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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로 Nov 04. 2020

첫 만남

<내 친구 이야기>

-다시 태어나도 친해지고 싶은-



*

일성이를 처음 만난 건 신촌의 한 호프집에서였다. 얼추 십육칠 년 전으로 기억한다. 신촌의 H 문화센터란 곳에 광고 카피 강좌가 있었는데 그곳 출신의 수강생들 커뮤니티 모임이 있었다. 내가 그 강좌를 듣지도 않았는데 모임에 나가게 된 건, 어쩌면 일성이를 만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물론 당시에는 전혀 다른 불순한 목적으로 나갔지만 말이다.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퇴근 후에는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장충동 어느 술집에서 대학원 사람들과 술을 마실 때 오래전 연락이 끊긴 은사님을 우연히 만났었다. 왕년에 광고계에서 잘 나가던 은사님은 H 문화센터에서 카피 강좌를 맡아하고 있다고 하셨다. 은사님과 같이 술을 마시던 사람들도 강좌의 수강생들이었다. 카피라이터 지망생 시절에 꽤 따랐던 은사님이었기에 자연스럽게 합석을 했고, 은사님은 나에게 수강생들의 온라인 카페에 가입하라고 권유하셨다. 잦은 야근과 대학원 모임, 인터넷 모 커뮤니티 활동까지 바쁘게 지낼 때라 나는 정중하게 거절할 생각이었다. 은사님이 나의 아킬레스건을 타깃으로 후크를 날리시기 전까지는 말이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다음 카페에 개설된 커뮤니티에 가입해 인사를 남기고, 며칠 후 신촌의 한 호프집에서 예정된 소개팅, 아니 정모에 참석했다.

 

*       

기껏해야 열 명 남짓 모일 줄 알았던 정모는 생각보다 많은 인원들이 참석했다. 은사님을 제외하고 모두가 초면이었지만 다음 카페에서 며칠 댓글을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아마 은사님의 호의적인 소개도 한몫했을 것이다. 은사님은 광고쟁이 특유의 과장된 수사를 덧붙여 나를 실제보다 더 잘 나가는 옛 제자로 소개해주셨다. 


“오늘 처음 온 별로는 무려 십일 년 전의 제자다. 군대도 안 다녀온 놈이 카피 배우겠다며 휴학하고 나를 찾아왔지. 아! 당시에는 카피 못 썼어. 커리큘럼 마지막이 자기소개서 쓰기였는데 하도 그지 같이 써와서 계속 다시! 다시! 다시! 그런데 이놈이 나에게 오케이 받은 헤드라인이 뭔지 아니? 저의 첫 경험을 고백합니다. 좋은 카피지? 아직도 기억나는데 어렸을 때부터 광고와 관련된 에피소드들로 자기소개서를 구성했었지 아마. 지금은 십 위권의 메이저 종합광고대행사 가나기획의 메인 카피라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비슷한 나이나 더 많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 제자 기수로는 대선배님이니까 잘 대해줘. 특히 아직 카피라이터 명함 없는 분들은 점심시간에 별로 회사에 무작정 찾아가서 밥 사달라고 할 것. 알지? 취업은 인맥이다!” 


은사님의 소개는 실제와 조금 달랐다. 가나기획을 다니고 있던 것은 맞았지만 대행사 순위로는 삼십 위권 밖의 작은 회사였고, 카피라이터 티오가 한 명인 회사에서 메인을 붙이기에도 민망했다. 심지어 사무실도 빌딩의 옥탑 공간을 개조한 곳을 사용하던 부끄러운 회사였다. 무엇보다 카피라이터 후배를 끌어줄 영향력 따위는 나에게 없었다. 그러나 은사님의 과분하고 왜곡된 소개에 굳이 토를 달지는 않았다. 나는 은사님의 말대로 남자보다 많은 여자 회원들(콕 집어 얘기하면 예쁘고 매력적인!)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

회원 중에는 영화배우 옥소리도 있었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나이 많은 옥소리가 영화는 안 찍고 카피 공부라니! 자리를 바꿔 가며 술을 마시다 잠깐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옥소리는 키가 더 작고 나이가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린, 옥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외모의 영숙이란 수강생이었다. 영숙이는 자기 스승의 옛 제자에게 예의를 지키며 무난한 대화를 허락했지만 아쉽게도 거기까지였다. 주제를 바꿔 조금이라도 친밀하고 사적인 대화를 시도하려는 나에게, 영숙이는 세련된 솜씨로 철벽을 치며 얄미운 새처럼 이내 다른 자리로 날아가 버렸다. 차이는 것이 일상다반사인 시기였다. 그럼에도 나는 영숙이란 여자와 지인이 됐다는 것만으로 카피클럽이란 식상한 이름의 그 모임이 마음에 들었다. 김칫국을 안주삼아 생맥주를 들이켜고 있을 때였다. 일성이를 포함한 한 무리의 칙칙한 남자들이 내 주변에 착석하기 시작했다.

