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강과 교토 대학생들
(2023년 3월 중순~4월 중순)
[호]
어디서 시작하면 좋을까.
나의 까마득한 대학시절을 잠시 한번 떠올려보면서...
카모 강변이 있는 교토에서는 대학생들이 참 행복할 것 같다.
교토에서 한달살기를 하며
몇 군데 대학을 일부러 들어가 보았다.
가장 먼저 도시샤(동지사,同志社) 대학을 두번 가보았고,
바로 옆에 붙은 도시샤 여자대학은 들어가 보지는 않고 정문 밖에서 보았으며,
도쿄대에 이어 1897년 두번째 제국대학으로 개교한 이래,
19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2명의 필즈상(수학계의 노벨상), 5명의 레스커상(미국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교토(경도,京都) 대학도 두번 들어가 보았다.
또 며칠 전, 금각사에 갔다가 료안지(용안사,龍安寺)를 걸어가는 도중에 보았던
리쓰메이칸(입명관,立命館) 대학도 정문까지만 가봤지만,
어제는 교토부립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
올해 입학한 리쓰메이칸 신입생들이 입학식을 마치고 길거리에서
함께 이야기하며 서있는 모습도 보았다.
교토의 봄 벚꽃처럼 활짝 피어난 20살 꽃다운 청춘들답게
얼굴에서부터 희망에 부푼, 풋풋한 표정이 나온다.
4월 첫주인 이번 주간은 개강을 앞둔 시기라
도시샤대학 교정은 각종 동아리 선배들이 나와서
신입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벌이고 있었다.
교토 대학도 마찬가지였지만,
더 조용하게 신학기를 맞이하는 듯하다.
하긴 캠퍼스가 세 군데이니 다른 곳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교토대학은
신자유주의 학풍과 자유분방한 괴짜대학으로 유명한 때문에,
학기 중에는 물론이고, 졸업때까지 별의별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일례로 독일어 시험 당시 교수가 "시험때 뭐든지 가져와도 좋습니다"라고 했더니
실제로 독일인을 데려온 학생이 있었다는.ㅎㅎ
이런 자유스런 학풍으로 교토학파가 유명하고,
일본 최다 노벨상 수상자가 이곳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매년 3월 교토대학 졸업식 코스프레 또한 일본에서 유명하다.
졸업생들의 코스프레 사진을 한번 보면,
유치원도 아닌, 일본 최고의 일류대학 졸업생이 우수졸업상을 받는 장면이다.
(이해가 가십니까? ㅎㅎ)
하긴 의정부 고등학생들도 졸업앨범 사진 코스프레를 하지만
엄숙한(?) 졸업식장에서까지 코스프레를 하진 않지 않나?
요즘 참석자가 거의 없어 졸업식도 별도로 하지 않는 우리 대학 실정을 생각하면
이렇게라도 하는 게 좋을까?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교토대 졸업식 사진 몇장을 더 보겠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또 하나 있다.
위의 세 군데 대학만 얼핏 보고 성급히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교토의 대학 정문 앞에는 서울의 신촌이나 홍대 앞, 혜화동 대학로처럼
음식점, 술집, 카페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2차선 도로와 버스 정거장이 전부인, 썰렁할 정도의 대학 정문들이더라.
솔직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교토의 대학생들은 입학 직후의 첫학기나 시험이 끝나면
동아리 모임이나 출신 고교 모임이다 뭐다 하며 학교앞 술집에 가서
부어라마셔라...를 하지 않는 걸까?
일본 대학생들은 방과후 저녁에는 그냥 근처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나 캔맥주를 사서
학교 인근 공원이나 근처의 카모 강변에서 서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며 건전하게(?) 보내는 걸까?
아직 일본 대학생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지만,
일본 유학생들의 브이로그 등을 보면 그런 것 같거등요. ㅎㅎ
꼭 100년전인 1923년 4월,
도시샤 대학에 입학한 정지용 시인은
일본 유학생활 3개월만인 7월 즈음에
교토를 흐르는 카모 강가에서 이런 시를 썼다.
