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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욕구의 불지속성

편리함이라는 가시 목걸이.

by 킴 소여 Mar 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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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주살이를 갔을 물론 아름다운 자연이 정말 좋았지만 사실 불편한 것도 많았다.

분리수거를 하려면 차를 타고 10분을 나가야 하는 일은 아무리 하여도 적응이 안 됐고,

중산간 쪽에 위치하다 보니 마트나 식당가들도 먼데 배민은 온통 텅이며,

그나마 쿠팡 로켓배송이 오아시스였지만 로켓프레쉬까지는 안 됐다.



그런 제주살이에 익숙해질  도시에 돌아왔을 땐

반대로 그 아쉬웠던 편리함이 되려 어색해졌다.


욕구의 불지속성.
욕구가 오래 지속될 필요 없이 즉시 해결되는 현상.

(이런 말이 있는 건 아니고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해 내가 명명화해 보았다.)


평생을 도시에서 사는 동안 당연히 들여 마셔왔던 편리함으로 둘러싸인 공기가

불편하지만 자연과 더 가까워진 삶에 익숙해지고 나자

좋다고 여겼던 문명의 이기들이 하나하나 가시가 되어 도드라지게 다가왔다.


도시는 너무 편리하다.

편리하다 못해 불편을 느껴볼 기회도 주지 않는다.

집 바로 앞 넘쳐나는 편의점, 마트, 식당, 백화점들.

꺼지지 않는 간판들.

손가락 한 번의 터치로 자고 일어나면 집 앞에 데려다 놓는 상품들.


어떠한 욕구가 생기기만 해 보아라.
세상 곳곳에서 당신의 욕구를 기다렸다 얼른 돈이랑 바꿔치기할 수많은 사냥꾼들이 숨을 죽인 채 밤새 눈도 깜빡이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웃는 얼굴로 코 앞에 대령할 것이다.


심지어 그 사냥꾼들의 친절함은 넘치다 못해 내가 욕구가 생기지 않을 때를 대비해 욕구를 억지로 만들어내기까지 하고 있다. 수많은 매체들을 통해 주문을 건다.


넌 원한다~~ 넌 필요하다~~~~


그래도 넘어가지 않는다면 이미 나 빼곤 모두 넘어가 하나씩 다 구매한 대중이라는 무리 속에서 평범하게 속해있기 위해서라도 결국은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편리의 대가는 다.

나도 사냥꾼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금 편의점 야간근무를 10시간째 서고 있는 나.

정확힌 사냥꾼이라기보단 사냥꾼의 사냥개 역할에 더 가깝겠지만,

새벽 4시를 넘어가는 기점으로 눈꺼풀이 임계점에 다다름을 느끼며

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냥꾼 또는 사냥개 그도 아니면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생각해 본다.


왜 우리 대부분은 이렇게 무리해서 노동을 해야 할까.

가난하든 가난하지 않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본주의라는 굴레란 원래 이리 잔혹하였나.

인간의 욕심이란 최고의 인류 성장 윤활제라고는 하나

인간 개인에게도 그러한가?


자연을 떠나 도시로 돌아온 나는.

예전엔 당연히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가시로 느껴진다.

편리라는 가시 목걸이를 걸기 위한 자발적 굴종.


그리고 생각해 본다.

무엇이 맞는 걸까.




이미 자본주의는 전 지구를 덮어 피하기 어렵다. 그럼 공산주의를 다시 일으켜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인으로 사는 것이 해결책일까??


여기서 에리히 프롬의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의 지혜를 떠올려본다.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자기 자신이 아닌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은 없고,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것만큼 큰 자부심과 행복을 주는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활동자체이고,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 여기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 문화에서는 정반대로 과정이 아니라 결과를 강조한다. 우리는 구체적인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상품을 판다는 추상적인 목적을 위해서 상품을 생산한다.


우리는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돈으로 사면 뭐든지 얻을 수 있고, 따라서 사물은 그것과 관련하여 우리가 창조적인 노력을 하든 말든 관계없이 우리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신의 개인적 자질과 노력의 결과도 돈과 특권과 권력을 얻기 위해 팔 수 있는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전에는 창조적 활동이 주는 현재의 만족을 강조했지만, 지금은 완성된 생산품의 가치가 강조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그에게 진정한 행복과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것 -지금 이 순간의 활동을 경험하는 것- 을 잃고 환상 -성공이라고 불리는 환상적인 행복- 을 뒤쫓는다. 하지만 이 환상은 그가 잡았다고 믿는 순간, 그를 실망시킬 뿐이다.



중요한 것은 체제나 주의 따위가 아니다. 자아에 충실한 삶 '자발적 삶'이 필요한 것이다. 자아를 깨닫고 자발적 활동으로 이어진 삶은 개인이 세계- 인간과 자연 그리고 다시 자신으로 돌아와  통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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