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본 '게이샤의 추억'
(2023년 3월 중순~4월 중순)
[호]
게이샤.
게이샤의 추억.
책이나 인터넷으로, 또 영화로도 게이샤에 대해 많이 보고, 듣고 해서
제법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토에 와서야 그렇게 많이 알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우선 게이샤란 단어의 의미를 알아본다.
첫째,
게이샤는 일본 전통여성 예능인으로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생이지만 매춘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처음 알았지만),
커피의 한 종류로 아주 고급 품종의 아라비카 커피라고 한다.
커피이름에도 게이샤라는 이름의 커피 (Geisha Coffee)가 있다는 게 신기하여 좀 더 알아보니,
에티오피아 게샤(Gesha) 지방에서 나온 커피로, 이름을 등재할 때 발음하기 좋도록 ‘i’를 끼워 넣는 바람에
커피 업계에서는 Geisha 커피로 알려졌단다.
우리나라에서 게이샤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은 매우 한정돼 있고 대단히 가격이 비싸서
고급 커피 마니아가 아니면 잘 접하기 어려운 커피라고 한다.
커피와 홍차, 꽃 향이 섞인 듯한, 섬세한 향미가 아주 복잡하고 고급스런 느낌이라는데
언제 맛볼 기회가 있으려나?
어쨌든 게이샤 커피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접고,
진짜 게이샤에 대한 얘기로 넘어간다.
사실 교토에 오기 전에 올해초 넷플릭스에 올라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데
별로 재미있는 줄도 모르겠고, 크게 와닿는 부분이 없어서 1편을 조금 보다 말았다.
또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헐리우드 영화인 "게이샤의 추억"도
그런 영화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내키지 않아 차일피일하다 교토로 왔다.
그러던 중 교토 거리를 돌아다니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일부러 넷플릭스를 연결해 위의 드라마와 영화를 다시 찾아보게 됐다.
물론 고레에다 감독이 마이코...밥상을 만든 후,
이 영화가 일본에서조차 아동 학대나 미성년자 성 착취를 다루지 않고
게이코를 너무 미화했다는 평이 나온 것을 보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선입견 없이 단지 눈에 익은 교토의 길거리가 영상에 나오기 때문에
이즈음에 다시 한번 봐보기로 한 것이다.
교토에서는 게이샤를 게이코로 부른다든지,
게이코가 되기 전의 수습생은 마이코로 불리운다는 등의 상식도 영화를 보며 알게 됐다.
교토에 와서 거의 매일이다 싶게 기온 거리, 하나미코지도리, 폰토초 거리 등을 걸어다니다보니
마이코 밥상이나 게이샤의 추억에 나오는 이곳의 길거리 여러 장면들이 눈에 바로 들어와
새삼 반가운 마음으로 화면에 집중하기 좋았다.
어느날 오후,
다카세 강변을 가고 있는데 우연히
무개차 벤츠에 올라 출근을 하는 게이샤를 만났다.
아쉽게도 아직도 마스크를 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듯 인력거를 타고 일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요즘 게이샤들은 이렇게 신식 출근을 하나보다. ^.^
출근하는 게이샤와는 대화를 못해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ㅎㅎ
대신 게이샤의 대모(?)로부터 얼굴 가까이 두번째 사진 찍는 것은 제지받았다.
최근 일본에서 평균 연봉 10억을 받는다는
게이코들 중 톱인 1994년생 사츠키는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역대 최고 게이샤 1등상을 7년 연속 수상했다는데 교토 기온의 하나마치 출신이란다.
(그러나 그 연봉이라는 것이 교토나 오사카의 부호 스폰서들로부터 받는,
사실상 화대라든가 하는 상세한 내용은 더이상 알고 싶지는 않다).
또하나는,
게이샤의 추억이란 영화를 보다가 든 생각이다.
