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를 이긴 가릴 수 없는 너
머리를 들춰보니 지난달과 다르게 옆이 더 하얗게
눈이 내렸다.
최근 어느 연구결과에서는 흰머리는 우리의 몸이 암세포와 싸우다가 이긴 결과라 했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생각하고
또 ‘영국이 연구했나?’ 라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는 20대 후반부터 흰머리가 무성했다 했다.
그 시절은 지금보다 예의범절에 엄격한 때였던 지라
어르신으로 오해받고 버스에서 종종 양보받아
편하게 귀가하셨다 했다.
남보다 조금 빨리 늙어서 아빠가 빨리 갔다 싶다가
아빠가 결국은 암으로 가셨지 생각했다.
아주 일리 없는 연구는 아니구나
무릎을 쳤다.
물론 유전이라 생각했다.
나는 아빠를 아주 많이 닮았으니까.
피부색도 성격도 그리고 흰머리까지.
그래서 나의 몸속에서도 암세포가 자라나고 있는데
열심히 싸우다 승리의 깃발을 꽂은 것이
나의 머릿속 무성히 자라는 흰머리인가
아빠는 염색하는 것조차 싫어했다.
엄마와 언니 그리고 내가 짜고 염색약을 몰래
아빠 머리에 발랐을 때 노발대발 화내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여전히 그러던 모습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게 그럴 일이었을까.
나는 오늘도 5분이면 새치 염색이 된다는 염색약을
비닐장갑 위에 짜고 자라는 머리 위에 열심히 발라댔는데 말이다.
내 아이에게 나이 들은 엄마보다는 젊고 아직은 건강한 예쁜 엄마이고 싶어서 염색하는데
이놈에 염색약은 새치는 못 가리고 잘 있는 밝은 나의 갈색 머리카락만 거뭇하게 물들인다.
어떻게 해도 가려지지 않는 백의종군 같은 흰머리란 말인가.
암세포를 이겨낸 흔적인지, 혹은 최근의 고된 다이어트 때문인지 알 길은 없다. 거울 속 하얗게 덮인 머리카락이 지난겨울 내린 눈처럼 낯설게만 느껴진다.
흐르는 세월을 잡을 순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다.
나는 오늘 나에게 남겨진 유전적인 궤적을 거울 앞에서 마주하며, 내 몸 안의 작은 승전보들을 다시금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