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마의 글공간
땅부자 집에 독자로 태어난 고씨는 마을에서도 가장 큰 기와집에서 살았다.
고씨 집안에는 딸이 세명 있었는데 아들을 중요시하는 고씨의 아버지는 항상 며느리 장씨를 닦달하고 아들을 못 낳았다며 매일 술을 퍼마시고 동네에서 고성방가를 질렀다.
그런 날은 꼭 집 앞 대문을 발로 차며 대가 끊어진다는둥 그깟 아들 낳는게 뭐 그리 어렵냐는둥 소리를 질러댔다.
시어미는 그럴 때마다 장씨 며느리가 있는 방문 앞으로 다가가 여자가 잘못 들어와 집안이 엉망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고씨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매일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모두가 잠든 새벽에 들어와 아침 새벽녘이면 밭일을 하러 집을 나섰다.
연년생 어린 딸들을 돌보는 장씨는 고씨가 일하러 가기 전 일어나 밥상을 차리고 일을 나설 때면 항상 집 앞까지 나가 배웅을 했다.
걸음마를 조금씩 하는 두 딸은 장씨를 졸졸 따라다녔고 방에 누워있는 막내딸이 울 때면 집안의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달려가 아기를 달랬다.
하루는 낮에 장씨가 집안일에 정신이 팔린 사이 막내딸이 한 번도 울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무슨 일이 있나 얼른 방으로 뛰어가보자 웬일인지 안에는 시어미가 잠들어 있는 막내딸을 토닥이고 있었다.
눈을 동그랏게 뜨고 한참 그 모습을 바라보자 시어미가 장씨를 앉혔다.
"너도 이제 나이가 차니 마지막으로 아들 하나 낳아야지, 매일 이렇게 애들만 봐서 언제 서방을 돌보고 언제 밤일을 하것냐"
그날 저녁은 웬일인지 시부모가 애들을 모두 방으로 대리고 들어가 버리고 고씨는 술도 먹지 않고 일찍 집에 들어왔다.
늦은 봄의 마지막 무렵이었다.
늦은 가을, 바로 코앞에 겨울이 다가온 계절에 장씨가 헛구역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시어미는 곧바로 밭으로 뛰어가 시아비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다.
시아비는 양복을, 시어미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며느리와 함께 마을버스를 두어 시간 타고 마을 밖 병원으로 향했다.
시부모는 그 이후로 많이 바빠졌다. 며느리 장씨가 임신을 했다는 결과가 나오고 나서부터
유명한 점집에 가서 점을 보고 용하디 용하다는 어디 멀디먼 절에 아들 낳게 해준다는 불상을 만지러 가고 딸을 아들로 바꿔준다는 약재들을 사와 며느리에게 먹였다.
집안 일과 딸들을 돌보는 일은 시어미가 도맡아 하게 되었고 장씨가 어떠한 집안일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시어미는 모든 집안의 일들을 떠맡아 하면서도 동네 사람들이 집으로 놀러 올 때면 이번에는 무조건 아들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으며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무더위가 무성한 여름 저녁 작은방에서 딸아이들을 재운 시어미는 고씨 내외를 큰 방으로 불렀다.
시어미는 고개를 돌린채 앉아 있었고 시아비가 결심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분명 아들을 낳을 것인디 정성 들여 키워야 한게 딸아이들을 고모 댁으로 보내려고 한다."
장씨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안된다며 눈물을 흘렸지만 시아비의 결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대신 아들이 무사히 크면 바로 데려오겠다는 모호한 약조만을 받을 수 있었다.
다음날 딸아이들은 먼 고모 댁으로 보내지고 며칠 뒤 장씨는 아들을 순산하였다.
아들은 동네 아이들과 사이도 좋았고 건강히 무럭무럭 자라났다.
장씨는 아들이 분교를 입학할 무렵 시아비에게 세딸들을 데려오도록 부탁하였지만 아직이라며 번번이 무산되었다.
아주 가끔 고모가 세딸들을 데리고 왔지만 장씨가 마음이 약해질 것을 염려한 시아비는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도록 하였다.
