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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스윗 May 29. 2021

아이 앞에서 술을 마셔도 될까?

애주가 엄마의 진지한 고민

애주가,라고 하면 보통 술고래를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나는 말 그대로 애주가, 즉 술 마시길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이지 많은 양을 마시는 사람은 아니다. 육아로 찌들 대로 찌들어 뭔가 목을 탁 쳐주길 바라는 순간, 시원한 골든 에일 딱 한 잔 들이켜면 어쨌든 잠시 동안 기분이 좋아지고 아이에게 한없이 목소리를 높였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여 반성도 하게 된다.


직업상 많은 양의 술을 마시던 시절도 있었으나 (그 옛날 낮술이 만연하고 회사 이름을 딴 양주 세트가 존재했던 시절이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너무 옛날 사람 같으므로 생략하기로 하자.) 그것도 30대 초반까지의 일이었고 이젠 체력이 따라주지 않고 딸린 식솔이 늘어 재력도 따라주지 않는다. 아. 옛날이여!


그래도 다행인 건 남편도 적절한 양의 술, 특히 반주를 즐기는 편이라는 것. 신혼 때부터 집에서 소꿉놀이처럼 안주를 만들어 둘이 조금씩 홀짝홀짝 마시는 편이었는데 주량도 잘 맞고 (둘 다 노화에 따라 주량이 급격히 줄었다는 점은 서글프지만 건강과 가정 경제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따로 술 마시기 위해 시간을 내거나 각자 밖으로 돌지 않아도 되니 안정적인 가정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러다 첫째를 임신하며 애주가 부부에게 시련이 닥쳤다! 기분 좋으면 둘이 와인 한 병 정도는 너끈히 마시기에 한 명의 장기간 금주선언은 다른 한 명의 음주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 봄과 여름, 임신 초중기를 지났던 나는 시원한 맥주가 간절했고 남편은 술친구가 없어 서러웠다. 본격적으로 무알콜 맥주를 찾아보기도 했는데 진짜 맥주와 제법 비슷하다는 제품들을 하나씩 구해서 먹어봐도 내가 오줌을 마신 건지 음료를 마신 건지 모르겠는 맛에 기분만 상했더랬다. 그러던 중 일본 홋카이도에  여행을 갔는데 세상에, 이렇게 다양하고 맛있는 무알콜 맥주라니! 왜 한국 주류회사들은 무알콜 맥주 생산에 신경을 쓰지 않는가, 성토하며 그 무거운 맥주캔 12개를 캐리어에 담아왔더랬다.

출산 이후에도 7개월간 수유하느라 금주를 이어가다 마침내 마신 맥주란... 군대에서 배고플 때 먹은 라면이 평생 가장 맛있었다는 남자들의 말처럼 출산을 경험한 자들만 아는 맛일 것이다!

이유식과 맥주. 신기한 조합.

그런데 이전처럼 반주를 한두 잔 곁들여 먹다 보니 옆에서 빤히 보고 있는 아기가 마음에 걸렸다. 많은 양은 아니어도 엄마 아빠가 종종 술잔을 '짠~' 부딪치며 호로록거리니 이유식을 시작한 아기도 침을 질질 흘리며 '나는 안 주고 왜 둘이서만 맛있는 걸 먹나요?' 란 눈빛으로 간절하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남들은 태교부터 영어 시디를 들으며 한다는데 아이 앞에서 음주 조기교육이라니 참 부끄럽지 않은가! 그러나 육퇴가 이르면 육퇴가 일러 마시기 좋다는 이유로, 육퇴가 늦으면 늦어서 힘들다는 이유로 술을 한 잔씩 하는 일은 우리 집에서 익숙한 풍경이 됐다.


한 번은 아이가 어릴 때 하룻밤 호텔팩을 한 적이 있는데 클럽 라운지가 포함된 방이었다. 클럽 라운지에서 와인과 안주가 무제한으로 제공되는데 유아는 동반할 수 없다는 게 대부분 호텔의 규칙이다. 우리가 적절히 지도 편달 훈육하며 영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할 수 있는데 아이가 있으면 입장조차 못한다는 사실에 분개했더랬다. 그러나 당시의 분노는 소심한 개인의 작은 아우성에 지나지 않았고, 나와 남편은 번갈아 30분씩 라운지에서 허겁지겁 와인과 음식을 먹으며 겨우 배를 채웠다.

단유기념으로 큰 맘 먹고 간 특급호텔! 혼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혼술을 했다.

큰 아이가 여섯 살이 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종종 집에서 반주를 즐긴다. 사실 아이가 있는 보통의 부모들이 쾌적하고 조용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심지어 경치 좋은 곳의 카페조차 노 키즈존인 곳이 많다.) 그래서 자의 반 타의 반 집에서 아이가 보는 앞에서 술을 마신다. 언젠가 크면 아이도 술에 호기심을 보이겠지만 지금은 엄마 아빠가 와인잔을 부딪칠 때 본인도 사과주스가 든 컵을 함께 부딪치는 걸로 기분이 좋아지는 수준이라 음주 조기교육에 대한 걱정은 좀 덜어졌다. 이젠 6개월 된 둘째까지 있으니 내일 아침 체력을 생각하면 과음하고 싶다는 생각은 1도 들지 않는데, 이게 내가 자기 조절력이 발달한 성숙한 어른이 됐다는 뜻인지 육아에 내 소박한 욕망마저 거세당한 것인지 모르겠다.


주말이다.


목요일이나 금요일엔 유모차를 끌고 최근 단골이

된 동네 와인가게에 가서 저렴한 샤도네이 2병을 산다. 코로나 시국에 6개월 아기를 차에 태우고 대형마트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첫째 밥을 챙겨주고 어른들은 간단한 배달음식에 샤도네이 두 잔씩 마시면 사는 게 뭐 별 거 있나 싶다. 엄마 아빠도 숨 쉴 구멍을 만들어놔야 너희들을 계속 돌봐줄 수 있단다. 앞으로도 계속 같이 “짠!” 해주렴 아들아.


탕수만두와 맥주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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