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을 빼앗긴 사람 앞에서
재수 입시를 끝내고,
지인의 도움으로 시골 공공기관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어 단기간 알바를 한 적이 있었다.
나의 첫 일자리,
그곳에서 나는 굉장히 다른 사람이 하기 싫은 업무를 맡았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탄광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피해 사실 조사를 하는 업무였다.
주어진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별로 안녕하지 못한 그들에게 안녕하시냐며 살갑게 묻고 강제 징용을 다녀오셨냐 사실여부로 그곳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석탄을 캐듯 캐물어야 했다.
그들은 주로 "뭘 하긴 뭘 해 탄광에서 석탄 캐지"라고 대답하고 또는 "몰라 기억 안 나 기억하기 싫어 밥도 안 주고 엄마도 보고 싶고" 라며 아주 짧게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피해 당사자가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으면 그의 가족이 받아 조카였느니 동생이었으니 관계를 말하고
와서 밥도 못 먹고 병들어 죽었다거나
정신병을 얻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피해 사실을 전화로 듣자니 참 짧았고 그들은 구구절절 그 세월을 다 전하지 못하고 마치 지난 세월을 다 잊었다는 듯 이제와 그런 말을 하냐며 덤덤하고 담백하게 말했었다.
그 당시의 나는 그들에게 전화하고 그런 얘기를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밥도 꿀떡꿀떡 잘 넘기고 잘도 살았다.
이 땅을 지켜온 자들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도 모르고 아직 어리고 젊다고 그 시절 사랑놀음에 취하고 젊음에 젖어있었다.
좀 더 자세히 물었어야 했다.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적었어야 했다.
아르바이트였지만, 그들이 받을 보상이 최대한 이르도록 돕는 일이었으니까.
나는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은 내 시간을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내 나이보다 더 젊은 시절을 빼앗긴
땅의 주인으로 탄광으로 끌려가 햇빛하나 밥도 제대로 먹이지 않는 곳에서 굶주리며 젊음을 쏟아냈다.
그 이후, 나는 일제 강점기의 고통을 책과 드라마로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상해 임시 정부를 다녀오고서야 비로소 그 무게를 알았다. 한참 후에야 내가 얼마나 그 업무를 잘 해내지 못했는지 알게 되었다.
기억과 소비는 동시에 가능하다.
다만 잊지 않는 태도는 선택의 문제다.
나는 최소한 가볍게 소비하지는 않기로 했다.
내가 들었던 그 목소리들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