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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로 Mar 02. 2021

워크숍

<내 친구 이야기>

-다시 태어나도 친해지고 싶은-

-

*

일 때문에 일성이네 회사에 잠깐 들락날락한 적이 있다. 나는 내 일만 했으므로 철저히 관찰자 입장에서 회사가 돌아가는 것을 지켜봤다. 내가 본 일성이네 회사는, 한마디로 웃겼다. 사무실을 자양동 어딘가의 뒷골목 상가 2층에 구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단지 임대료가 싸다는 이유 하나로, 광고 기획사가 위치하기에 생뚱맞은 곳에서 일성이는 시작했다. 십 년 만에 임대료를 찔끔 올린 홀아비 건물주는 계단에서 일성이를 마주칠 때마다 막걸리를 먹자고 했다. 1층의 부동산 할아버지는 일성이네 사무실로 온 주말 택배를 맡아줬고, 부동산 옆 우유배달 대리점은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수시로 우유를 박스 채 갔다 줬다. 서울답지 않게 정겨운 동네지만, 외양만 보면 불법 다단계 사무실이 어울릴 법한 곳이었다. 직원 숫자가 농구팀 멤버 수를 넘길 즈음부터 일성이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사내 프로그램들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제수씨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이 회사의 수익과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지역 상권을 살린답시고 동네 식당을 선정해 직원들이 가서 이용한 후 문제점을 파악, 개선점을 주인에게 제안하는 마케팅 투어 행사가 대표적이다. 이를 위해 일성이를 포함한 모든 직원이 몇 번의 회의를 하며 일할 시간을 까먹었다. 사장 입장에서 시간이 곧 돈인 직원들을 이따위 일에 투입시키는 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식당 주인에게 컨설팅 비용 같은 걸 청구하지도 않는다. 착하게 걸어 다녀도 불심검문당할 것 같은 일성이가 아무런 대가 없이 컨설팅 자료를 들이밀면, 열에 아홉은 경계심을 갖고 문전박대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몇 군데는 진심으로 고마워했다며 일성이는 신이 나서 얘기했다. 비전 데이란 행사도 오글거렸다. 건강, 가족, 일, 취미 등등 항목별로 한 해의 목표를 수립하고 발표하는 것까지, 후하게 쳐줘서 취지는 좋다. 그러나 비전 데이의 내용을 편지에 써서 부모님한테 보내야 한다. 참고로 일성이네 회사 직원들은 모두 성인이다. 게다가 연말에 목표를 달성한 직원에게는 참 잘했다며 스트라이다 자전거 같은 걸 포상으로 준다. 이런 프로그램이 수십 가지다. 일성이가 임의로 정한 것도 아니고 월요일에, 월초에, 연초에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회사 일은 남는 시간에 하는 것처럼 보였다.

     

*

고행 워크숍은 수많은 사내 프로그램 중 일성이가 특히 공을 들이는 행사다. 성공하기 어려운 공통의 미션을 정해 일성이를 포함한 전 직원이 도전한다. 참가하기 싫은 사람은 회사에 출근해 업무를 보면 된다고 했다. 아무 거나 시켜, 난 짜장면! 사장이 솔선하는 고행 워크숍 불참을 선언했던 직원은 창사 이래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일산에 살며 호수공원에서 매일 자전거를 탈 때였다. 일성이가 고행 워크숍에 같이 가자고 했다. 내 여자 친구가 생기면 일성이랑 같이 술 마시고, 일성이네 회사 술자리가 있으면 나도 같이 어울려서 딱히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거라고 했다.     

 

“회사에 일 없어?”

“엄청 바쁘지. 시즌이니까. 그래도 고행 워크숍은 신성한 거야!”

“직원들이 불쌍하다.”

“강요한 거 아냐! 직원들이 회의를 통해 결정했어. 다들 좋아하던데.”

“회의 때 너도 참석하니?”

“응.”     


그해 전년도에는 지리산 종주를 했다고 한다. 지리산 둘레길은 걸어봤어도 종주라니! 등산이란 취미와 무관하게 여직원을 포함해서 낙오자 한 명 없이 전 직원이 지리산 종주라니! 그에 비하면 자전거로 부산까지 가는 것은 훨씬 만만해 보였다. 4대강 자전거 길로 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안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같았다. 자전거 길로 오백오십 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 식사와 숙소를 해결하기 위해 경로를 벗어나는 거리까지 감안하면 대충 육백 킬로미터다. 4박 5일 일정 중 서울로 복귀하는 마지막 날을 빼면 하루 백오십 킬로미터 정도씩 이동해야 한다. 나는 덜컥 같이 가기로 했다.     


