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피부 경희씨

여기 사람이 서 있습니다

by 우리동네지영씨

숟가락을 든 경희씨는 초집중이다.

경희씨는 뜨끈한 소불고기 뚝배기, 나는 낙지죽이다.

채식만 한다는 친구를 응원하지만 고기를 끊을 수 없다고 한다.

맛만 보라고 덜어주려는 나를 말리다가 포기한 듯 조금만 달라고 한다. 진짜 조금만.

하지만 나는 충청도 여자.

한번은 정 없다는 우리네 정서는 기어코 두 번을 덜어준다. 진짜 조금씩만.


음식이 나오자 얼른 한 숟가락 입에 넣고 경희씨를 본다.

입으로는 죽을 먹으며 눈으로는 혹시 도움이 필요할까 대기한다.

경희씨가 천천히 숟가락을 들고 고기를 뜬다. 그러고는 입을 가까이 댄다.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또 숟가락을 든다. 이번엔 고기와 함께 당면이 올라온다.

나는 더 긴장한다. 당면은 늘 변수가 된다. 경희씨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처음 함께하는 식사 자리, 뭔가 흘리면 경희씨가 당황할 수 있으니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자고 다짐하며 시나리오를 짜둔다.

와~당면이 아주 깨끗하게 입에 흘러 들어간다.

한 조각도 흘리지 않는다.


그녀의 숟가락은 느리지만 거침없다. 다른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숟가락에만 온정신을 모은다. 밥을 먹으며 글을 읽거나 스마트폰을 보는 일도 없다.

천천히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을 때까지 한 치도 어긋남이 없다.

지금은 오로지 밥 먹는 그 순간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이제 막 자기 손으로 밥을 먹는 아이처럼 온 우주에 밥과 경희씨만 떠 있다.

식사를 마친 경희씨 자리는 누구보다 깨끗하다.

내 도움은 필요 없었고, 내 걱정은 기우였다.

도움이 필요할 거라는 내 시선은 보기 좋게 한 방 먹은 것이다.

나는 내 시선 안에 경희씨를 가뒀다.


시선의 차별


나도 시선의 차별을 당한다. 왜 차별하는지 이유를 모르지만, 상대는 나를 다른 사람과 구분한다. 그 사람과 마주치지 않으면 보통 때는 느끼지 못하고 산다.

하지만 경희씨는 날마다 겪어내야 하는 일상이다.


처음 경희씨를 본 건 8월의 어느 날이다.

경희씨 주변엔 늘 사람이 많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냥 지나쳤다.

영화 상영회에서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경희씨를 봤다.

경희씨는 있는 자리마다 눈에 띄었지만, 관심 두지 않았다. 가까이 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살짝 피했다.


시민단체 강연에 고운씨가 경희씨를 데려왔다. 경희씨는 질문도 해가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웃음이 많고 밝았다. 사람들과도 금세 어울렸다.

뒤풀이에서 처음 경희씨랑 이야기 나눌 기회가 생겼다. 집중해서 듣는다고 해도 놓치는 말이 생겼다. 사이에 앉은 고운씨가 소통을 도왔다.


1인시위를 한다며 단체 톡방에 사진이 올라온다. 경희씨다.

사진이 날마다 올라온다.

어떤 식으로든 응원을 하고 싶었다. 근처에 서 있기만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1인시위인데 두세 명이 함께 있다 보니 말이 나왔는지 집회신고를 했단다.

맘 놓고 와서 옆에 서도 된다고 한다.


내일 아침에 나도 갈게요.


아침엔 역시 춥다.

두툼하게 차려입고 가보니 경희씨는 벌써 나와 있다.

수능 날이라 출근 시간이 늦춰진 탓인지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경희씨는 함께 사진을 찍고 단체 톡방에 올렸다.

나도 여기저기 올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조금 있으려니 시의원이 다가왔다.

추운데 어쩌냐며 걱정하는 말을 하고 들어간다.


그렇게 걱정이 되면 대출금이나 좀 갚아 주던가~


유쾌한 경희씨.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깔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광장에 나가본 사람은 안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몇 시간을 앉아 있다 보면 쓸쓸한 시간이 온다는 걸.

우리는 구호를 외치고, 공연을 보고, 연설을 듣는다. 함께 있음을 눈으로 마음으로 확인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나는 집회는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루한 시간이고, 힘든 일이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걸 각오하고 나오더라도, 고통스럽게 있을 필요는 없다.


날은 점점 더 추워질 것이라는 걸,

장기간이 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연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시작하진 않았을 터이다.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다.


그냥 옆에 서 있는 것.


아침 집회를 마치고 경희씨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또 점심 집회를 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집에 오니 머리가 아팠다.

경희씨는 장애인이다.

경희씨와 이야기를 하는 시간엔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경희씨를 보며 나는 세상을 또 배운다.

별것 아닌 낮은 문턱이 경희씨의 앞을 가로막는다.

바쁜데 빨리 못하냐는 시선이 따갑다.

이제 나는 경희씨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경희씨 말보다 먼저 알아듣는다. 노력과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 더이상 다르지 않다.

무엇을 찾는지 보이고, 무엇을 도와줘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기다리는 시간엔 의외의 수확이 있다.

이틀 동안 짬짬이 경희씨와 보내며 내가 도와준 건

전동 휠체어가 들어가기 편하게 문을 열어준 것,

무거운 짐을 들어준 것,

그게 전부다.


앞서 들어가는 사람이 문을 열어주면, 그 사소한 배려가 마음에 따뜻하게 닿는다. 장을 보고 무거운 짐이 양손 가득할 때, 누군가 잠깐만 들어줘도 훨씬 수월하다. 큰일이 아니다.

시간이 나면 집회에 섰지만

이제는 시간을 내어 집회에 서려고 한다.

장애인 집회에 비장애인이 서 있다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면

나는 기꺼이 함께하고 싶다.



여기 사람이 서 있습니다.

잠깐 멈추어, 이 사람이 왜 여기 설 수밖에 없는지 한 번만 물어봐 주세요.


그 간절함을 한 번만 들어주세요.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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