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을 먹고 잔 덕분에 말 그대로 스르륵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확연히 달라진 아침 풍경에 새삼스럽다가 금방 담담해진다. 두번째 날이지만 본격적인 첫째 날이기도 한 오늘. 감기 기운이 있으니 너무 무리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나에게 계속 주입한다. 여기서 아프면 병원 가기에도 번거로운 건 당연, 쉽게 찾아올 수 없는 황금 같은 시간에 아픈 것도 사치다. 스카프로 목을 감싸고 집을 나선다.
첫 번째 장소는 어제 저녁에 들렸던 팔레루아얄 정원.
숙소와 5분 거리인데다가 마침 이곳을 지나쳐야 하는 동선이 최적이라 당연하게도 들렀다.
도착과 동시에 당연하지 않은 풍경에 압도당한다.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잘라낸 정사각형 모양의 나무가 줄지어 있다. 한치의 오차는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쭉 길게 줄 서있는 나무들…그 가운데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대. 그리고 그 주위를 빙 둘러서 놓여있는 초록색 의자. 그랬다. 이 평범한 초록색 의자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파리 공원 여유로움의 상징이기에..
이 초록색 의자에 앉아 있는 순간만큼은 다음 일정이 없는 사람처럼 여유롭고 싶다. 곧바로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시킨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스레 에스프레소 1잔을 시킨다. 막상 한입 마셔보니 오랜만이라 너무 쓰다. 눈은 인상을 쓰지만 입가엔 달디단 미소가 계속 나돈다. 이렇게 한 모금 한 모금씩 마시며 비현실적인 풍경에 빠져든다. 얼마나 그리워했던 모습이었는지…
한참을 멍 때리다가 깨닫는다.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마음이 꽉 차는 기분…
멍 떄리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차오른다. 그렇지만 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이라 다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본다.
버스 정류장에서 72번을 기다린다.
굵직한 명소를 지나 센강을 따라서 이동하는 버스 노선이라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정류장에 도착하니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6명이나 있다. 이 자체만으로도 반가웠지만 담담하게 버스에 올랐다. 단지 버스에 올라서 창밖을 봤을 뿐인데 영화 속 스크린이 펼쳐진다. 내가 이렇게 감동과 감탄을 잘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동안 잊고 지냈다는 사실과 함께 버스에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