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가 잘되는 동생의 편의점은 보통 편의점 업무의 난이도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봉급이 높지 않은 공무원 남동생을 대신해 20대의 젊은 제수씨는 12시간 근무를 강행하며 빨리 내 집 마련하기에 힘쓰고 있었는데,
그런 동생부부의 신혼여행 공백을 대신해 3주간 편의점을 봐주기로 한건...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일까?
삼일 만에 온몸에 바른 파스 냄새가 후각을 마비시킨다.
점포수도 많고, 창업 비용도 억 단위의 다른 프랜차이즈들에 비해 비교적 문턱이 낮아 가장 흔히 하는 서민 창업.
보통은 편의점에서의 범죄나 부정적인 기사들이 많이 노출돼 있으나 장단점이 뚜렷하였다.
매출이 어느 정도는 된다는 전제 하에 장점들은
●노력하는 만큼 바로 보이는 성과
유통업계 중 가장 소매 형태인 편의점은 작은 매장 특성상 조금만 신경 써 진열을 하면 바로 판매로 이어져 추가 매출을 일으키는데, 이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보람감들을 주었다. 회사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성과로 돌아오지 않던 시절과 비교되었다.
●손님들과의 교감
비매너 고객들이 가끔씩 있어 불쾌한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들이 주는 밝은 에너지는 나에게도 전달되었다. 주변에 상점들 고깃집, 미용실, 노래방 등 이웃 상인들과도 서로가 서로의 고객이 되어 상품들을 팔아주는 사람 간의 훈훈한 정도 있었다.
●신상품의 재미
편의점은 제조업체에서 신상품을 출시했을 때 가장 먼저 테스트를 하는 유통 라인이다. 그도 그런 것이 아직 검증도 되지 않은 상품을 마트에 깔기엔 너무 대량으로 공급해야 하는 리스크가 있고, 오히려 소량으로 더 많은 점포에 깔 수 있는 편의점이 적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의점은 신상품의 성지이자 상품들이 빨리 순환되는 가장 트렌디한 유통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곳에서 매주 쏟아지는 신상품들을 발주하고, 판매하고, 궁금해서 나도 먹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물류 정리로 적당한 신체활동
계속 카운터에 앉아있으면 몸이 늘어지기 마련인데, 적당한 물류는 오히려 하루 종일 앉아있는 사무직보다 운동도 된다. 물론 물류가 많거나 음료류가 특히 많은 날은 강제 근력 상승을 하게 되어 힘들지만.. 세상에 많은 직업들 중 신체활동 강도 면에서는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은 적당한 편인 것 같다.
그럼에도 안 좋은 점은..
● 편의점 과포화로 인한 점당 매출 저조
세상에 돈 벌기 쉬운 일이 어딨겠냐마는 모든 고생에는 수익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하나 건너 하나로 넘쳐나는 편의점들은 브랜드 간 출혈 경쟁으로 점포수가 필요 이상 많다.
시장은 제한적인데 점포수만 늘어나다 보니 점당 수익이 자꾸 줄어들어 돈이 안 되는 점주들이 많아졌다.
● 저수익으로 인한 근무시간 과다
소매업 구조 자체가 고마진 사업도 아니고 외국과 달리 담배 구성이 높은 우리나라 편의점들은 평균 마진율이 2~30%대로 저조하다.
게다가 과도한 브랜드 간 출점경쟁으로 적자 점포들이 많아졌고, 치솟는 인건비는 점주들을 사면초가로 몰아 비자발적 장시간 근무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 24시간 영업으로 인한 알바 스트레스
수익 저조는 편의점을 1인 근무체제로 갈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특히 24시간 영업하는 업종 특성상 갑작스런 아르바이트 펑크는 최악의 경우 점주가 24시간 근무하는 해프닝도 흔치 않게 겪게 만든다. 그래서 점주들은 퇴근을 해도 알바가 도망가진 않을까 훔쳐가진 않을까 노심초사로 발 뻗고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더욱에나 수익이 저조해 최저임금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알바는 사장 없이 1인 근무를 하다 보니 태만하게 근무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주지 못하는 사장은 죄인이라 근무태만에 대해 지적할 수도 없다. 지적했다간 최저임금 미준수 신고로 노동청행이니..
그래서 편의점은 가족경영이 답이다.
그럼 모든 문제의 원흉인 '과도한 편의점 점포수'를 줄이면 되지 왜 이렇게 다 같이 힘든 걸까?
근본적인 원인은 대한민국 담배권이 공영화되어있는 것에서 시작한다. 한국은 담배 판매를 공기업인 KT&G가 독점해 높은 세금을 매겨 불법적인 생산 루트와 전 국민 흡연율 제한코자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담배 수익의 독점이란 이점은 담배권에 대해 느슨할 수밖에 없고, 담배권 간 제한거리 50m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짧은 편에 속한다. 이는 국민의 건강을 위해 금연을 권장하는 정책과 맞지 않게 담배 판매를 쉽게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편의점 출점의 필수 인허가인 담배권을 쉽게 취득할 수 있게 되었고, 법적인 제한이 없자 각 편의점 브랜드들은 소매업종의 사활이 걸린 MS 증대를 위해 점주들의 적자는 눈을 감아서라도 당장의 1,2위 쟁탈전에 눈이 멀어있다.
어쨌든 저쨋튼
'편의점 12시간 근무하다 보면 남는 시간도 분명 생길 거고, 그때 글도 틈틈이 쓰면서 용돈도 벌겠군~~'
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자신을 반성한다.
계산하기, 치킨 튀기기, 물건 팔리면 채우기, 시식대 닦기, 물류 진열하기, 폐기 찍기, 발주, 청소 등등..
생각보다 너무 할 일이 끊이질 않아 바쁘고, 매출이 높아 물류는 너무 빡쌔고, 나름 회사에서 야근에 단련됐다 생각했는데 매일매일 12시간 근무는 너무 피곤해 집에 오면 바로 자고 바로 일어나 바로 일하는 일상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와... 이건 인간답지 못하다...라고 생각이 들 즈음
이것도 계속하니 슬슬 적응이 되고 여유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자 오히려 이런 패턴화 된 단순한 삶이 같은 돈을 벌어도 치열하게 경쟁하고, 이해되지 않던 업무지시를 따르며 살았던 회사 시절보다 평온하다고 비교가 되고 있었다.
그렇게 3개월의 제주살이는 어느덧 꿈처럼 느껴졌다. 편의점과 회사를 비교하는 도시의 삶으로 돌아오자 제주 이주를 확신했던 나 자신이 공상소설 속 이야기처럼 까마득하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 제주에서 떠나기 전 도장을 찍지 않았더라면, 나는 정말 제주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현실이라는 자욱한 연기는 피할 수 없이 몸을 침투하여 살던 대로 사는 관성의 습관을 버릴 수 없게 나를 지배했을 것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되돌릴 수 없이 연세 계약서를 쓰고 왔고, 내일은 공부방 브랜드의 제주 지사장과 계약서를 작성하러 제주에 당일치기 다녀오기로 한다.
오랜만에 조회수 떡상을..
9000 돌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