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할 틈을 주세요
한재씨는 오지 않았다.
마지막 시간에 연락처를 물어볼 수 있었지만, 내가 급히 자리를 이동해야 했다.
나중에 카톡으로 연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픈 카톡방에서도 한재씨는 메시지 전달을 막아두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어떤 강의’인지 물었으니 단체톡방에 정보만 올려두면 오겠지 생각했다.
한재씨는 강의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화에 끼고 싶었던 것 같다.
글쓰기 마지막 수업.
한재씨 글을 듣고 눈물을 훔치는 나를 보면서 한재씨는 “공감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라고 했다.
한재씨는 평소와 달랐다.
자기가 사진을 보정해주겠다면서 빛이 들어오는 창가로 사람들을 세웠다.
소소하게 말도 걸어왔다.
표정도 한결 편해 보였다.
지난 열한 번의 수업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다들 소감을 글로 남겼다.
낭독하면서 누구 글인지 사람이 떠올랐다.
글로 소통했던 우리는 글에 남은 흔적을 한눈에 알아봤다.
사람보다 글로 서로를 알아보는 사이.
수업 시간은 늘 같은 방식이었다.
자기가 쓴 글을 읽고,
선생님이 피드백을 주고,
다음 사람이 글을 읽었다.
이렇게 순서가 모두 끝날 때까지 선생님만 피드백했다.
선생님의 피드백은 글쓴이의 의도와 다를 때도 있었다.
글을 쓰고, 읽고, 피드백하고. 시간이 빠듯했다.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분주하기도 하고. 다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참견
강요
충고
비난
금지된 것들은 글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닿게 했다.
그러면 사람은 어떨까?
수업을 마치면 함께 점심을 먹곤 했다.
나도 일정을 조금 미루고 한두 번 참석 했지만, 다시 가지 않았다.
재미가 없었다.
사람이 궁금하지 않았다.
글쓰기 시간엔 타이머가 울렸다.
1분 글쓰기, 3분 글쓰기, 5분 글쓰기, 15분 글쓰기.
글 쓰는 시간은 늘었고, 타이머가 울리면 무조건 멈춰야 했다. 마음이 바빴다.
글을 쓰고, 쓴 글을 읽고, 선생님의 피드백을 받으면 어느새 수업 마칠 시간이었다.
사람을 볼 시간이 없었다.
한재씨 연락처는 프로그램 담당 사서를 거치면 알 수 있다.
알려면 알 수 있는데 보름이 지나도록 하지 않고 있다.
소설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가 소설가와 가까워지는 걸까?
금지로 유지했던 안전한 거리두기는 사람을 가깝게 하지는 못했다.
도서관 엘리베이터에 동네 독서 모임 전단지가 붙었다.
일정을 보니 내가 참여 가능한 날엔 윤동주를 읽는다.
너무 좋은 거지~
선생님은 말이 많다. 아니 선생님이 혼자 서서 수업한다.
칠판에 써가며.
독서 모임이 국어 수업 같다. 이 나이에 수업이라니...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은 선생님 한 사람뿐이다.
가끔 누군가 질문을 던질 뿐.
책 반납하러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또 그 전단지를 봤다.
어?
날짜가 이상하다.
7일에 모임을 했으니 21일 모임인 줄 알았는데 광고지에는 7일, 14일로 되어있다.
모임 단톡방에 물었다.
아무도 대답이 없다.
메시지 옆 작은 숫자가 자꾸 줄어든다.
읽은 사람은 늘어나는데 대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모임이 21일 인줄 알았는데 엘리베이터 전단지 보니 14일이네요.
날짜를 잘못 알고 참석 못 했어요. 14일에 모임 하셨어요?’
한참 뒤, 선생님이 메시지를 남겼다.
선생님은 7일 모임 후기를 길게 적고, 밑에 21일에 모임에서 무엇을 할지 설명했다.
14일에 안 했고, 21일에 해요.
한 줄이면 될 것을 선생님은 스무 줄이 넘는 장문을 남겼다.
선생님은 메시지에 내가 원한 명확한 답 한 줄을 남기지 않았다.
이렇게 쉬운 것을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는 단체톡방이라니.
낯설다.
원래 하던 모임에 끼어든 것이라 아직 분위기 파악 중이지만
오늘 같은 날엔 나도 목소리를 냈다.
“그 당시는 성희롱 발언이나 다방 여자들 엉덩이를 두드리는 일들은 흔하게 허용되는 일이었다.
시인이 아깝다. 그런 이론으로 따지면 첩을 두고 살았던 사람들은 왜 비난하지 않냔 말이다. ”
선생님의 이야기는 갈수록 시인의 행동을 축소 시켰다.
급기야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을 상대로 몇 마디 한 것을 가지고....”
다들 듣고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시를 보면 말만 한 것이 아니라 신체 접촉도 있었음을 알 수 있어요.
피해자가 나왔을 때 태도가 더 화나게 합니다.
진심으로 사과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거예요.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맞는 말씀인데요.
하지만 지금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면 지금 시대를 읽는 게 더 맞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사람일수록 사회적 책임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얼굴이 빨개졌다.
그래도 엉뚱한 소리를 계속했다.
아무도 아무 말도 안 했다.
강의실에는 책도 없이 다른 사람과 떨어져 앉아있는 청년이 있었다.
선생님 딸이란다. 수업하는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새로 사람이 왔는데 선생님은 소개도 설명도 없다.
수업이 끝나자 선생님은 자기 자리를 정리했고, 어떤 사람은 벌써 가고 없었다.
인사도 없이 사람들이 싹 사라졌다.
여전히 낯설다.
말하는 시간의 공평함.
소통에는 보이지 않은 룰이 있다.
누구도 딱 반씩 나눠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진 않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네가 말하면
나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 말의 대부분을 차지하면 나머지는 입을 닫는다.
입을 닫는다는 건 소통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소통이 만드는 것은 틈이다.
사람 사이에 사람이 들어갈 틈을 만들고 그 틈에 서로가 들어간다.
틈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을 보지 못한 글쓰기 모임은 끝났다.
글쓰기 수업은 말이 멀었고, 독서모임은 말이 없다.
과연 나는 이 독서 모임에서 사람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