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상수첩, 여덟 번째 기록
나는 삼국지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연의인데, 중학생 즈음이었나, 적어도 삼세 번은 읽었던 것 같다. 그 당시는 판타지 소설에 심취했을 때라 삼국지도 판타지 소설처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거즌 판타지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지금은 꽤나 자리를 잡았지만, 판타지 소설도 한때는 아류 문학이란 소리를 듣던 시절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탕수육도 중국 성님들한테는 아류나 다름 없을 텐데. 이쯤 되면 탕수육을 소재로 글을 쓰고 있는 디스 이즈 모멘트, 왜 나는 아직도 탕수육의 본토, 중국을 가보지 못했는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과 반성을 해야 할까 싶기도 하고.
뭐 어찌 됐든 간에 중국 탕수육이든 한국 탕수육이든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싶은데, 별 차이 없다면 시간, 돈 들여 중국 탕수육 먹을 바에 한국에서 차이나 느낌 낼 수 있는 '문차이나'에 가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싶기도 하고.
그 뭐더라. 강아진데, 둥글둥글하니 지나가는 이들로 하여금 모두 쳐다보게 만드는 귀여운 그, 짱구에 나오는 흰둥이 같은, 그런 느낌이 나는 탕수육이다. 포실포실이란 표현이 어울리겠다. 식감도 외견과 대동소이한데, 단단하지 않고 부드러운 것이 한 입에도 쏙 들어가고 아주 경기도 안성맞춤이다. 다만 자본주의의 모진 풍파를 비껴가지 못했다는, 그래서 포실포실하고 조막만 한 양임에도 몸값이 아주 대단한 것이 흠이라면 흠일까.
어향가지새우라 거창하게 불리는 것인데, 거창하게 이름 붙일 만 하다. 한번 먹고 나면 니맛내맛 구분 못 해서 마치 중국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중국 본토의 맛을 지녔다. 물론 상상 속의 맛이다.
편으로 썬 가지 사이에 다진 새우를 집어넣은 것인데 누군지는 몰라도 이 요리를 처음 만들어 낸 사람에겐 정말이지 크게 상을 주고 싶은 부분이다. 쏘스가 또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긁어 먹을뻔한, 거지왕 김춘삼도 울고 갈 맛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계란탕에 피를 띄운듯한 모양새인 게 다분히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는, 일명 산라탕이다. 산라~ 산라~ 산라 머니. 에그머니.
한 숟가락 하는 순간 한 뚝배기 깨고 싶은 그런 충동을 느낀다. 신안 염전밭에서 내리뒹굴다 내 땀과 염전밭 소금을 동시에 섭취했을 때 느끼는, 그런 수준의 염도를 가졌다. 굉장한 맛이다. 저세상에 먹을 것이 있다면 아마 이런 맛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