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머물다 간 순간

적색 점멸등이 깜빡이던 교차로

by 남궁은호

드라마 ‘도깨비’에서는

누구에게나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다 했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9번째 생일날 이자 어버이날

엄마는 외할머니를 뵈러 가고

나와 언니 그리고 어린 조카들은 아빠의 산소에

어버이날을 맞아 인사하러 가기로 했다.


그 당시 나는 물려받은 오래된 차를 폐차하고

예쁜 새 차를 뽑은 지 4일째 되었고

아빠를 뵈러 가는 시골길에 흙먼지를 내 차가 맞게 될까 두려워 솔직히 가기 싫었었다.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니는 미용실에서

머리 하는 나를 채근했다.



결국 조카들과 언니를 싣고

아빠의 산소가 있는 시골로 갔다.


그날따라 평소 우리가 주차한 자리에

처음 보는 검은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곳은 우리 고모의 논이 있는 한 켠이고

그 지역 사람이 아니라면 주차하기 어려운 자리였다.

그래서 조금 걸어야 하는 자리에 결국 주차를 하고

산소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절을 하고 준비해 간 음식을 먹었다.


언니는 돗자리를 펴고 마치 소풍온 냥

그곳에서 아이들과 놀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나는 오월의 초여름 볕이 유난히 따갑고

벌레들도 싫고 온몸에 머리카락이 서는 것 같은 짜증이 몰려와 자꾸만 집에 가자며 식구들을 재촉했다.


언니는 결국 마지못해 돗자리를 접고

조카들을 챙겨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보니 그 자리에 그 차는 없었다.


차에 돌아가 과자를 먹겠다는 5살 난 조카에게

이모 새 차에서 과자 먹고 의자에 손 비비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고 흙 묻은 신발로 운전석 차지 말라고

성을 냈다. 언니도 내가 못마땅한지 입을 내밀고 애가 그럴 수도 있지라며 투덜거렸다.


그날따라 집에 돌아오는 길은 이상했다.


아무리 시골길이라지만 자전거 탄 할아버지는 길을 비켜주지 않고 마이웨이로 천천히 도로 한가운데로 자신만의 길을 가셨다.

한 다리 건너면 내가 누구 딸인지 다 아는 터라 빵빵대거나 창문을 열고 비켜달라고 할 수 없어 천천히 운전했다.

시골을 빠져나와 도시 쪽으로 빠져나가는 꼬불꼬불 길에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각각 타는 스쿠터가 세월아 네월아 하며 천천히 가고 있었다.

그 길을 다닌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 길에서 오토바이를 본 건 처음이었다.


그때 언니가 갑자기

우리 바쁜 일 없으니까 천천히 돌아가자. 아무래도 이 길에서 처음 보는 일이 많이 일어나니까 조심하는 게 낫겠다 “


라고 했다.

나름 일리 있는 말이라 나도 수긍하고 천천히 갔다.



그런데 그날따라 정말 귀신이라도 들린 건지

매번 가는 그 길에서 순간 길을 잃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들어갔다. 처음 보는 길이었고 조금 더 가면 아는 곳이 나올 것 같아 아직 조작이 미숙한 내 새 차의 네비는 조금 있다가 키기로 하고 천천히 어느 길에 진입했다.



정말 천천히 적색점멸등이 켜진 그 길을 들어서는 순간

저 멀리서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차를 보았고

그 차는 얼마나 빠른지 눈 깜빡할 사이도 없이

내 차의 왼쪽 앞을 치었다.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그 순간 현기차에서 과연 에어백이 터지는지 궁금했었는데 사방에서 에어백이 펑펑 터졌다.


나의 새로 뽑은 지 이제 4일이 된,

예쁜 나의 새 차는 에어백이 잘 작동하고 있는 차였구나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큰 사고였다.


뒷자리에는 언니가 아기띠로

2살 난 조카를 안고 있었고 5살 난 조카는 이모차라

카시트도 없이 벨트를 하고 있었다.

눈앞에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기에 나는 그들에게 ‘내려! 당장 내려’라고 소리치고는 뒷자리를 열어 당시 우량아였던 큰 조카를 안았다. 혹시나 폭발할까 봐 언니를 부축해서 차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다행히도 폭발은 없었다.


그저 차의 앞이 없어졌을 뿐.


내 차의 엔진을 그곳에서 처음 봤다.

보자마자 들었던 생각은 'gdi 엔진을 쓰고 있구나 ‘ 였다. 어이없게도 그 생각만이 머리를 맴돌았다.


내 차를 친 그들은 멀쩡했다.

그리고 우리도 에어백에 쓸려 얼굴과 팔이 벌게진 나를 제외하고는 괜찮아 보였고 후에도 언니가 살짝 팔의 근육이 아픈 것 빼고는 괜찮았다.



인생의 첫 사고였다.

그들의 잘못이 더 큰 상황이었지만

어수룩한 나는 어찌어찌 7:3으로 마무리했다.

생각해 보면 경험치가 레벨 업된 지금 사고가 났다면

9:1 정도로 밀어붙일 수 있는 사고였는데 말이다.


차는 엄마가 잘 아는 수리센터에 갔고

그곳에서는 처참한 차 상태를 보고 운전자는 얼마나 다쳤는지 물었다 했다. 엄마는 큰딸만 한의원에 침 맞으러 갔다고 웃었다 한다.


그 후, 여차저차 나온 신차에 대한 보험 보상비로 차 사느라 어려웠던 나의 자금 상태를 보완할 수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날에는

마치 드라마처럼 사고의 복선이 많았다.


그리고 큰 사고였음에도

아무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날 그 순간,

신이 잠깐 머물다 간 건 아닐까 하고.


지금도 가끔 그 교차로를 지난다.


그날처럼 적색 점멸등이 깜빡이면

나는 잠깐 속도를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