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이해할 때

공감은 내 안에서 시작된다

by 우리동네지영씨

나는 닳는다.


집에 오니 밤 11시 반. 퇴사했다.

마지막 날까지 야근.

혹시나 자기한테 일을 남기고 갈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온몸에서 나온다.

두 번 다시 연락받고 싶지 않았고, 퇴사 날짜에서 1분도 넘기기 싫었다.

잡담 없이, 쉼 없이 모든 일을 마무리했다.

회사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팀장은 날마다 전화했다. 원서를 넣으란다. 같이하자고 계속 꼬셨다.

면접을 보고 입사 첫날 부산으로 출장을 갔다.

이동중에 계속 같이 일하는 동료들 브리핑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얘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에서 사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팀장은 산만하게 돌아다니며 남의 일에 온갖 참견을 했다.

오후 4시쯤부터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낮에는 집중이 안된다고 했다.

내 퇴근 시간은 5시 30분.

이제사 겨우 열 일중인 팀장 눈치를 보며 퇴근을 못하니 자연스레 매일 야근이었다.


"내가 이런말 하면 안되는 거 알지만..."


이말이 듣기 싫었다.

알면, 안하면 되잖아.


좁은 사무실, 다른 팀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저절로 공유되는 생활, 다 함께 먹는 도시락 식사까지 한순간도 혼자 있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은 출근길 차 안뿐.

도시락을 안가져 갔다.

혼자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점심시간만이라도 혼자 있고 싶었다.

날마다 시장 순댓국을 먹었다.

혼자 드시는 할머니 자리에 합석을 할 때도 있었고, 추운 날 밖에서 줄을 서야 할 때도 있었다.

귀에 꽂은 이어폰은 생명줄 같았다.

시끌벅적한 식당에서 아무도 아는 이 없는 자유를 누리며 맘껏 음악을 들었다.

임윤찬의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청양고추 잔뜩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 순댓국을 먹었다.

집과 회사의 중간 지점. 퇴근할 때 항상 차를 멈추고 밤하늘 사진을 찍었다.

경계


나는 그곳을 경계라는 이름을 붙였다.

경계는 구분을 지어 다름을 보여주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다른 것을 조화롭게 유지하도록 돕기도 한다.

경계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차가 집으로 출발하는 순간 등 뒤로 회사를 버렸다.

이제 나는 집으로 향한다. 음악을 들으며.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도서관에 갔다.

누가 잡지도 않는데 발걸음이 빨라졌다.

쌓아두고 시집을 읽었다.

시는 마음을 울렸다.

산에도 갔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 들어오는 햇살을 보며 ‘찬란’을 느꼈다.

공연에서 바이올린 첫 음이 울리는 순간 마음이 저렸다.

숨을 좀 쉴 수 있었다.

나는 닳고 있었다.


시를 읽고, 산에 가고, 공연을 보면서 나를 조금씩 채웠다.

이게 나의 방식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자연스레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상당히 바빠진다.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기도 하고, 갈등도 존재하고, 사람들 시선도 해석해야 한다.

감성이 메말라 간다.

이럴 때 항아리에 담아둔 돌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쓴다.

그러다가 바닥이 보일 것같이 위태로울 땐 다시 채워 넣는다.

충전!



최근에 사람을 많이 만났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없다.

하는 일은 재밌어도 일이 중심이 되면 나는 점점 사라진다.

갈구하는 것처럼 미친 듯이 독서 모임, 저자 강연, 시인과의 만남, 음악회를 다니고 있다.

이건 신호다.

지금 내가 닿고 있으니 채워야 한다는 나만의 신호.


일주일 동안 세 명의 저자를 만났다. 아쉽게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대전에서 하는 공연에 갔다. 소리의 균형이 맞지 않아 오히려 답답함만 가져왔다.

윤동주를 다시 읽고 있다. 아직 멀었다. 눈물 자국이 선명한 페이지도 그때의 느낌이 아니다.

좋아하는 성악가가 부르는 가곡을 들어본다. 좀 나으려나.


도로 뷰 동네 카페에 앉아 멍때리며 지나가는 차들을 본다.

밤낮없이 깜빡이는 주황색 점멸등을 본다.

수다스러웠던 옆 테이블 사람도 다 나갔다.

내 노트북 치는 소리와 음악 소리와 희미한 자동차 소리를 가만 듣는다.

우산 쓰고 가는 할머니 걸음걸이,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사람, 오토바이 라이더.

횡단보도를 건너며 폰을 보고 있는 회색 바지 입은 사람, 정류소도 아닌데 길 한복판에 세워져 있는 킥보드, 바람에 흔들리는 키큰 풀, 거리의 현수막, 연두색 가방에 매달려 흔들리는 인형, 청바지에 모자 쓰고 고개를 푹 숙인 아저씨.

손님도 없는 카페 사장님은 좀처럼 앉질 않는다.

“왜?” 궁금해하지 않고 그냥 생각 없이 본다.

잠시 쉰다. 코끝이 찡해진다.


갑자기 구글포토에서 사진이 왔다.


2년 전 오늘? 뭐지?

내가 사랑하는 시?


자세히 구석구석 뜯어본다.

스크린을 띄워놓고 익숙한 얼굴들이 분주하다.

그랬네. 우리 그때 시 이야기했지.

열 명이 넘는 사람들 얼굴이 지나간다.

모임 준비를 하기 위해 근처 편의점에서 와인을 샀다.

유리병이 깨질까 봐 봉투를 품에 안고 계단을 내려갔다.

간식을 나누고 접시에 담았다. 테이블을 중간에 놓고 푹신한 의자로 둘러쌌다.

기타를 조율하는 사람, 시 낭송 연습을 하는 사람, 노래를 준비하는 사람 각자 바빴다.

스크린에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한 노래’ 가사가 있다.

정말 좋아했던 시 같던 노랫말. 아득하다.

나도 모르게 웃고 있다.

그날 행복하던 내 표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때도 그랬구나.

이건 벗어날 수 없고, 계속 반복되는구나.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이해한다.


너 지금 힘들구나. 그때도 이렇게 채워가며 버텼어.

다 지나가

그래, 나에게 필요했던 건 공감이었다.

내가 글에 공감하던, 음악에 공감하던, 자연에 공감하던 공허한 마음을 채웠던 건 공감이었다.

너를 이해하고 있다는 마음이 필요했다.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으로 항아리를 채웠고,

과거의 나는 공감으로 다시 나를 채웠다.


이제 배가 고프다.

밀린 업무도 생각난다.

입꼬리도 올라간다.


됐다. 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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