*

출발은 오전 일곱 시, 자양동 사무실에서 하기로 했다. 시간 맞춰 사무실 앞에 가니 직원들이 한껏 들뜬 분위기에서 누군가 사온 김밥을 먹고 있었다. 직원들의 자전거가 같은 모델이라 한 직원에게 물어보니 일성이가 며칠 전에 한 대씩 사줬다고 했다. 제수씨는 자전거를 갖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자전거 뒤에는 봄날이란 회사명이 인쇄된 깃발 하나씩이 꽂혀 있었다. 일성이가 쭈뼛거리며 다가와 내 자전거 뒤에도 깃발을 꽂아주었다. 일성이가 선두에 서고, 내가 후미에서 따라가기로 했다. 소위 ‘떼빙’은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타인에게 불편을 줄 수 있어, 4대강 인증센터 같은 곳에서 중간 집결하기로 했다. 우리가 떠날 코스의 시작점이자 가장 가까운 곳은 광나루 인증센터였다. 간단히 장비들을 점검하고 출발!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광나루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일성이가 인증 수첩을 하나씩 나눠주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자 시작이 반입니다. 이제 반밖에 안 남았으니까 얼른 도장 찍고 출발해봅시다!”     


첫날이라 그런지 고행 워크숍은 마냥 즐거운 여행 워크숍이었다. 열 살 넘게 차이나는 직원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니, 대학시절 대성리 어딘가로 엠티 가서 자전거 타던 생각도 났다. 직원들도 평일에 출근하지 않고 어딘가로 떠난다는 사실에 들떠 보였다. 능내 인증센터를 거쳐 양평 군립미술관, 양덕리 언덕을 지나, 여주보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두부전골을 주문하고 음식을 기다릴 때 눈치 없는 박팀장이 업된 텐션 그대로 입방정을 떨었다.     


“전팀장, 우리 지나갈 때 사람들이 하는 소리 들었어? 복날 뭐? 무슨 보신탕집 홍보하는 건가래. 우리가 보신탕집 알바들처럼 보였나 봐. 하하하!”     


일성이네 회사 이름은 봄날 커뮤니케이션이다. 자전거 뒤에 꽂은 깃발 디자인을 신참 디자이너가 했는데, 조악한 캘리그래피 때문에 봄날은 복날로 읽혔고 커뮤니케이션은 무슨 단어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크게 웃는 사람은 나와 눈치 없는 박팀장뿐. 다른 직원들은 일성이 눈치를 봤고, 일성이의 얼굴은 뜨거운 두부전골 때문인지 더 상기되어 있었다.         


*

고행 워크숍은 나와 일성이를 포함해 총 아홉 명이 떠났다. 그중에 여직원은 세 명, 조금 불편하게 잔다고 해도 숙소는 최소 모텔방 서너 개가 필요했다. 자전거 아홉 대 보관이란 옵션까지 충족시켜야 해서 숙소 잡기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숙소는 해가 저물 때쯤 마지막 인증센터를 남기고 일성이와 내가 먼저 치고 나가 구하기로 했다.      


“하루 숙소 예산은 얼마로 잡았냐?”

“글쎄.”

“여자들 큰 방 하나 주고 남자들 둘이 방 하나씩이면 세 개, 얼추 삼십은 들겠네. 모텔이 주변에 있으려나?”

“근처에 민박집이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일성이가 찾은 민박집은 작은 간판만 다를 뿐 작고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초인종을 누르니 할머니가 한 분 나오셨다. 할머니는 아들이 오는 주말에만 방 하나 민박을 친다고 하셨다. 넉살 좋은 일성이가 특유의 어르신 친화형 살가운 멘트로 할머니를 설득했다.      


“부산까지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들인데요. 그냥 마루에서 재워주셔도 괜찮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요금보다 저렴한 단돈 십일만 원에 성인 아홉 명과 자전거 아홉 대의 하룻밤을 해결.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결혼 전에 같이 낚시를 하거나 여행을 갔을 때 말도 안 되는 가격의 숙소를 구하는 능력은 일성이의 전매특허였다. 비좁은 방 두 개에 남자 여섯 명과 여자 세 명이 따로. 할머니는 땀에 젖은 아홉 명의 옷들을 세탁기로 돌려 손수 널어주시기까지 했다. 냉장고에 있는 헛개차를 비롯해 직접 담그신 건강 음료들은 무제한 공짜였다. 일성이 주변에는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있다. 아! 그날 저녁 인근 식당에서 먹은 삼겹살집의 김치는 너무 맛있어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얘기를 할 정도였다.    

        

*

둘째 날이 밝았다. 군대에서 오리걸음 얼차려라도 받은 것처럼 허벅지가 뻐근했다. 전날 삼겹살을 먹었던 식당으로 다시 가 북어해장국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서둘러 출발 준비를 했다. 오늘의 코스는 충주 탄금대에서 이화령 고개를 지나 상주 상풍교까지다. 문제는 바로 이화령 고개. 직원들이 인터넷으로 알아본 바로는 서울 부산 간 자전거 길 중 가장 난코스라고 했다. 각종 블로그에는 이화령 고개를 깔딱 고개라고 표현돼 있었다. 악명 그대로였다. 오르막길만 무려 19킬로미터. 기아를 바꿔 가며, 때론 엉덩이를 들고, 궁여지책으로 갈지자를 그려가며 올라가다 ‘끌바’로 바꾸는 인원이 속출했다. 나도 중간쯤 어디선가부터 항복, ‘끌바’의 대열에 합류했다. 직원 중 스포츠에 만능이며 라이딩 실력 또한 출중한 전팀장이 사진 한 장을 못 찍고 정상에 도착했다고 했다. 사내 블로그 업로드용 사진 촬영은 고행 워크숍 내내 전팀장의 일이었다. 가을 뙤약볕에 빨갛게 익은 얼굴로 헉헉 거리며 정상에 도착했을 때, 쉼터에서 널브러져 쉬고 있던 일성이가 킥킥거리며 나를 반겼다. ‘끌바’로 한 번도 바꾸지 않고 오른 사람은 일성이와 전팀장뿐이었다.     


