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그녀의 질문이 불현듯 떠올랐던 건, 임신 3개월 입덧으로 한참 고생하던 레지던트 4년 차 때였다. 지구의 중력이 대동 단결하여 나를 끌어당기는 아침, 교수님과 회진을 마치고 당직실에서 꿀 같은 충전을 하고 나면 병동 환자와 외래 환자들을 면담하는 일과가 이어졌다. 그날도 속이 메스꺼워 온종일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고 중력의 힘을 온몸으로 버티고 있었다.
항암제는 암세포보다 미소 근육을 먼저 무력화시킨다. 초점 없이 텅 빈 그녀의 눈은 16년 전의 그녀를 닮아 있었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당신은 왜 웃고 있나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 나는 황급히 미소를 거두었다. 길어지는 침묵 앞에서 나는 웃음기 가신 그녀의 얼굴 속 고통과 우울의 깊이를 헤아리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잘 웃는 사람이었다. 상대와 눈이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가고 반달눈이 되었다. 미소는 내향적인 내가 큰 용기를 내지 않아도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쉽고 효과적이며 안전한 방법이었다. 내가 먼저 미소를 보내면 상대는 으레 미소로 화답해주었다. 인간이 가진 거울 뉴런에게 감사를 느끼는 순간. 어쩌면 나는 그런 화답이 좋아 내가 먼저 미소를 보내곤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상대를 대접하며 그렇게 십 수년을 살아왔다.
16년 전, 해부학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을 들어서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안녕’ 인사를 미소에 담아 건넸는데 예상했던 미소 대신 질문이 날아왔다. “언니는 뭐가 그렇게 매일 즐거워요?” 그녀의 말투 속에 왠지 모를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그녀의 질문은 ‘나는 지금 그렇게 즐거운 언니가 상당히 못 마땅해.’라는 경고처럼 느껴져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뭐가 그리 매일 즐겁냐고? 내가 즐거우면 안 되니? 너는 또 뭐가 그리 불만이니?’ 나도 신나게 맞서며 대거리를 하고 싶었지만 애써 집어삼켰다. 싫은 소리를 못하는 소심함도 있었지만 불쾌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타인에 대한 무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내게 그런 질문을 했던 그녀를 마음속으로만 단죄했다. 나라고 의대 생활이 마냥 즐거웠을 리 없다. 공부하고 외워야 할 것은 산더미 같이 쌓이는데 머리는 안 돌아가고, 시험은 끝이 없고 그 와중에 젊은 날의 연애란 것은 안 그래도 복잡한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어 수시로 나를 흔들어댔다. 그래도 내 마음만 정돈하면 되었기에 나는 그들에게 미소를 보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나와는 다른 부류였다. 그녀의 컨디션은 말과 표정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남자 친구와의 애정사가 어찌 진행되고 있는지, 이번 시험이 얼마나 최악이었는지, 어제 얼마나 재미있는 영화를 보았는지 등 개인적인 일에서부터 과 선후배에 관한 험담까지 그녀 주위엔 화젯거리가 넘쳤다.
미소라는 것이 인간을 대하는 당연한 예의라 여겨왔는데, 그것은 내 인생에서만 당연한 것이었다.
‘나을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하겠어?’
이런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는 항암 화학요법(항암치료)은 결코 만만치 않은 싸움이다. 항암제는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공격하면서 손발 저림과 통증, 탈모, 피로감, 구역과 구토 같은 부작용을 낳는다. 이러한 부작용은 암 덩어리 그 자체보다 환자를 더욱 지치게 만든다.
암이 강력한 스트레이트(Straight) 한 방이라면 각종 부작용들은 쉴 새 없이 치고 빠지는 잽(Jap)이다. 인생이라는 링이 펼쳐지면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다. 언제 어퍼컷(Uppercut)이 날아올지, 어디에서 훅(Hook)이 들어올지 모르기에 공격을 피하는 기술들을 익히는 동시에 맷집을 기르며 내공을 쌓아야 한다. 그런데 그 경기란 것이 늘 이기기만 할 수 있는 것인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예상치 못한 강적을 만나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지만 내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또 상대는 얼마나 강한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정신과 의사가 되고 보니 역대급의 경기들을 간접적으로 많이 경험하게 된다. 4살에 엄마는 암으로 잃고 아빠에겐 버림받은 후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받았던 학대들(언어적, 신체적, 성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는)을 피해 가출을 감행했던 12세 소녀. 남편의 음주와 계속되는 신체 폭력에도 아이를 지키겠다는 신념 하나로 하루를 버티고 있는 36세 부인.
‘세상에 어쩜 이런 일이 있을까?’ ‘어떻게 이런 일들을 겪으며 여기까지 견뎌왔을까?’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그들의 상처는 얕은 줄 알았는데 깊고, 깊은 줄 알았는데 얕았다. 예측 금지의 영역이라 나는 늘 조심스럽다. 이제껏 미소라는 것이 인간을 대하는 당연한 예의라 여겨왔는데 그것은 내 인생에서만 당연한 것이었다. 16년 전 나의 미소에 화답하지 않았던 그녀를 단죄했던 과거가 부끄러웠다.
이제는 내 인생을 잣대로 타인의 감정을, 말투를, 표정을 평가하지 않겠다 다짐하며 나는 오늘도 진료실에서 반달눈이 될까 말까 고민하며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래도 진료실을 떠날 때는 그들이 잠시라도 웃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