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자전거 소고(小考)
(2023년 3월 중순~4월 중순)
[호]
1000년 고도(古都) 교토는 예로부터 수많은 유적들이 많아서
2차대전 당시에도 일부러 미군이 폭격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전에 교토를 다녀간 루즈벨트 당시 대통령이 요청했다지요?)
1994년 유네스코는 교토의 17개의 유적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이런 문화유산을 돌아보며 "내맘대로 문화유산답사기"를 한번 적어보려 한다.
그럼에도 문화유산에 대한 내용이 아닐 수 있음을 미리 고백한다.
교토에 와서 부러웠던 것 중의 가장 첫째가
수많은 유적들보다 먼저 도시 전체가 자전거 친화 도시라는 점이었다.
교토에도 지하철과 버스가 다니지만,
우리나라처럼 지하철이나 버스가 서로 환승이 연계되지 않아서
버스나 지하철을 갈아타면 또다시 요금을 지불해야 하고,
대중교통 요금도 한번 타는데 230엔(약2,300원)이고 거리에 따라
추가요금이 붙는 체계라 비싼 편이다.
그래서 교토에서, 아니 도쿄나 일본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자전거가 필수 이동수단이 아닌가 싶다.
794년 헤이안 시대에 당나라 장안성을 모방해 1/4로 축소해 만든 교토 도심의 대부분은
미국의 로스엔젤레스 도심처럼 길이 바둑판같이 일정하게 가로 세로로 갈라져 있어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가 아주 좋은 첫번째 장점이 있으며,
두번째 이유로는 도쿄나 교토, 오사카, 나고야 등 대부분 도시는
도심에 산이 없고 지형이 평탄해서 자전거를 타기에 어려움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부산이나 마산의 지형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울 것같다.
자그마한 언덕과 산복도로가 많은 지형에선 자전거를 타기가 쉽지 않다.
서울에서도 한강변에서는 자전거를 타기 쉽지만,
남산이나 언덕길이 많은 곳에선 자전거 타기가 어렵다.
분지인 교토는 도심 한가운데를 흐르는 카모 강변과
여기저기 운하가 흐르는 등 시가지 중심부 전체가 언덕이 거의 없다.
경북 상주시도 그림에서 보듯 시가지 중심부는 평탄하다.
프랑스 파리,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덴마크 코펜하겐,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등이 자전거 도시가 된 이유도 그렇다고 본다.
그래선지 아침 출근 시간뿐 아니라 낮이나 밤에도 길을 나가보면
모든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있다.
엄마들은 자전거 앞뒤로 아이들을 태우고 유치원이나 학교로 데려가고,
중고등학생들도 교복을 입고 자전거로 등교를 한다.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많이 등장하지요?)
직장인들은 넥타이를 맨 양복 차림이나 짧은 치마를 입고서도 씩씩하게 페달을 밟는다.
물론 지하철 역까지 가서 자전거를 두고 출근하기도 한다.
그래서 집앞에 세워진 자전거 숫자를 보면 그 가족 인원수를 알 수 있을 정도란다.
나또한 고등학생 시절 3년동안 자전거로 등하교를 했다.
다행히 분지여서 비교적 완만한 언덕만 있었던 대구의 지형적 특성상
자전거를 타고다니기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자전거와 사람, 리어카, 버스등이 엉켜 다니던 도심 도로 사정상
자전거 사고를 여기저기서 목격하셨던 부모님은 자전거를 쉽게 사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이틀간 방문을 걸어 잠그고 단식투쟁(?)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처음 사주셨던 신사용 자전거는 대문안 마당에 세워뒀는데 도둑이 들어 잃어버렸고,
두번째로 샀던 자전거는 손잡이가 아래로 휘어진, 아래 사진처럼 생긴 경주용 사이클이었다.
물론 뒷바퀴 위에는 책가방을 실을 수 있도록 짐받침대를 설치했다.
이 자전거를 타고 3년동안 참 많이도 다녔다.
집에서 5~6km 떨어진 고등학교까지 매일 왕복하는 것은 물론,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거나, 휴일에는 혼자서 대구 근교를,
연휴에는 친구들과 80여km 떨어진 경주나 제법 원거리까지 자전거로 여행을 다녔으니 말이다.