아들은 마을과 가까운 분교를 다니며 공부도 열심히 하였고 집안에서는 대성할 것이라며 애지중지하였다.
아들을 낳은 이후 집안일을 시어미가 적극적으로 도와주었고
시아비는 장차 큰 사람이 될 것이니 아들을 적극적으로 뒷바라지할 수 있도록 금전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마을에는 아들과 한두살 터울의 친구들이 네명 있었는데 매일 함께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아들이 분교의 마지막 해를 보내며 동네 아이들과 감을 따기 위해 고씨의 집으로 모였다.
고씨의 담 옆에는 마을에서 가장 큰 감나무가 있었고 큰 감을 따기 위해 아이들은 기다란 대나무를 준비했다.
커다란 감은 주로 높은 쪽에 위치해 있었고 대나무로 아무리 따려 해도 닿지 않았다
몇몇 아이들이 나무를 직접 타고 올라가려고 시도하였지만 실패했고
기둥이 크게 갈라지는 높이까지 올라가 아래서 대나무를 올려주면 거기에 걸터 서서 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번번이 실패가 반복되자 서로 누가 올라갈 수 있냐고 다투기 시작하였다.
오기가 생긴 아들은 자신이 올라가겠다며 자신감 있게 다른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기둥이 갈라지는 지점까지 올라간 아들은 대나무를 받아 높은 곳에 있는 감을 한개 두개 아래로 따주었다.
아이들은 대단하다며 아들을 향해 감탄을 내뱉었고 슬슬 힘이 빠진 아들이 내려오려는데 미끄러져 그대로 바닥에 추락하였다.
허리에 큰 통증을 호소하며 바닥에서 뒹굴거렸고 동네 아이들은 집으로 달려가 안에 있는 장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장씨가 밖으로 뛰어나와 아들을 집으로 엎어갔고 가까이에 마땅한 병원이 있지 않아 집적 허리를 확인하였다.
별다른 상처는 없었고 잠시 후 아들이 괜찮다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공부를 하였다.
다음날 아들의 허리에는 큰 멍 자국이 생겼는데 별다른 통증이 없다하여 장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들은 자전거로 한시간 가량 걸리는 중학교를 들어가게 되었다.
고씨의 아버지는 매 학기마다 담임 선생님에게 촌지를 가져다주었고
그로 인해 성적이 좋아 반에서 항상 일등을 하였다.
동네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아들을 도련님이라 불렀고 고씨 아버지는 우리장손 우리장손 하며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의 땅값을 깎아주기도 하였다.
아들은 키가 작았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키가 별로 크지 않았고 여자아이들보다도 작았다.
장씨는 아들의 키가 작아 걱정을 많이 했지만 고씨는 별로 아들에게 관심이 없었고
시아비에게 얘기할 때면 그깟 키가 무슨 대수냐며 오히려 되려 성질을 부렸다.
아들은 말수가 많이 없었다. 고씨를 닮은 것인지 항상 조용하고
중학교에 들어가고부터 점점 동네 아이들과도 자주 어울리지 않았다.
학교에서 친구를 집에 데려온 적도 없고 공부를 하는 것 외에는 마루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하루는 얼굴에 멍 자국이 들어 집에 왔다. 장씨는 심각하게 무슨 일이냐며 물었고 아들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걸 방에서 들은 시아비가 나와 사내들이 그럴 수도 있지라며 한마디 던지고는 괜찮다며 아들을 방으로 들어가라고 다그쳤다.
장씨가 아들방으로 따라들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아들은 대답하지 않았고 장씨는 큰 한숨을 내쉬며 아들방에서 나왔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이 덥다며 웃옷을 벗었는데 시아비가 그것을 보고 허리가 이상하다며 아들의 몸을 훑어보았다.
이후로 날이 지날수록 아들은 점점 더 등이 굽었고 시아비는 학교를 결석시키고 곧바로 마을 밖 병원으로 향하였다.
하지만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서울의 큰 병원에도 가보았지만 마땅한 치료방법이 없었다.