*

셋째 날부터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생각보다 진도가 더뎌 새벽 여섯 시부터 피치를 올린 탓이다. 회사 초창기부터 함께 한 한팀장(일성이네 회사 모든 직원은 직함이 다 팀장이다. 책임감 부여 차원이래나 뭐래나)은 항문이 찢어져 팬티에 피가 묻어 나왔다고 했다. 일성이 눈치를 유난히 많이 보는 한팀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장한 어조로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오버를 했다. 여직원 세 명 중 두 명은 무릎과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에 가야 될 것 같았다. 와중에 뺀질이 박팀장도 수상쩍은 복숭아뼈 부상을 핑계로 여직원들을 인솔해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구미보에서 빠진 부상자들은 버스를 이용해 오늘의 목적지인 현풍터미널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나머지 여섯 명은 속도를 더 올리기로 했다. 나름 손 많이 가던 두 명의 여직원이 빠져 나도 후미에서 벗어나 일성이와 함께 선두에서 타기로 했다. 가장 나이 많은 나와 한 살 어린 일성이가 가장 빨리 타는 것은 물론, 더 일찍 도착해 숙소를 구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 내 일과 회사 일의 차이로 이해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어둑해져 현풍터미널에 도착한 우리는 세 명의 부상자들과 합류해 숙소를 정하고 근처 식당에서 고기 파티를 열었다. 복숭아뼈를 다쳤다는 한팀장이 제일 많이 먹어 총 19인분을 먹었다.     


*

마지막 날에 남은 코스는 대구 달성보에서 종착지인 낙동강 하구둑까지였다. 자전거 길로 170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로 사흘간 누적된 피로와 부상자들까지 감안하면 완주는 불가능했다. 일성이는 나 몰래 4대강 홍보대사에라도 선정된 건지 완주를 고집했다.      


“부상자들 무리해서 타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신의 몸 상태 감안해서 일정 구간 버스로 이동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낙동강 하구둑에 도착할 때는 모두 같이 페달을 밟고 도착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도 완주하지 못한다면 갈수록 치열해지는 학원 광고 시장에서 우리가 이겨낼 수 있을까요? 자!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솔직히 일성이가 이해가지 않았다. 평소 4대강에 대한 불편한 감정까지 더해져, 무리수를 두며 완주하려는 일성이가 답답해 보였다. 목표 달성도 좋지만 리더로서 직원들의 안전을 덜 고려하는 것은 아닌지. 내색은 하지 못했다. 나까지 일성이의 반대쪽에서 의견을 내면 일성이가 너무 외로울 것 같았다. 완주를 위해 새벽 네 시 반에 출발한 마지막 일정은 무려 열여섯 시간이 지난, 밤 아홉 시 반에 낙동강 하구둑 건너 을숙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식사도 삼십 분 내에 해치우며 미친 듯이 페달을 밟은 결과였다. 오후 다섯 시를 넘길 때쯤에는 자전거를 타며 ‘라이더스 하이’를 경험할 정도였다. 허리 아래는 내 것이 아니라 자전거에게 빼앗겨 기계의 일부가 된 느낌이랄까. 일성이와 직원들의 기념 단체사진을 찍어주며 빨리 눕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때의 나는 ‘끌바’를 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

고행 워크숍 내내 함께 숙소를 예약했는데, 어쩐 일인지 일성이가 같이 가잔 말을 안 했다. 미리 구했다며 자기를 따라오라는 말만 할 뿐. 힘든 나를 배려해 그저 미리 숙소를 구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성이는 ‘거의 다 왔습니다. 조금만 가면 됩니다.’를 반복할 뿐, 나와 직원들을 데리고 하염없이 어딘가를 향해 자전거를 타고 갔다. 그러다 또다시 언덕이 나왔다. 처음으로, 진심으로, 일성이를 향해 욕이 나왔다. 그러나 ‘이제 그만 좀 가!’라고 버럭 소리치기 위해 일성이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주변에서 시체처럼 ‘끌바’를 하는 직원들에게 일성이가 어디 갔는지 물어봤다.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앞사람만 잘 따라오라고 했다는데요. 아! 탈진 일보직전인데.”     


을숙도에서 한 시간을 이동해 도착한 곳은 다대포 롯데캐슬 아파트였다. 그곳에 일성이 부모님이 인자하게 웃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거실에는 말 그대로 상다리가 휘어지게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고, 일성이는 씻지도 못한 채 꼬질꼬질한 얼굴로 직원들의 샤워 순서를 바쁘게 정하기 시작했다.     


“모두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빨리 씻고 나와 앉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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