이 영화는 이미 많은 분들이 지적한 대로,
미국인 아서 골든의 같은 제목의 책을 영화화한 것으로,
미국인 감독 롭 먀셜이 장쯔이, 양자경, 공리 등 중국 여배우 세 명을 내세워
헐리우드 자본으로 영어로 만든 영화라서
과연 게이샤에 대한 내용을 제대로 담아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토의 아기자기한 거리 풍경은 참 제대로 담아낸 듯 싶었다.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과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 나왔던,
빨간 도리가 줄지어 서있는 후시미이나리 신사의 도리는 이렇게 생겼다.
이곳 신사는 일본 전역에 3만여개나 있는 후시미이나리 신사의 본점이라고 하는데,
전국에서 보내준 도리가 만여개가 넘게 이곳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기모노를 입은
한 여인이 도리에 기대어 사진을 찍고 있다.
여우신사라는 별명이 붙은 대로
곳곳에 곡식 이삭을 문 여우상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여우를 모시는 신사는 아니고,
이나리 신을 모시는 심부름꾼이 여우라서 그렇다고 한다.
요 며칠,
이런저런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을 내어 숙소에서 걸어서 30여분 거리의
교토부립도서관에 다니고 있다.
거기서는 공공 와이파이와 전기를 맘대로 쓸 수 있다.
매번 숙소에서 글을 쓰다가 가끔 지겨워서
스타벅스나 맥도널드, 혹은 카페에 나가서 써봤지만,
우리나라 카페와는 달리 전기를 무한정 쓰게 하지 않거나,
심지어 교토의 공공 와이파이도 15분마다 다시 로그인을 해서 하루 4번만 연결이 가능해,
이래저래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하긴 요즘 우리나라도 카공족을 없애기 위해 전기 콘센트를 막는 스타벅스점도 있고,
반대로 위의 사진처럼 카공족을 위한 독서실 형태의 단독부스를 제공하는 카페도 있다니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두고봐야 할 듯하다.
도서관 1층에 가보면,
"소설 가운데 교토"라는 별도 코너가 있는데
거기에 아서 골든의 <게이샤의 추억>을 번역한 "사유리"란 제목의 책도 꽂혀 있다.
일본어를 못해 읽을 수 없지만, 내용은 같겠지?
카모가와 강인 압천(鴨川)이 들어간
<압천 식당>이란 책도 있었다.
"카모메 식당"이나 "심야 식당"처럼 잔잔한 내용일까?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교토의 거리를 이리저리 쏘다니다보면
(여기서는 그냥 다니는 게 아닌, 쏘다닌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
이래저래 '별 씰데 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23/3월 중순~4월 중순, 교토 한달살기 중에 가족 카페에 '실시간'으로 쓴 글입니다. 가족 카페다보니 격의없이 씌어지거나 미처 생각이 걸러지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그 나름의 솔직한 정서와 감정에 의미를 두고 공유합니다. 때때로 글 중간에 2025년 현재 상황과 심정을 삽입하기도 하고, 글 맨아래 2025년의 현재 생각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호]
교토를 배경으로 한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 '게이샤의 추억'도 그랬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이나 여행중에 그 나라,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동영상물을 틈나는 대로 찾아보곤 합니다.
그러면 가고자 하는 도시에 좀더 친숙한 감정이나 호기심이 생기고
음악으로 치면 꼭 라이브 음악을 듣는 것처럼 마음도 생생합니다.
거리를 돌아다니다 영상에서 봄직한 풍경을 발견하는 즐거움,
저절로 스토리텔링까지 떠오르는 그 순간은 이미 낯선 공간이 아닌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도시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자유롭되, 정직한 영화 한편의 책임감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건 그렇고,
다른 나라 한달살기를 할 때면 근처에 도서관을 찾아보곤 하는데
일본 교토부립도서관과
대만 까오슝시립도서관,
미국 보스톤시립도서관,
태국 치앙마이국립도서관의 건물이 깔끔하고
이용하기에 편했던 기억이 남습니다.
요즘 며칠간 국립세종도서관과
세종시립도서관을 들락거리는데
이곳의 도서관들도 이와 못지 않고,
오히려 더 깨끗하고, 이용하기 편리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앉아
물끄러미 노트북 화면을 보거나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학구적, 진취적인 학생들과 이용객들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 생각되어 기분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