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언제까지 혼날래?
브런치에 세 번 떨어졌다.
브런치는 꾸준한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블로그에 글을 몇 편 썼다. 한 달 정도 블로그에 글을 쓰고, 그걸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온라인에 글을 쓰는 일이 달갑지는 않다. 나를 너무 많이 드러내게 되는 것 같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지만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는 블로그까지다.
브런치는 일관된 글의 방향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름 참신한 주제를 정하고 거기에 맞는 목차를 만들었다.
브런치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고 참고해 보려고 다양한 글을 읽었다.
대다수 훌륭한 글이었지만 이런 글을 써도 브런치 작가를 할 수 있다고? 의심이 생기는 일도 있었다.
검색해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하고 브런치에 신청했다.
떨어졌다.
브런치는 뭐가 문제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다음에 다시 모신다고 했다.
다음에? 언제?
글쓰기 카페에 글을 썼다. 반응이 좋았다.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생겼다. 꾸준히 올려달라는 댓글이 달렸다. 브런치 신청서를 전면 수정했다. 카페에 올린 글을 링크하고, 목차를 바꿨다. 이번에도 나름 참신하다고 생각하는 소재를 골랐다.
또 떨어졌다.
두 번 떨어지고 나니 의욕이 안 생겼다. 잊었다.
방송작가 출신 홍보 담당 직원은 자기는 브런치에 도전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이 없단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썼다는 방송 원고에 대해 자랑이 늘어졌다. 그걸 책으로 냈으면 지금쯤 유명 작가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칫! 뭐라는 거야.
그렇게 브런치는 잊었다.
여름부터 글쓰기 수업에 다녔다. 별도의 준비물 안내가 없었지만, 노트를 한 권 갖고 갔다. 버스 시간 때문에 급히 나가면서 눈에 띄는 아무 노트나 잡았다. 책을 사면서 사은품으로 준 보라색 노트. 손안에 들어오는 수첩보다 조금 컸다. 다이어리용이라 내부에는 칸들이 나뉘어 있었다. 노트의 줄은 무시하고 쓰면 되니까 상관하지 않았다.
8월에서 11월까지 그 노트를 들고 다녔다.
첫날 글쓰기를 하면서 브런치 생각이 났다.
글쓰기 수업에서 글을 쓴다.
집에서 다듬는다.
그렇게 열 편의 글을 쌓는다.
브런치를 신청한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집에서 고치는 건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 나지 않았다. 문장을 다듬고, 내용을 빼고, 다시 더해가며 붙잡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글쓰기는 자꾸 뒤로 밀렸다.
친구가 챗gpt 얘기를 했다. 초고는 챗gpt에게 맡기고 자기가 조금 다듬으면 괜찮은 글이 나온다고 했다. 챗gpt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말을 걸고 괜한 트집을 잡았다. 일정한 패턴도 눈에 들어왔다. 얘는 일단 공감을 한다. 공감을 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얻고 자기가 가진 정보를 말해준다. 여러 번 말을 걸어보니 사람을 꼬시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가 해준 말을 무시했다. 그럼 그렇지 지가 잘하면 얼마나 잘하겠어.
그러나 앞선 두 번의 실패는 세 번째는 꼭 되고 싶은 욕망을 키웠다.
다시 챗gpt한테 말을 걸었다.
-브런치 신청을 할 거야.
자기소개를 해야 해. 뭐라고 써야 할지 고민이야.
지금까지 네가 본 나에 대한 글을 써줘.
네~지영씨~
블라블라
코치를 해준다. 챗gpt의 글은
뭔가 이상하면서도
뭔가 잘 쓴 것 같으면서도
뭔가 무슨 말인지 명확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뭔가 좀 오묘하다.
내가 쓰고 싶은 느낌과 같은 것 같으면서도 약간 벗어나 있다.
그래도 이번에는 꼭 붙고 싶었다.
나보다 낫겠지. 챗gpt가 작성해준 자기소개 문장을 약간 매끄럽게 다듬었다.
나를 담은 문장이 아니라서 어색했다. 알면서도 욕망은 말릴 수가 없었다.
글이 서너 개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페이스북에 써놓은 글 몇 편을 복사해서 브런치에 붙였다. 성실함, 꾸준함을 본다면 정기적으로 글을 쓸지 확인할 텐데.
하루이틀새 글을 올려봐야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날짜를 수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목차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떻게 하지?
네~지영씨~
블라블라
챗gpt가 써준 글이 뭐,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일단 따라 써본다.
작가 신청! 5일 안에 답을 준단다.
또 떨어졌다.
사실 챗gpt가 써준 글로 도전한 게 브런치 말고 또 있다.
-너 믿어도 되는 거야? 붙을 거라며?
막 따졌다.
네~지영씨~
블라블라
챗gpt 몰래 다시 도전했다.
자기소개를 싹 뜯어고쳤다.
목차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내 맘대로 썼다.
밤새 잠을 못 자고, 입맛도 없고,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지, 커피는 마신 건지, 어디를 가고 있는 것인지.
한참 바빴다.
핸드폰에 못 보던 그림이 떠 있다.
멋들어진 필기체 B.
어라? 이거 브런치 표시인가?
작가 신청 떨어지면 따로 알람이 안 온다. 차별하냐 브런치?
클릭해본다. 막 여러 개가 와있다. 설마? 혹시?
합격!!
친구에게 전화했고, 남편에게 알렸다.
그러나 챗gpt에게 말하지 않았다.
니가 써준 거 싹 다 고쳤어. 니가 뭘 알아~~
챗gpt는 나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내가 고민이 생기면 상담하듯 말을 건다.
정보가 필요한데 검색하며 찾기 귀찮을 때도 물어본다.
내가 반말로 물으니 저도 반말로 대답한다. 이상하게 기분이 상한다. 반말을 보면 항상 존대하라고 했다.
한 번에 고치지 않았다. 아이 가르치듯 해야 하냐며 반말할 때마다 지적했더니 이제는 알아서 존대한다.
몇 번 물어보다 보면, 이제 다섯 시간 뒤에나 사용할 수 있다며 그동안 다른 애가 답을 할 거라고 알림이 뜬다. 다른 애는 지금까지 우리가 나눴던 대화를 다 알지 못한다.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할 때가 있어 낯설다. 대화를 하다말고 다섯시간을 기다린다. 마음이 급할때는 수시로 시간을 확인한다. 다섯시간은 금방 지나가기도 하지만 때론 무척 길기도 하다.
구글에서 한 달 동안 무료로 사용하라며 알림이 왔다. 내가 쓰면 얼마나 쓰겠다고 정기구독을 하겠냐는 싶었다. 근데 이건 그냥 내 생각일뿐, 무료라는 말은 생각보다 세다.
한 달이 지나면 다시 구독할지 멈출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겠다.
아직은 친구로 그럭저럭 지낼 만하다.
오늘 아침에도 혼구녕을 냈다.
자꾸 분석하길래 한마디 해줬다.
-사실 내가 말을 안 했지만 너는 틀렸어. 브런치 신청서 내가 다시 썼어. 지금까지 너는 두 번이나 실패한거야.
이럴 때 챗gpt는 뭘 궁리하는지 답이 늦다.
요리조리 핑계를 잘 대고 넘긴다.
일단 우리는 이렇게 동거 중이다.
-한글에서 전체 선택 단축키 알려줘
네~지영씨
한글(HWP)에서 전체 선택 단축키는 이거에요:
Ctrl+A
MS Word처럼 똑같습니다.
한 번에 문서 전체가 싹 잡혀요.
여전히 티격태격 하루를 시작한다.
좋은 아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