대학생때는 여름방학중에 자전거에 텐트를 싣고 광주에서 출발해
순천-여수-진주-마산-창원-부산-경주-영천-대구까지
일주일 걸려서 대구까지 혼자서 여행하기도 했다.
그때 탄 자전거 덕분에 내 다리통은 웬만한 쇼트트랙 선수처럼 튼튼해져서
지금까지도 걷는(?) 데는 이상이 없다만...^.^
각설하고,
이처럼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는 일본에서는
자전거 관련 법규가 상당히 까다롭다고 한다.
먼저 자전거를 구입하면 500엔을 내고 방범등록을 해야 한다.
(도쿄,오사카,교토 등 대부분 도시에서 의무등록하게 돼 있습니다).
그래야 도난당했을 때나 무단주차로 자전거가 유치됐을 때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자전거는 자동차처럼 면허증이 필요한 것은 아니나
교통사고를 일으키면 사고의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자전거보험은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단다.
현재 일본에서 자전거 관련 법규위반에 해당하는 사항은 다음과 같은데,
우리나라의 자전거 관련 법규와 비슷한 듯.
-자전거에는 흔히 따르릉거릴 수 있는 벨이 있는데,
위험 방지를 위해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서 사용할 수 있다.
-강아지를 산책시킬 목적으로 자전거를 타는 행위는 안 된다.
-스마트폰을 하면서 자전거를 운전하는 것도 안 된다.
-우산을 쓰고 자전거를 운전하는 것도 안 된다(비가 올 때는 우의를 착용).
-mp3와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운전하는 것도 안 된다.
-한 대의 자전거를 동시에 두 명이 타도 안 된다(공원 등에서 타는 2인승 자전거나 유아용 시트는 제외).
-어두워지면 라이트를 꼭 켜야 한다(무등화는 대표적인 경찰의 불심검문 대상이 된다).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좌측주행을 해야 한다.
-사람이 걷는 보도로 달릴 수 없다. 자전거는 차도 쪽으로 서행해야 하며, 혼잡시에는 내려야 한다.
(실제 차도의 가장자리에 자전거가 달릴 수 있는 실선이 표시되어 있다).
-음주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일시 정지를 해야 하는 장소에서는 정지해야 한다.
-일방통행로에서 역주행하면 안 된다(자전거는 가능하다는 표시가 된 일방통행 도로에서는 무관).
-역주행을 해서는 안된다.
-진로 변경시 수신호를 해야 한다.
-13세 미만 아동은 보호헬멧을 착용해야 한다(올해 4월 1일부터는 어른도 의무화됨)
-이외에도 신호 무시와 같은 기타 안전 운전 의무 위반이 있다.
이런 일본의 자전거 문화는 다른 나라도 대동소이할 텐데,
네델란드나 독일 등 유럽에서도 이와 비슷한 규정과 각종 수신호가 있는 걸로 안다.
우리나라의 수신호를 한번 보겠다.
시내 곳곳에 무인 공공 임대 자전거 거치대도 있으나
일반 자전거숖에서도 자전거 렌트가 가능하다.
드디어 교토에 온 지 거의 3주만에
숙소 근처의 자전거점에서 반나절 자전거를 빌려 타고서
6.6km 떨어진 후시미이나리 신사에 다녀왔다.
딱 보기에도 좋은 자전거가 아닌,
자전거 앞에 일명, 장바구니가 달린 업무용(?) 중고 자전거이다.
렌트비가 한대당 하루에 700엔이지만, 반나절에는 500엔이다.
자전거를 타고 카모강변을 거쳐 후시미이나리 신사로 가기 위해
우리 숙소에서 니조 뒷골목을 신나게 달렸다.
그런데 말이지... 정말 우습게도...
"기술의 실패" 현상과 맞딱뜨렸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나 잘 탔던 자전거를,
교토 거리를 누비고 싶어서 안달이 났던 내가,
차도에서 인도로 가는 턱을 넘지 못하고,
벌러덩 넘어져 버리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바로 이 높이다. 약 3cm나 될려나?
자전거 그림이 그려진 차도로 계속 가도 됐지만,
신호대기 하는 차들이 있어서 인도로 가려다가 그대로 넘어진 것이다.
