실 저는 한번도 뉴욕에서 한달살기를 꿈 꾼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뉴욕이라는 도시와의 만남은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1990년대 중반, 기자로 일할 때 취재차 뉴욕에 왔었고
이 도시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세계의 용광로 같은 도시의 활기찬 모습에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언젠가 뉴욕을 꼭 한번 보여주면 참 좋을 텐데’하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1997년 여름, 세 딸과 함께 세계일주 여행을 떠났을 때
처음으로 온 곳이 미국이었던 것도 그 영향입니다.
그때는 뉴욕에서 일주일 남짓 머물며 두 번째로 뉴욕과 만났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온 뉴욕은 이곳저곳 보여줄 곳이 많아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5년 뒤 2002년 여름,
두 번째 세계일주 여행 때 다시 찾은 뉴욕은 더이상 이전에 만난 ‘낭만적인’ 뉴욕이 아니었습니다.
2001년 벌어진 9.11 테러의 여파로 슬픔과 불안으로 가득한,
그러나 도약을 위한 재정비를 하는 뉴욕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10여년이 지난 2014년 6월,
그간 마음으로만 벼르고 있던 해외 한달살기를 뜻밖에 (계획에도 없던)
뉴욕에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에 썼던 글들을 읽어보고 있으니
이전에 만났던 뉴욕과는 또 다른 여유와 낭만이 느껴지네요.
이렇게 보니 뉴욕이라는 도시가 그때마다 달라지고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나의 환경과 상황, 마음 속 여유와 시선이 달라졌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뉴욕은 지하철에서 연고가 없는 승객을 선로로 밀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나
무차별 총격 사건 등 어이없는 사건들이 여러 차례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실 뉴욕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이 트럼프 집권 이후
불법 이민자 추방정책을 개시해 뒤숭숭한 상황인 듯합니다.
예전에 느낀 이 도시만의 독특한 활기와 낭만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은 아닐까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든, 또 어떤 도시든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은 항상 있어왔고,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도 인류는 항상 빛을 찾아나갔습니다.
이렇게 거나하게 인류까지 운운할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뉴욕이라는 도시에 대한 저만의 애정이 있어 이런 말이 나오는 듯 합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 다시 뉴욕에서 한달살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이 도시가 어떻게 변화했고 어떤 새로움을 담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히]
얼마 전 우연히 TV(톡파원 25시)에서 ‘뉴욕 한달살기’에 필요한 숙소를 비롯,
생활물가 정보를 보여주는 방송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미국인은 절대 뉴욕에서는 한달살기를 하지 말라 하고,
네이티브들도 그 도시에는 안 산다는 말을 하기도 하더군요.
그정도로 물가가 비싸고 살기 힘든 도시라는 뉘앙스였습니다.
미국에서도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 맨하튼에서 한달살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특히 비용면에서)를 가져야 하는 것인지 새삼스레 놀랐습니다.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겠지만, 그럼에도 2014년 뉴욕 역시
다른 곳들 보다 훨씬 비싸고 한달살기는 커녕 여행도 엄두가 안 나는 도시긴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2014년이 우리에겐 더욱더 큰 기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말이 있지 않나요? 모든 어려움 속엔 기회가 있다고.^^
글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막내딸과 낑겨 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뉴욕 한달살기를 하는데 숙박비가 공짜라니 없던 용기라도 만들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ㅎㅎ
우리가 막내를 잘 꼬셨던(?) 덕분에 막내딸도 얼마든지 와서 같이 지내자고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첫 해외 한달살기를 하던 때의 나이가 저희 부부 모두 50대 중 후반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한참 열심히 돈을 벌어도 부족할 나이였건만 저희는 조금 일찍 은퇴를 했고 돈을 아끼며 살지만 대신 시간은 많은, 시간 부자였습니다.
그럼에도 절약해야 한다는 마음에 선뜻 한달살기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나뭇가지(?)하나 붙잡고 한달살기 여정의 시작을 질러 버린 것이죠.
그것도 통크게 뉴욕 맨하튼에서. 하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용기내서 했든 안 했든 아껴가며 살아야 하는 것은 똑같더군요.
남은 것은 열심히 썼던 글과 풍성한 사진, 아련한 추억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