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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탈리카 Nov 25. 2020

시지프스가 된 정신과 의사 초보 엄마의 하루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을 응원합니다.


그날은 생후 30일 된 아기의 모든 것을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 하는 첫 주일이었다. 남편은 머나먼 중국으로 3박 4일 출장을 떠나며 혼자 남겨진 나를 응원했다.


“여보, 잘할 수 있을 거야! 힘내!”     

“그럼~ 잘할 수 있어. 나랑 하람이 걱정 말고 출장 조심해서 잘 다녀와~”라는 쿨내 나는 대답으로 남편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여보, 나 어떻게 해.... 나도 같이 따라가고 싶다. 출장이 왜 그렇게 길어 ㅠㅠ”


현실의 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기 전에 그저 서투른 초보 엄마였고 육아에 있어서 남편과의 연대를 갈망하는 아내였다. 자신 없는 대답으로 남편의 마음을 무겁게 한 건 집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애원이자, 멀리서라도 고통 분담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심리적 압박이기도 했다.


그가 떠나고 나는 스스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뭐 별 일 있겠냐며, 어차피 주 양육자는 엄마인 나 아니었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새벽 1시 58분

아이의 칭얼거림에 그날의 첫 수유를 시작하면서 나를 다독다독하며 마음의 에너지를 셀프 충전했다. 그 날의 긴 하루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생후 30일인 아이에게 내가 기대했던 것은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뿐이었다. 인간의 기본 욕구에 충실히 따라주기만 하면 나는 그걸로 족했다. 나는 그것이 결코 과한 욕심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하람이는 입이 짧은 아이였다. 한 번에 먹는 모유량이 상당히 적었다. 뱃속이 허전한 아이는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자주 깨어서 칭얼댔다. 짧은 수유, 짧고 얕은 잠, 칭얼거림, 다시 짧은 수유의 무한 반복 사이클 속에 나는 다크서클이 가슴까지 늘어진 시지프스가 되어갔다. 신이 내린 형벌을 받고 있는 시지프스에게 식사시간이란 것이 따로 있을 리 없었다. 바윗덩이를 안고 믹스커피를 홀짝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허기가 가시고 정신이 또렷해진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큰 돌을 가파른 언덕 위로 올리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
<위키백과사전 내용>
시시포스 또는 시지푸스(고대 그리스어: Σίσυφος['sɪsɪfəs], 라틴어: Sisyphus)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인물로서 코린토스 시를 건설한 왕이었다. 영원한 죄수의 화신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잘 알려져 있다. 시시포스는 꾀가 많은 것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욕심이 많고 속이기를 좋아했다. 그는 저승에서 벌로 큰 돌을 가파른 언덕 위로 굴려야 했다. 정상에 올리면 돌은 다시 밑으로 굴러내려가 처음부터 다시 돌을 밀어 올리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오디세이아, xi. 593-600). 그가 이 벌을 받은 정확한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혹자는 그가 신들의 비밀을 인간에게 알린 벌이라 하고 다른 이들은 그가 여행하는 이들을 살해한 벌이라고 한다.



새벽부터 시작된 바윗덩이와의 씨름은 오후를 지나고 저녁을 넘어 밤까지 계속되었다. 투정 부리다가 잠들어 조용해진 아기를 잠깐 침대에 내려놓을라치면 아기는 두 눈을 다 뜨지도 못한 채 울기 시작했다. 그냥 안아서 어르는 것만으로는 달래지지 않았고 나는 다시 가슴을 열어야 했다. 믹스커피를 먹을 때마다 반짝 회복되었던 내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미치겠다. 아... 어떡하냐 ㅠㅠ 신생아가 이렇게 안 잘 수도 있는 건가?’     



어느덧 시계는 밤 10시 20분

30일 된 아기는 5시간째 자지 않고 나와 한 몸이 되어 있었다. 식욕과 수면욕을 갈망하는 아기의 칭얼거림은 초보 엄마의 인내심을 시험하며 점점 그 난이도가 높아졌고 결국 나는 폭발했다.      


퍽.퍽.퍽.


그것은 내 인내심이 바닥을 치며 아이의 엉덩이를 세게 때리는 소리였다. 내복 속 두툼한 기저귀가 완충역할을 한 덕에 둔탁한 소리만 났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충격에 아이는 3초간 울음을 멈추며 주변을 경계하더니 이내 자지러지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가 불쌍하면서도 억울한 감정이 올라왔다. 정말 울고 싶은 사람은 나였으니까.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 죄책감이 밀려든 것은 그다음이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다니!’     


심한 산후 우울증으로 진료실을 찾아왔던 엄마들이 스쳐갔다. 그들은 울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토해냈다.      

“아이가 울 때 나도 모르게 이불로 입을 막고 놀랐어요. 내가 미친 걸까요?”
“내가 아이한테 무슨 짓을 할 것 같아 무서워요.”
“아이가 하나도 사랑스럽지 않아서 괴로워요. 저는 모성애가 없는 걸까요?”     


이렇게 말하는 엄마들은 우울감보다 더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내가 낳은 아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마음은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반인륜적인’,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되는’ 감정이었기에 엄마들은 스스로를 단죄하며 더 깊은 우울로 빠져들었다. 차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하지만 그것은 비난받아야 할 것이 아닌, 오히려 위로받고 치료받아야 하는 마음의 상태로 도움의 절실함을 알리는 사인이었다.      


산후 우울증(postpartum depression)은 출산 후 4주 사이에 심해지는 우울감과 이로 인한 증상들을 말한다. 출산 후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등 갑작스러운 호르몬 변화와 육아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하는데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들이 모두 관련되어 있다. 대개는 비교적 가벼운 산후 우울 증세를 겪다가 자연스레 회복되지만 일부는 심한 우울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우울증의 가족력, 사산 혹은 유산 경험, 낮은 자아존중감, 보육 스트레스,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 원치 않은 임신에 따른 출산, 부부관계 불안 등이 심한 산후 우울증의 위험요인이 된다.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은 인생의 무게가 느껴지는 사건들이다. 사실 출산은 그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인생 최대 사건이 아니던가!     



다음 날 새벽 1시 35분

나는 마지막 수유 후 비로소 바윗덩이를 내려놓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네 시간의 수면은 다행히도 내가 평정심을 회복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새벽 5시 50분에 일어나 다시 수유를 시작하면서 나는 어제의 엄마를 반성했다.

“하람아, 어제는 엄마가 미안했어. 엄마도 너무 힘들어서 그랬어. 엄마도 처음이라 아직 어렵네. 좀 더 성숙한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     


아침이 되자 산후 도우미 이모님이 오셨다.

‘이제 살았구나!’

곁에 누군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힘이 났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을 찾아올 수밖에 없는 엄마들의 곁은 내가 함께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을, 그리고 나를 열렬히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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