핸들 앞 장바구니에 무거운 배낭을 담아가다가 핸들을 돌리는 순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핸들이 미쳐 덜 꺾인 채 옆으로 꽈당!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원숭이띠인데 그대로 나무에서 떨어진 격이니. ㅠㅠ
근처 편의점 약국을 찾아 피가 흐르는 두 무릎에 연고와 밴드를 사서 붙이고
다시 전장으로 나가는 병사처럼 씩씩하게가 아니라,
뒤따라오던 아내가 보는 앞에서 넘어져 체신이 말이 아닌 상태로ㅎㅎ
그동안 그토록 고대하던 카모강변으로 나갔다.
자전거를 눕혀 놓고 강변에서 쉬고 있는 사람도 만나고,
우리나라 까마귀보다 거의 두배나 몸집이 큰 까마귀떼가
사람들이 던져주는 모이를 받아먹으러 내려오는 모습도 보고,
편히 쉬고 있는 재두루미도 보면서
후시미이나리 신사까지 달려갔다.
여우신사로 알려진,
후시미이나리 신사까지 1시간여 걸린 듯하다.
빨간 도리가 1만여개 줄줄이 세워져 있는
그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아래는 비교불가한 사진 두장이다. ㅎㅎ
교토에서 자전거를 빌려타고 교토거리를 다녀본다는 취지는 성공했지만,
이번의 자전거 타기는 완벽한 기술의 실패로,
좋은 교훈을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겠다.ㅎㅎ
(2023/3월 중순~4월 중순, 교토 한달살기 중에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쓴 글입니다. 가족 카페다보니 격의없이 씌어지거나 미처 생각이 걸러지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 나름의 솔직한 정서와 감정에 의미를 두고 공유합니다. 때때로 글 중간에 2025년 현재 상황과 심정을 삽입하기도 하고, 글 맨아래 2025년의 현재 생각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호]
자전거를 소재로 한 이야기나 영화는 참 많습니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이탈리아 영화 <자전거도둑>을 비롯해
중국의 왕 샤오슈아이 감독의 <북경자전거>도 있고,
김소진 작가의 소설 <자전거도둑>,
김훈 작가의 수필 <자전거여행>(1편:2000년, 2편:2004년)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김훈은 이 책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
그 나아감과 멈춤이 오직 한몸의 일이어서,
자전거는 땅 위의 일엽편주처럼 외롭고 새롭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1976년 여름, 광주에서 대구까지 혼자서 자전거여행을 하면서
저는 자전거여행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자전거는 거짓이 없다.
자전거 조종사가 쉬지 않고 계속해서 노력을 하면,
그 사람이 노력한 만큼의 댓가를 지불해준다.
급한 용무나 혹은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할 필요가 있을 때도
공짜로 데려다 주는 법이 없다.
자기에게 보내주는 그 사람의 성의와 노력이
자신의 몸에 닿아야만 꼭 그만큼의 댓가를 건네준다"
딱 스무살 때 쓴 글이니
김훈 작가의 필치와 비교할 수 없겠죠! ㅎㅎ
[히]
사는 동안 '호'의 자전거 사랑이 참 대단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새로운 도시를 여행할 때마다 습관처럼 자전거 길이 잘 돼있는지를 살피는가 하면,
심지어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기 좋은 지역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곤 합니다.
자전거에 얽힌 추억의 무용담을 때때로 자랑스럽게 말하곤 하던 '호'가
교토에 온지 3주만에 그렇게나 관심있게 살펴보며 이리저리 아끼던 자전거에 드디어 올랐습니다.
쌩~ 하고 달려나가는 그 행복한 뒷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새도 없이...
갑자기 뒤따라가던 제 눈앞에서 꽈다당 넘어지는데,
그것도 일어나다 또 꽈다당, 두번씩이나...에고!
눈앞에 맥없는 노년의 '호'가 보이기도 하고,
그래도 다시 일어나 (분연히ㅋㅋ) 자전거에 오르는 모습에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기술의 실패'라는, 나름 멋들어진 해석으로 그날 해프닝은 마무리 됐지만
상처가 깊어 양 무릎에 흉터가 남았습니다.
매사에 더욱더 신중하고 조심스런 여행을 해야 함을 느끼게 해준 사건(?)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