     

“영숙이 예쁘죠? 우리 남자 회원들 중에 영숙이 안 좋아하는 사람 없을 걸요?” 


경훈이란 친구가 내 속내를 꿰뚫고 있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별로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친하게 지내봅시다!” 


민식이란 친구는 마치 자신이 선배인양 껄렁껄렁 인사를 건넸다. 


“선배님,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강일성입니다!” 


은사님의 당부에 부응하며 선배에 대한 예우를 갖춰 가장 깍듯하게 다가온 사람이 일성이였다. 알고 보니 셋은 부산의 한 대학 연합서클 출신들로 나와는 한 살 터울이었다. 두 명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카피라이터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고, 일성이는 카피라이터의 무덤이라고 일컬어지던 충무로의 작은 기획사에서 학원 찌라시(전단지) 광고를 만들고 있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카피라이터가 꽤 인기 좋은 직업이었다. 코딱지만 한 회사에서 박봉과 야근을 조건으로 구인광고를 내도 경쟁률 수십 대 일은 기본이었다. 카피라이터 지망생이라면 명함만 만들어줘도 무보수로 일해도 좋겠다는 말을 간절하게 내뱉던 시절이기도 했다. 전단 카피를 쓰는 카피라이터는 잡지와 신문광고 카피를 쓰는 회사로의 이직을 꿈꿨고, 인쇄매체 광고 카피를 쓰는 카피라이터는 라디오와 텔레비전 광고 카피를 쓰는 대행사가 최종 목표이기도 했다. 나처럼 어중간한 규모의 대행사에 다니던 카피라이터 역시 메이저 종합광고대행사를 동경했지만,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한 부산 ‘머스마’들에게는 어쩌면 내가 조금 나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좋은 카피와 광고에 대해 밤을 새워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열정이 충만한 상태였고, 그들에게 나는 업계에 대해 적당히 알 것 알고 또래라 만만한 대나무숲이었다. 나는 진지하고 열띤 술자리 토크에 집중포화를 당했고, 영숙이를 비롯한 여자 수강생들은 더 이상 내가 있는 테이블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

최종 연사는 일성이였다. 어렸을 때 웅변학원이라도 다닌 것처럼 목소리에 힘이 넘쳤고, 나에게는 그다지 관심분야가 아니었던 학원 전단 광고에 대단한 자부심을 담아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요즘의 캐릭터에 비유하면 카피라이터 박찬호랄까. 1차 호프집에서 2차 삼겹살집으로 자리를 옮겨도 소용이 없었다. 일성이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 일부러 뭉그적거린 후 나름 먼 곳에 자리를 잡아도, 술을 마시다 보면 어느새 일성이는 내가 있는 테이블로 와서 직구, 투심 패스트볼, 체인지업 등 구종도 다양한 토크를 쏟아냈다. 1차 자리가 끝나고 영숙이가 집에 갈 때 나도 갔어야 했다. 물론 시도를 안 한 건 아니었다.

 

“내일 출근도 해야 하니 저는 이만 먼저….” 

“별로 형님! 무슨 소리 하십니까? 몇 시 출근하시는데요? 아홉 시요? 저는 여덟 시까지입니다. 한 잔 더 하셔야죠?” 


술이 약해 일찌감치 집으로 내뺀 경훈이와 달리, 엇비슷한 나이라고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가며 초면에 무례하게 굴던 민식이와 달리, 일성이는 이름 뒤에 꼬박꼬박 님 자를 붙여가며 예의 바르게 술을 ‘강권’했다. 새벽 세 시가 넘어 술자리가 끝났을까.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모르게 만취 상태로 귀가를 했고, 다음날은 결국 정오가 다 되어서야 간신히 출근할 수 있었다. 정신없이 회사에 도착해 한숨을 돌리며 휴대폰을 확인하니, 오전 여덟 시에 일성이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일성 : 별로 형님! 일어나셨습니까? 어제는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또 한 잔 하시죠! 저는 업무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파이팅입니다!’


회사가 아니라 약수터에서 보낸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문자메시지에서 활기가 넘쳐흘렀다. 나는 카피클럽의 오프라인 모임은 자제하고 온라인 위주로 활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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