아들의 등은 심하게 굽어갔다.
학교에서 꼽추라고 놀림을 당했고 날이 지날수록 더욱 등이 굽어지면서 주변의 놀림이 심해졌다.
심한 경우는 양잿물을 마신 병신이라며 놀려댔다.
아들은 스스로를 비관하였고 진짜로 양잿물을 가지고 학교에 등교를 하였다.
이날도 마찬가지로 주변에서는 꼽추와 양잿물을 마신 병신이라며 비웃었고 그 자리에서 스스로 양잿물을 마시고 학교 밖으로 미친 듯이 뛰어 달렸다.
그리고 운동장 가운데에서 입에 거품을 토해내며 그 자리에서 죽었다.
장씨는 아들이 죽은 후 정신을 놓았다. 주변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고 말을 하지도 않았다.
집안일도 전혀 하지 않았고 항상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왔던 시간에 맞춰 대문 앞에 멍하니 서있었다.
그리고 비가 올 때면 아들의 가방과 교복을 품에 안고 뒷산 언덕에서 비를 맞으며 아들 이름을 서글피 부르짓었다고 한다.
별다른 능력이 없는 고씨는 재산이 많은 아버지와 함께 살며 밭일과 소를 돌보았다.
아버지는 일거리를 소화하기 위해 사람들을 썼고 동네에서는 양반집, 부잣집이라고 얘기했다.
동네의 많은 땅들이 모두 고씨 집안의 땅이였으며 마을 사람들의 일부는 고씨 아버지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대가를 지불하였다.
고씨는 무뚝뚝했다. 장씨와도 웬만해서는 별다른 대화는 오고 가지 않았고 자식에게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일을 도우러 온 인부들을 부리는 일은 아버지가 도맡아 하였고 고씨는 항상 자신의 일만 묵묵히 하였다.
그만큼 여러 사람과의 교류도 없었지만 어렸을 적부터 오래 알고 지낸 동네 친구 두명과는 항상 같이 술을 마셨다.
술이 취해도 과묵하였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가족들도 항상 그의 속내가 어떤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고씨를 보고 마을 사람들은 멍한 인간이라며 수군거리기도 하였다.
고씨의 아버지가 처음부터 고씨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였다.
집안의 큰 재력을 바탕으로 대성시키기 위해 아주 엄하게 교육하였지만 고씨는 머리가 멍청하여 공부를 못하였고
그런 나날이 이어질수록 더욱 말수가 없어지고 점점 더 자포자기하게 보이는 사람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딱히 대학에 갈 수 있는 성적이 되지 못하자 그때부터 집안의 일들을 도와주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은 며느리 될 사람이라며 아버지가 데려오신 장씨와 그대로 혼인을 하게 되었다.
3녀 중 막내로 태어난 장씨의 집안은 꽤나 가난했다.
고씨 아버지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고 흉년이 드는 해에는 대가를 지불하지 못해
장씨의 아버지는 항상 고씨 아버지에게 꼼짝 못하는 사람이였다.
공부를 할 수 있는 사정이 되지 못해 중학교를 마친 이후로는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고 계속 아버지의 밭일을 도왔다.
장씨의 아버지는 권위적이면서도 항상 술을 입에 달고 살았다.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온 날에는 차려놓은 술상 앞에 어머니를 앉혀놓고 세월아 네월아 잔소리를 하였다.
그럴 때면 장씨 어머니는 서방의 말을 고분고분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앉아서 들어주었다.
장씨는 그런 어머니 옆에 앉아 상에 차려진 술안주를 집어먹는게 일상이였다.
두 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돈을 번다며 타지로 떠났다.
장씨는 소심하여 동네에 친한 친구가 없었고 두 언니마저 떠나자 더욱 말수마저 없어져 어머니는 항상 그런 장씨를 걱정하였다.
어느 날은 고씨의 아버지가 땅값을 받으러 방문하였는데 장씨를 보고 참 말수도 없고 이쁘다며 칭찬을 하고 돌아갔다.
그 이후 장씨는 고씨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고씨와 그대로 혼인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