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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하튼 (4)/걸어서 동네 한바퀴

허드슨 강변을 걸어서 다운타운으로

by 호히부부

(2014년 6월)


[호]

뉴욕에 온 지 벌써 한 주가 지났다.

낮에는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오후 늦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집 앞 마켓에서

그날 저녁거리와 다음날 아침 먹을 거리를 사가지고 돌아오는 게

상주적 여행자로서의 일상이다.

밤새 창문 밖 거리 곳곳에서 앰뷸런스와 경찰 순찰차, 아니면 소방차의

왱왱, 삐뽀뻬뽀, 뚜우뚜우 소리에 시달리다가

아침 6시쯤 눈을 뜨면 잠을 잔 건지 아닌지 몽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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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명물 옐로우 캡과 엄청 시끄러운 앰뷸런스


오늘은 지하철을 타지 않고 허드슨 강변을 걸어서 다운타운으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아침 운동을 하기 위해 집에서 나와 매일 한 시간쯤 걷곤 하는 곳이긴 하지만,

이곳에 나올 때마다 약간의 질투심과 함께 부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서울의 한강변도 이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좋은 곳이지만,

잘 꾸며진 시설 뿐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여유로운 이곳 모습들에 살짝 배가 아프다고나 할까?


오랜 세월의 더께가 느껴지는 센트럴 파크 모습


이런 쉴 곳을 참 많이도 만들어 놓았는데 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태국 방콕의 차오프라야 강의 활력이 넘치는 모습과 비교해 볼 때 이곳은 적막할 정도다.

운동을 위해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많지만, 생업을 위한 바쁜 움직임은 없다.

아울러 허드슨 강변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도 거의 볼 수 없다.

바다낚시나 민물낚시나 낚시면허를 구입해야 한다고 들었지만,

뉴욕 인근의 롱 아일랜드로 바다낚시는 많이들 나가는 것 같은데 민물고기는 잘 잡지 않는지,

허드슨 강변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모습을 아직 보지 못하겠다.


99가 어퍼타운에서부터 쭉 걸어서 미드타운 웨스트 45가까지 거의 1시간 30여분 걸렸다.

타임스퀘어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뉴욕 기마경찰들도 보인다.


맨하튼을 누비는 기마경찰대


뉴욕 맨하튼의 기마경찰대는 센추럴 파크나 타임스 스퀘어에서는 관광객들을 보호하거나

관광객들의 사진찍기 홍보용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지난 2011년 월가 시위때는 기마경찰대가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하니, 용도가 다양한가 보다.

하긴 멀리서부터 말발굽소리도 힘차게 달려오면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기가 쉽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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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곳곳에는 무인 자전거 공동이용 시스템인 시티바이크 정거장이 보인다.

시티바이크는 지난 2013년 5월 27일 당시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새롭게 선보인,

버스와 지하철에 이은 '제3의 대중교통수단'이라고 한다.

이 시티바이크 시스템의 도입을 위해 당시 블룸버그 시장은

허드슨 강을 비롯, 맨하튼과 뉴욕시내에 560km가 넘는 자전거 도로를 만들고,

330군데의 자전거 대여소와 6,000대 이상의 자전거를 비치했는데 지금은 훨씬 더 늘었다고 한다.


허드슨 강변의 자전거 도로가 한가롭다


빌리는 요금은 하루 9.95달러, 7일간 25달러, 1년간 95달러(세금 별도)라고 한다.

(미주 한국일보에 따르면, 2025년 2월 6일부터 비회원의 경우

일반 자전거 1회 이용 기본요금은 현행 4달러 79센트에서 4달러 99센트로 인상되고,

전기 자전거(e-bike)는 분당 36센트에서 2센트 뛴 38센트가 적용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자체마다 이런 공공 자전거를 대여하고 있지만,

오르막 내리막이 많은 도시지형 특성상 이용객들이 힘들어서

긴 거리를 잘 활용되고 있지 않은 데 비해,

맨하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는 듯하다.


메이시스 앞 거리를 오가는 시티투어 버스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The World's Largest Store, Macy's) 이라는

플래카드를 써붙인 메이시스에 들어갔다.

