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왜 살아 (feat. 스피노자)

by 호헵Hohep

인생은 부질없다. 어차피 다 죽는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 드는 생각이 무엇인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절망에 빠지는 그룹.

그리고 자유를 느끼는 그룹.


절망에 빠지는 그룹은 쉽게 이해된다. 지금 이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고 하니 어찌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자유를 느낀다는 사람들은 뭐지?

인생이 아무 의미 없다는데 왜 뜬금없이 자유란 말인가.


인생이 어차피 부질없으니 내가 뭘 하든 아무 상관없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그래서 인생은 '보너스'다.


우리 개개인은 태어나면서 어떠한 의무나 사명을 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자유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자유가 있다.

물론 현실의 제약은 있다.

통장에 20만 원이 있는데 5억 원짜리 요트를 살 자유는 없다.

지나가는 사람을 때릴 자유는 없다.

하지만 이 현실 내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하든 자유다.


나는 회사원이어야 할 의무가 없으며,

나는 서울에 살아야 할 의무가 없으며,

나는 결혼을 할 의무가 없다.

자유다.


인생은 심각할 것 없다.

인생은 선물이다. 마음껏 누려야 한다.

단, 본인의 선택에 책임을 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할지는 전적으로 자유다.


자유.


그런데 자유라고 마냥 좋아할 것만은 아니다.

이 자유의 무게는 어마어마하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자유라는 거대한 바위 밑에 깔려서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흉통이 짓눌려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자유의 무게가 버거우면 나를 종교에 맡기면 된다.

그러면 그 자유의 무게를 종교가 나를 대신해서 들어준다.


옳은 선택이나 틀린 선택은 없다. 그냥 선택이다.


나는 이 자유를 온전히 들고 가고 싶다.

내가 깔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자유는 내가 직접 들어 올리겠다.

이 무거운 무게를 내가 직접 들기로 나는 선택한다.


이 자유 때문에 내가 방황을 하지만,

그것은 내가 인생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에 방황을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질문을 애써 모른 척한다.


친구들과 식사를 할 때 물어보라.

"너는 인생을 왜 사니?"


대부분 무슨 멍멍이 같은 소리냐고 되물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그냥 물 흘러가듯이 사는 것이다.

일상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와 오락 속에 파묻혀서 산다.


"나는 인생을 왜 살까?"

라는 질문을 직시하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오래 고민해도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생을 본질적으로 부질없는 것은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인생을 왜 사는지에 대답은 내가 창조해내야만 한다.

그런데 내가 창조한 것은 왠지 모르게 어설퍼보인다.

뭔가 나를 초월한 무언가에 연결되어야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하지만 나를 초월한 것 역시 부질없다. 내 인생이 부질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인생도 모두 부질없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부질없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부질없는 이상 아무리 초월에 초월을 거듭한들 인간에게 의미 있을 것은 없다.


어쩔 수 없다.

이런 부질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그럼에도 왜 살아야 하는가?

지금까지 수백 권의 책을 읽었다. 대부분 종교, 사랑, 가족, 공동체 등일 이야기하지만, 인간이 지어낸 허구 이야기를 믿지 않는 이상 인생이 부질없다는 현실에 버티는 논리는 하나를 제외하곤 없었다.


감정.


좋은 감정을 느끼기 위해 산다.


현대에서는 감정을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이성을 중시한다.

하지만 감정이야말로 실존하는 것이다.


인생이 부질없어도, 내가 지금 이 순간 느끼는 좋은 감정은 부질이 없을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희열을, 사랑을, 열정을 주는데 부질이 없을 수가 없다.


내가 사는 이유는 좋은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다.

너무 동물적이라 반감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인간에서 동물적인 부분을 드러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인간이 아무리 고고한 척해봤자 본질적으로 동물적이다.


열정이 넘치고, 사랑을 하고, 기쁨을 느끼는 인간.

이는 지극히 동물적인 모습이다.

비동물적인 인간은 인간이라고 볼 수 없다.


좋은 감정을 위해 산다에는 중대한 각주가 붙는다.

반드시 이성과 함께 해야 한다.


1. 이 감정(욕망)은 나의 진실된 감정(욕망)인가? 사회 혹은 부모로부터 주입된 것은 아닌가?

2. 내가 하고자 하는 행동이 이 감정을 얻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인가?

3. 지속가능한가?

4. 나는 나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가?


나의 감정 추구를 이성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자멸할 것이다.


당당하자.

자유를 짊어지자.


"인생 왜 살아?"

"나 좋으려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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