<압천>
鴨川(압천) 十里(십리)ㅅ벌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 여울물 소리
찬 모래알 쥐여 짜는 찬 사람의 마음
쥐여 짜라 바시여라 시언치도 않어라
역구풀 욱어진 보금자리 뜸북이 홀어멈 울음 울고
제비 한 쌍 떠ㅅ다 비마지 춤을 추어
수박 냄새 품어오는 저녁 물바람
오랑쥬 껍질 씹는 젊은 나그네의 시름
鴨川(압천) 十里(십리)ㅅ벌에 해가 저물어 저물어
※ 압천 : 교토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 가모카와(鴨川)
교토에서 한달살기를 하며 거의 매일 카모 강을 건너거나,
강변을 거닐며 느낀 점은 교토 주민이나 대학생들은 카모강이라는
참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강변에 앉아 잔잔히 흐르는 강물과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청둥오리, 두루미, 비둘기, 까마귀 등 새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교토 주민들과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부러움과 함께
도심 한가운데 이만한 넓이와, 깊이와, 유속을 지닌 강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와 함께 드는 생각 한가지는,
언제 꼭 한번 기회를 만들어 교토대학의 계약연구원으로 지원해서
한 2년간 교토에서 생활해보면 좋겠다는 것이다.
(막연한) 꿈을 품고...
교토대학 홈페이지와 교토대학 한국인 유학생 커뮤니티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방법을 찾고 있는 나자신을 발견한다.ㅎㅎ
하긴 까까머리 중학생이던 1970년대 초반쯤에
일본 아이지현(愛知縣)에 거주하시던 먼 친척이 고향에 오셔서
일본에 대해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해주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막연한) 꿈을 품고...
일본에 가서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 친척에게 용감무쌍하게 편지를 쓴 아련한 추억이 가슴 속에 있다.ㅎㅎ
이러다 교토 한달살기 후에
교토와 사랑에 빠지진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한다.^^
두번째,
내맘대로 문화유산답사기였습니다. ㅎㅎ
(2023/3월 중순~4월 중순, 교토 한달살기 중에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쓴 글입니다. 가족 카페다보니 격의없이 씌어지거나 미처 생각이 걸러지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 나름의 솔직한 정서와 감정에 의미를 두고 공유합니다. 때때로 글 중간에 2025년 현재 상황과 심정을 삽입하기도 하고, 글 맨아래 2025년의 현재 생각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호]
일본은 나에게, 혹은 우리 국민에게
참 가깝고도 먼 나라인 듯합니다.
어려서부터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혹은 소설이나 수필을 보고 듣고 자라고,
정교한 샤프 펜슬이나 SONY 워크맨을 가진 친구를
부러워하며 자랐던 세대라 그런가, 한때는
일본의 모든 것이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지금도 일본을 찾는 한국 관광객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고
평상시에는 일본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국가대표 선수들과의 시합이 있으면 완전 달라집니다.
야구,축구 등 인기있는 구기종목 경기는 물론이려니와
권투, 레슬링, 피겨스케이트 등 거의 모든 운동경기에서 일본은
무조건 이겨야합니다. ㅎㅎ
일본이 독도를 다케시마라 부르고, 종군위안부의 존재를 부인하면
모든 국민이 나서서 유니클로 제품이나 일본 자동차 구매를 거부하는 등
돌연 애국 투사 모드로 돌변하지요.
한국인들이 일본(인)에 대해 문화적으로는 좋아하거나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역사적·정치적·감정적으로는 반감을 가지며 경쟁심이나 적대감을 느끼는
이 감정을 전문가들은 양가감정 (Ambivalence)이라 부르더군요.
저또한 교토에서 한달살기를 하며
마찬가지로 이중적이고 다양한, 복잡한 감정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