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워 보였던 관계의 시작
복수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나를 3년 가까이 가스라이팅했던 직장 상사다. 그녀와 나는 같은 시기에 승진했다. 나는 팀장, 그녀는 부장. 그리고 그날부터, 그녀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갓 팀장이 된 나는 설레었다. 부장 밑에서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녀는 나와 가까워지기 위해 무척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내 관심사를 금세 캐치했고, 식사를 함께하며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그 모든 행동은 ‘호의’로 느껴졌다. 그녀가 달라지기 전까지는.
상냥함 뒤에 숨은 통제
그녀와 가까워지는 속도는 빨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대신 나에 대한 분석만 늘어갔다.
“팀장님 말에 제가 상처를 받아요.”
“그런 말은 다른 팀원들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요.”
“그건 팀장님이 좀 오해하신 것 같네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조금 걱정돼요.”
“이렇게 해보시는 건 어때요? 다 팀장님 잘되시라고 드리는 말이에요.”
말투는 상냥했지만, 내 생각과 행동을 조종하려는 시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내가 조금이라도 반대 의견을 내면 감정적으로 무시했고, 팀원들 앞에서도 날 깎아내렸다. 결재를 반려하고, 업무에 사사건건 간섭하고,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았다. 나로 인해 본인이 불편해지면 따로 불러 면담을 요청했다. 그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자책은 깊어졌고, 심장은 계속 조여왔다. 결국 정신과 진료를 받고 신경안정제를 먹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무너진 마음, 그리고 상담실에서
결국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다.
‘고작 3년 만에 이렇게 사람이 무너질 수 있구나.’
문득, 그녀와 7년 이상 함께했던 직원이 떠올랐다. 그 직원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 부장님, 원래 그래요. 자기 뜻대로 안되면 상대방을 어떻게든 괴롭혀요. 팀장님도 조종하려던 거예요. 이제 그만 끌려가셔야 해요. 그러다 정말 힘들어져요.”
그제야 그녀의 실체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처럼 당한 직원이 한둘이 아니었다. 버티다 다른 팀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한 사람도 있고, 끝내 퇴사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동안 잘 버텼던 것일까? 아니면, 이제야 내 마음의 신호를 겨우 알아차린 것일까?
조금씩 거리를 두며
다행히 작년에 사무실 자리 배치가 바뀌었다. 그녀와 물리적인 거리가 생겼고, 그만큼 마음의 거리도 생겼다. 물론 업무상 마주쳐야 하는 것은 여전하다. 보고를 올리고, 결재를 받을 때면 여전히 마음이 떨린다. 하지만 예전처럼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혼란과 의심 속에서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묻고,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어 애썼다. 하지만 돌아보면, 가장 지치고 힘들었던 건 ‘나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택한 방식의 복수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내 일에 집중하자. 더 나은 팀워크로 팀을 이끌어가자.’
내가 택한 복수는 ‘나답게 일하는 삶’이었다. 예전엔 그녀의 눈치를 보며 문서를 만들었다면, 지금은 내 기준을 세우고 팀원들과 충분히 상의하며 자료를 만든다. 후배가 실수했을 때, 움츠러들지 않도록 따뜻하게 말해준다.
“괜찮아. 나는 옛날에 더 크게 실수한 적도 있어.”
그녀와의 관계 정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금도 가끔 마주치지만, 담담히 할 말을 하고 정중히 선을 긋는다. ‘상대방이 불편하다고 해서, 내가 내 마음을 지우진 않는다’는 다짐으로, 스스로를 단단히 붙든다.
흔들림 없이, 나답게
여전히 출근이 괴롭다. 하지만 아침마다 필사를 하며 마음을 정돈한다. 상담에서 배운 감정 기록 방법도 매일 5분씩 실천하며 나 자신을 돌본다.
이제는 그녀를 향한 시선을 거두었다. 더 이상 나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과 ‘지켜야 할 나 자신’이다. 사적인 감정은 내려두고, 지금은 팀원들과 더 건강한 팀을 만들어가는 데 집중하고 있다. 내가 흔들렸던 시간만큼, 누군가는 나를 통해 버틸 수 있도록. 그래서 나는 주저 없이 손을 내민다. 예전의 나처럼,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간다.
나는 안다. 성실히 하루를 살아가는 이 태도가, 결국 가장 단단한 방식의 복수라는 것을.
조용하지만 흔들림 없이, 나는 나의 길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