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나이로 살 자니깐?!
마흔이 되어도 젊게 사는 사람을 얘기하던 영포티
사회 신조어였는데 요즘은 조롱이 되었다.
단순히 조롱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내 일이 되어 어쩐지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된다.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그간 잘 입어오던 후드티가 어깨가 무거워져 더 이상 입을 수 없을 때의 슬픔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거칠던 말투가 어느 날 이 나이에 이런 말씨를 쓰면 내가 꿈꿔오던 우아는커녕 싼티가 줄줄 흐른다고 생각하겠지?! 괜히 말투를 다듬어 본 적이 있냔 말이다.
이건 너무나 내 이야기다.
모두가 하나같이 같은 날 정초부터 나이를 한 살씩 동시에 먹어야만 하는 이 자비 없는 나라에서 난 사회적으로 영포티가 되었다. 그간 사둔 옷이 후드뿐이라 낡은 맨투맨을 찾아 입고 나보다 언니들에게 정말 이런 순간이 왔다며 투정 부리고 나보다 동생들에게는 부끄럽게 경험담을 펼치고 말았다.
이름을 부르기가 창피한 볼드모트 보다 더 망신스러운 그가 우리도 만 나이를 쓰자고 하지 않았나.
그렇지만 사회 어느 곳에도 호소할 수 없이 사회적 나이가 자리 잡아 만 나이를 주장할 수 없다.
만 나이를 주장하는 사람은 내 친구, 그리고 나이 먹은 이들뿐이다.
어릴 적 꿈꾸었던 나는 이쯤엔 좀 더 어른이 되고 나이도 똥구멍으로 안 먹고 말투도 우아하고 비속어는 절제하며(안쓸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나 봐) 타인을 배려하고 미움은 반으로 줄고 관용을 베풀며 좋은 차를 타고 잘 먹인 황소 가죽 같은 코트를 입을 줄 알았다.
현실은 회사 가기 싫다고 떼쓰고 회사 와서는 일 못하고 눈치 없는 사람 미워하고 상사의 부덕함을 흉보고 욕을 입에 달고 있으며 패딩에 발이 시려 어그부츠를 신고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다니고 있다.
첫 입사 때, 사회에 막 던져진 나는 그 당시 중년이 된 어른들을 보며 ‘대체 나이 먹고 왜 저러냐’ 했었던 기억이 정말 생생하다.
그들과 지금의 나는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아니! 오히려 지금 내가 더 못났다.
그들을 흉볼 일이 아니었다.
피할 수 없는 영포티
그런데 맨투맨엔 앞주머니가 없다.
큰일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