90여년 전인 1924년 이후 세계에서 가장 큰 매장을 가진 백화점인 메이시스는

2009년 부산의 신세계 팬텀시티가 이곳보다 두배 넓이의 매장을 개장,

그 자리를 넘겨주게 됐지만 아직도 미국내 800여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어,

미국을 대표하는 백화점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백화점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만들어진 에스컬레이터가 아직도 곳곳에서 운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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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만든 엘리베이터... 세일기간이어서인지? 아내 뒤로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마침 폭탄세일기간, 중저가의 상품 위주로 진열돼 있는 탓에

모처럼 아내의 심장과 발길에 불이 붙었다.

평소에 백화점 쇼핑에는 관심이 없던 아내가 이곳에서만큼은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축지법 신공을 발휘한다.

이쪽 매장에서 보이는 듯하다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반대쪽 매장까지

홍길동이나 임꺽정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넓은 백화점을 마냥 휘젓고 다닌다.

첫날은 정신없이 다니며 예쁜 옷이 많다고 탄성을 지르더니,

이튿날 다시 와보고선 어느새 백화점 쇼핑에 시들해졌는지 별로 살 것이 없다고 한다.

중저가라서 가격대비 괜찮은 옷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마음에 딱 드는 옷을 발견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여성의류매장 한 층도 제대로 다 돌아보지 않고서 하는 말이니 믿을 수 없지만,

내 마음 속으론 '이게 어찌된 좋은 일이냐?'는 심정으로 일견 위로의 말을 건네며 얼릉 나왔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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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1_100618.jpg 당일 뮤지컬 티켓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엄청 서있다.


뉴욕의 사계절은 언제 어디서나 축제가 열리지만,

특히 여름이 되면 볼 만한 페스티벌들이 사방에서 열리게 된다.

센추럴 파크는 물론, 브라이언트 파크, 허드슨 리버파크 등 곳곳에서

각종 무료 공연, 무료 영화제 등이 열린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머리품과 발품을 잘 팔아

이곳에 머무는 동안 문화적 소양을 좀 쌓고 싶다.

무협지에서 고수의 도움으로 한 순간에 무공이 깊어지는 것처럼

문화적 소질도 일취월장할 수는 없는지....ㅎㅎ


공연 예술의 중심 센트럴 파크. 마천루를 배경으로..




두발로,지하철로,버스로 기웃기웃두발로,지하철로,버스로 기웃기웃


(2014/6월, 뉴욕 한달살기 중에 가족카페에 '실시간'으로 쓴 글입니다. 가족카페다보니 격의없이 씌어지거나 미처 생각이 걸러지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 시절만의 옛스러운 정서와 감정에 의미를 두고 공유합니다. 가끔 글 중간에 2025년 현재의 상황과 심정을 삽입하기도 하고, 글 맨아래에도 2025년의 현재 생각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2025년의 현재 생각"


[호]

옛 글과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새삼

10년을 훌쩍 건너 뛴듯,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이란

시와 노래가 생각납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옛날만 남는 것이 아니라

추억과 그리움,

미련과 아쉬움이

가슴 속 어딘가에 남아

풍경처럼 울리는 것일테죠.


센추럴 파크 내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저수지 앞에서 해질녘 경치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



[히]

살면서 백화점에서 쇼핑을 해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고보니 결혼 이전에는 가끔씩이나마 백화점을 들락거린 기억이 있는데

결혼 이후로는 백화점 쇼핑과는 멀어진 삶을 살고 있네요.

그런 제가 뉴욕의 메이시스 백화점에서

남편 왈 '축지법 신공을 발휘할 정도로 심장과 발길에 불이 붙었다'고 하니

이 어찌된 일일까요.


10년이 지난 지금,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남편 생각대로,

내가 진심 백화점 쇼핑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고,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라는 메이시스에서 (눈높이도 낮은 내가)

마음에 딱 드는 옷을 발견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실은 그놈의 '가성비' 좋은 옷이 없었던가 봅니다.

백화점 '폭탄세일'이라고 해서 일말의 기대속에 가격표를 확인하면

제 기준에는 언감생심이었을테니!


그러니 지금 역시도 백화점 쇼핑에, 폭탄세일에도 여전히 흥미가 없을 수 밖에요.ㅎㅎ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맨하튼 한인마트. 물가 비싼 뉴욕이라지만 서민들 마트물가는 한국보다 저렴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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