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좀 데리고 들어가 주세요
카페에 없는 듯하다.
테이블 하나하나 살펴본다.
한 남자가 방금 들어와 카운터 쪽으로 걸어온다.
저 사람인가.
여자가 와서 다정하게 이야기한다.
아니네.
카페를 다시 한번 둘러본다.
공부하는 학생들, 담소 나누는 연인들뿐이다.
혼자 앉아있거나 책을 든 사람이 없다.
벌써 캐롤이 흘러나온다.
소리가 가장 작을 것 같은 자리를 찾는다.
약속 시간 10분 전.
서둘러 책을 읽는다.
오늘 이야기 나눌 분량을 아직 끝내지 못했다.
얼굴은 몰라도 책으로 사람을 찾을 수 있으니,
사람은 나중에 찾고 일단 책부터 읽는다.
어디 계신가요? 다 오셨나요?
저 카페 안에 있어요.
다들 아시는 분인가요?
저는 초면입니다.
저 좀 데리고 들어가 주세요.
카페 밖에 계세요?
네
문 열고 들어오세요. 제가 알아볼게요.
카페엔 출입구가 세 개다.
문 세 개가 모두 보이는 곳에 섰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
돌아서 뒷문을 본다.
뒷문도 변함이 없다. 사람 기척도 없다.
내가 장소를 잘못 알았나?
모임 장소를 다시 확인한다.
한참 뒤, 옆문 쪽에 수줍게 사람 실루엣이 나타난다.
문 앞에 있다며;;
안경 쓴 중년 남성 칼슨,
작지만 덩치 큰 앳된 청년 재형씨,
리더 역할을 할 미카님,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오늘부터
사기 열전을 읽는다.
칼슨이 자기 영어 닉네임이라며 소개를 시작한다. 평일엔 회사 일로 세종에 있어 저녁 시간에 독서 모임을 찾았단다.
미카와 재형씨는 이 모임을 2년째 하고 있다고 한다.
자기소개가 끝나자 칼슨이 이야기를 꺼낸다.
지금처럼 한 권을 여러 번 나눠 읽는 건지 묻는다.
자기는 휘리릭 빨리 읽는 스타일이라 이 방식이 맞지 않는단다.
친구네 독서 모임은 일주일에 한 권씩 문학 비문학을 격주로 읽는다면서 자기는 계속 지금처럼 진행하면 참여 못 하겠다고 한다.
와우~초반부터?
카페도 데리고 들어가 달라던 사람 맞나?
지켜보던 재형씨가 한마디 한다.
칼슨님은 조용히 강단 있는 것 같아요.
재형씨는 말을 할 때 입을 작게 벌린다.
말소리도 작아서 잘 들리지 않는다.
미카가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지금까지 벽돌책 위주로 읽어왔고, 이 방식을 계속해왔다고 설명한다.
미카는 지난번에 읽었던 사르트르의 구토 이야기를 꺼낸다.
처음엔 읽기 힘들었지만, 앞부분을 반복해서 읽고 완독하니 재밌었다고 한다.
설명으로는 통 설득이 안 된다.
일단 오늘은 이렇게 해봐요.
열전 앞에서 다섯 꼭지.
한 꼭지부터 차근차근 각자 느낌을 주고받는다.
나는 계속 질문을 하고 사기 열전의 이야기들이 지금 사회와 맞는지 딴지를 걸었다.
칼슨은 이미 오늘 이야기 나눌 분량을 넘어 훨씬 더 많은 양을 읽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 질문에 집중을 못 한다. 토론을 못 따라간다.
책 내용이 하나도 생각 안 난다며 이야기 중에도 계속 책을 읽었다.
미카는 연필로 밑줄 친 부분을 언급하면서 또 구토 이야기를 한다.
그 후에도 미카는 열 번 넘게 구토 이야기를 했다.
이것은 구토도 아니고 사기열전도 아니여~~
재형씨의 유난히 작은 입은 사람을 집중시킨다.
계속 재형씨 입술만 보인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 다시 말해달라고 여러번 말했다.
다시 말할지언정 소리를 크게 하지 않는다.
사기열전은 재형 씨 추천 책이라는데 재형씨는 한 꼭지도 읽지 않고 왔다.
다음 주 진행은 재형씨가 맡기로 했다.
재형씨는 일곱 번째 꼭지까지만 진행하고 싶단다.
자기 진행이니 자기 스타일로 천천히 읽고 싶다고 한다.
두 꼭지만 읽고 만나는 셈이다.
바로 칼슨을 쳐다본다.
처음에 자기는 한 권을 다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더니 열전 두 개만 하자는 재형씨 제안에 흔쾌히 좋다고 한다.
두 시간 만에 변했네.
안 맞아서 안 온다며~~
책 한 권을 매개로 만난 개성 강한 네 사람.
과연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사기열전을 마칠 때쯤 어떻게 스며들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더라도 조화를 이룰 수 있을는지.
스며들 수 없을 것 같은 칼슨은 이미 스며들었다.
독서 모임은 네 명이 모이면 네 권의 책을 읽는 효과가 있어 가치 있다고 한다.
책은 그속에 있는 사람뿐 아니라 현실에서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
사기열전 독서 모임.
책을 넘어 사람이 기대되는 독서 모임이 시작됐다.
어이없게, 웃긴 건
뭐에 홀린듯 미카가 말한 그 '구토'를 샀다는 거다.
미카는 책 내용에 대해서 말 한마디도 안했다.
책이 아니라 사람의 기묘한 에너지에 끌렸다고 할까.
나도 이미 스며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